by 서한겸

내일 조금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

종종 하지만 할 때마다 버거운 일이다.

오늘 밤 발톱을 깎으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쥐를 잡아오라고. 발톱을 먹여서 내일 그 일을 시키겠다.

남편은 들은 척도 안 하고 지나갔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된 손톱 먹은 쥐가 내 명령을 들을까? 내가 하라는대로 할까?

내가 부탁한다 해도 안 들어주지 않을까? 걔는 이미 내가 되었는데, 그러니까 사람인데

자기도 싫은 건 안 하고 싶겠지. 게다가 일단 당분간은 나일 테니까

내가 싫은 건 걔도 싫겠지.

아, 내가 좋아하는 건 걔도 좋아하겠지? 간짜장, 냉면, 탕수육 마라탕 먹으려고 하겠지.

식비가 두 배로 들겠구나. 살은 나눠서 찌겠지만. 걔도 일을 할까?

딱 나만큼 유능하고 나만큼 무능하겠지.

그런데 왠지 나보다는 똑똑하고 유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걔한테 질 것 같은 무서움이 든다.

너무 이러지 말자. 손톱 먹은 나에게까지 이러지는 말자.

이야기를 찾아보니 이야기에서도 '진짜 나'가 쫓겨난다.

그런데 나중에 고양이를 데리고 와서 고양이가 '가짜 나'를 죽여서 물리치는 모양이다.

그동안 '가짜 나'와 함께 살았던 가족과 친구 지인들은 뭐가 되는 거지? 어쩔 수 없지 뭐.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을 검색해 봤다.

엉덩이 두드려주기, 박스, 창밖 구경, 높은 곳, 긁는 행동, 편안한 잠자리, 흐르는 물, 놀이.

아니 길고양이를 꼬셔야 하지 않을까?

'길고양이 꼬실 때 음식'을 검색했다. 습식 캔사료, 츄르, 삶은 닭가슴살, 식빵, 코티지 치즈.

습식 캔사료는 편의점에서 1,800원 정도. 츄르는 2,000원 정도.

근데 이런 거 하나 먹여서 가까이 오게 한다 해도 내가 고양이를 붙잡아서 집까지 데려오려면

할퀴어질테고 고양이 이동장도 필요하다. 고양이 이동장은 5만원짜리도 있는 모양이다.

손톱 먹은 쥐가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쫓겨난다면 6만원은 있어야 하는 걸까.

당장 나의 숙식도 해결해야겠지. 지자체나 정부 지원 기관에 긴급 요청을 하라는데

'나'라는 신분이라도 확인되어야 도움받을 수 있을텐데 그건 이미 손톱 먹은 쥐에게 넘어갔고.

내 계좌에도 접근하기 어렵겠지? 출금도 마찬가지고. 핸드폰 인증도 쥐가 차지하겠지.

생체 인식은 어떻게 되려나? 핸드폰만 가지고 나오면 사용은 할 수 있을까?

노숙인 지원 센터나 쉼터에서는 신분 확인 안 하려나?

푸드뱅크, 무료급식으로 먹긴 한다 해도 자는 게 진짜 문제다.

남자에게도 노숙은 힘들겠지만 여자는 더 위험하겠지.

가짜로 몰려서 쫓겨나자마자 그냥 고양이를 잡는 수밖에 없겠다.

고양이를 잡는다 해도 아파트 1층 현관을 통과해야 하고... 그건 경비실 호출해서

중고거래 하러 왔다고 해서 들어갈 수도 있지만 집 현관은 어떻게 하지.

손톱 먹은 쥐가 차를 타고 나가면 지하 주차장 쪽 출입구에서, 1층으로 나가면 아파트 1층 현관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데 언제 어느 방식으로 나갈지 알 수 없으니까 막연히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고양이를 데리고 기다려야 한다. 정말 쉽지 않겠다.

생각해 보니까 쫓겨나기 전부터 고양이를 기르고 있으면 손톱 먹은 쥐한테 당할 일은 없겠다.

당하기는 원래 싫고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고 싶었던 거지만.

게다가 또다른 '나'를 가지면서, 그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일만 잔뜩 한다면,

그 '나'도 일단 나이긴 하니까 내가 싫은 건 걔도 싫긴 마찬가지일테고

그 '나'도 생긴 건 나랑 똑같으니까 괴로운 얼굴을 할테니 보기 힘들겠다.

죽으나 사나 내일 일은 그냥 내가 하는 수밖에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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