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0원짜리 존경

by 서한겸

누구보다도 겁이 많은 사람으로서 겁쟁이로는 세상 0.1등 정도 될 것 같다. 경찰이나 소방관 형사 등 위험을 무릅쓰는 직업의 사람들에 대해서 경외심이 든다.


몇 년 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잠시 뒤 경찰 두 분이 들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경찰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배 경찰분이 민원인이 그렇게 나올 때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고 뭘 조심해야 한다며 초보인 후배에게 가르쳐주는 것 같았다. 누가 낮부터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린 모양이었다.

큰 몸짓은커녕 누가 소리만 질러도 몸이 굳을 것 같다. 상상만 해도 배탈이 나는 것 같다. 그런데 저분들은 취객, 폭력, 온갖 말썽쟁이들을 상대해야 하다니.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비교적 더 안전하게 살 수 있고. 반인반신인가? 영웅? 어벤저스 아닌가? 물론 정의감만으로 경찰이 되는 건 아니겠지만 위험을 알면서도 그런 일을 하기로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종족 이야기처럼 멋있다.


흥분한 채로 밥을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경찰 두 분 테이블을 보니 내가 먹은 것과 같은 7,000원짜리 점심 메뉴 두 개였다. 충동적으로 '경찰분들 테이블도 같이 계산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그분들 것도 계산했다. 누구에게 베풀기는커녕 늘 달달 떠는 편인데 경찰분들이 너무 멋있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런 걸 해봤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건 호의가 아니라 뭐랄까, 절에서 부처님께 절을 하고 공양미를 사는 기분에 가까웠다.

물론 평생의 성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서 식당에서 나오자마자부터 '주인이 그 경찰분들한테도 또 식사값을 받는 건 아닐까' 하고 의심하며 마음속으로 쪼잔하게 굴기는 했지만 떠올릴 때마다 잘했다 내 존경심이 전달됐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오늘 점심을 먹는데 옆자리에 소방관 네 분이 앉았다. 나는 스파이더맨과 같은 식당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우와아... 주황색 옷이 너무 멋있었다. 차도에 무슨 문제가 생겨서 오가는 차를 막으며 일을 하신 모양이었다. 소방관의 목소리를 듣다니 너무너무너무 대박적으로 멋있다!!! 속으로 외쳤다.

그리고 결제의 시간이 왔다. 이번에도 내고 싶어. 내고 싶었다. 몇 년 전 미륵보살님을 뵈었는데 이번에는 아미타불께 시주할 기회가 온 거 같았다. 그러나 오늘의 점심 특선은 8,000원, 소방관분은 4분. 32,000원... 삼만이천 원. 낼까? 엄청 무리한 금액은 아닌데. 그래도 삼만이천 원. 어떡하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고 주인에게 카드를 건네는 동안이 길게 느껴졌다. 굉장히 고민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 같았다. 그런데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서 나의 자잘함에 소름이 끼쳤다. 뒷목에 찬 것이 닿은 듯 등과 팔에 오소소 닭살이 돋았다. 32,000원어치도 안 되는 거야. 짜잔하고 잗달다. 지질하고 쪼잔하다. 오 맙소사. 소방관님을 언제 또 알현할 수 있겠어. 그럴 기회가 언제 또 있을 수 있겠는가. 이게 고마워하고 존경한다는 마음이냐. 내 존경심의 상한선이 14,000원인가. 설마. 14,000원과 32,000원 사이의 어디일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다음에 또 기회가 생긴다면. 10만 원까지는... 12만 원까지는 공양하고 싶다. 마음만은. 20만 원 정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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