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집에서

by 서한겸

비 오는 주말 저녁. 동거인이 치킨이 먹고 싶지만 사러 가기가 싫고 배달비는 아까워서 집밥을 먹겠다고 했다. 내가 가지러 다녀올 테니 전화 주문을 하라고 했다. 나는 집이나 도서관에서 혼자 일하는 게 황송하고 만족스럽기 때문에 직장인을 존경하는 편이다. 주 5일 출근하는 사람의 금요일 퇴근 후 기분을 가능한 한 맞춰주고 싶다.


후라이드 반 간장 반이요. 네. 10분 걸린대요.


치킨집까지 10분 걸린다. 바로 출발했다. 치킨집 문을 열고 '후라이드 반 간장 반이요' 하니 이미 포장되어 있던 봉투를 내어주는데 잠깐 멈칫한다. 후라이드 반 양념 반으로 잘못 만들었단다. 양념치킨이 든 상자를 꺼내 따로 놓더니 금방 튀겨서 간장 소스를 묻혀 주겠다고 1분만 기다리시란다.


결과적으로 5분도 더 걸렸다. 가게 안에 기름 냄새가 대단했고 더웠지만 기다렸다. 배달 장사가 잘 되는 집으로 쉴 새 없이 주문 전화가 왔다. 새 치킨이 튀겨지고 간장 양념을 묻히고는 뭔가 확인하더니 양념 치킨 상자도 내 봉투에 같이 넣어 주셨다.


이거 그냥 서비스로 드릴게요.

네? 아 아니 안 그러셔도 되는데.

어차피 이거 금방 안 나가면 못 먹거든요. 드세요.

아 네 아... 아...


나는 엄청나게 당황했다.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주인의 손해에 마음이 안 좋고 미안한 느낌마저 들었다. '잘못 만들어졌으면 본인이 먹으면 되지 않나' 싶었지만 매일 튀기는 입장에서 딱히 그러고 싶지도 않겠지. 그런데 내가 별로 좋아하는 표정도 짓지 못해서 '뭐야 줬더니 좋아하지도 않고' 하고 씁쓸하게 생각했을까 봐 집에 오는 10분 동안 고민이 됐다. '어머 어머 개꿀~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고 몰인정하지 않나. 주인 입장에서는 5,000원 정도의 손해인데. 너는 불행이지만 나한테는 행운이다 하고 반색하며 받아올 걸 그랬나. 받고도 떨떠름해하는 것보다는 나았을까. 어떻게 해야 센스쟁이였을까 무척 고민했다.


자주 가는 집으로, 저번에는 약속한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게 완성되어서 미안하다고 작은 콜라도 주었었다. 그때도 괜찮다고 했는데 내 봉투에 넣어 주었다. 그런 보상으로 내 마음이 상하지 않고 충성도가 올라가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내 거 양념으로 잘못 만들더니 따로 빼놨다가 다른 사람한테 보내는 것 같았음' 같은 후기를 올리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주인에게는 내가 모르는 더 많은 맥락이 있었겠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동거인에게 치킨 봉투를 내미니 왜 세 상자냐고 묻는다. 이러저러했다 하니 양념과 간장 중 고민했는데 이런 일도 있네 하고 신기해했다. 내 고민에 대해 말하니 어려운 문제라고 심각한 얼굴을 했다. 1.5마리, 세 가지 맛을 먹은 건 처음이다. 풍족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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