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건강까지는 아니더라도 아프지 않고 싶다. 가장 큰 문제는 배탈과 생리통, 어깨 통증이다.
어깨 통증은 정확히 10살 때 시작되었다. 가끔은 정말 양 어깨에 한 발씩 딛고 누군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어디 장례식에 따라갔다가 귀신이 붙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X레이 촬영 결과 약한 측만증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뼈와 근육은 양호한 편이라고 한다. 왼쪽은 수축되고 오른쪽은 늘어나는 식으로 뒤틀려있지만 심각하지는 않고, 병이 아닌 대신 딱히 똑 떨어지는 치료법도 없다는 것. '자세를 바르게, 규칙적인 식사, 몸을 따뜻이, 스트레칭' 등 짧은 기간에 효과를 보기 어렵고 평생을 해야 할 노력만이 남아있었다.
생리통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생리통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노력하는 바를 적자면 눈물이 먼저 떨어질 것 같다. (거짓말이다.) 한숨이 나는 건 사실이다. 진통제 신세를 충분히 지고 있는데도 평소에 노력할 것이 많다. 위장관 안정제, 유산균, 철분제, 몸을 따뜻하게 한다는 약에 면생리대에 무릎부터 배까지를 수시로 따뜻이 찜질하는 등 귀찮지만 응급실에 실려가는 것보다는 낫다. 한 달에 며칠씩이나 그렇게 아프고 싶지는 않다.
배탈도 딱히 병은 아니고, 그래서 답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내시경 결과 위염과 장염이 발견되었지만 약 처방도 나오지 않는 수준이었다.
고기를 먹으면 더 잘 체한다는 걸 깨닫고 고기를 끊다시피 했다. 그러자 체하는 일도 생리통도 줄었지만 그 대신 빈혈이 심해졌다. 근육통과 생리통도 빈혈 때문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철분제를 1년 정도 먹었다. 그리고 며칠 전 기대하는 마음으로 피검사를 다시 해 봤다. 의사가 '10부터 처방이 나가는데 그 정도는 아니고'라기에 그럼 몇이나 되나 반갑게 살펴보니 10.1이었다. 의사는 농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래 세상의 0.1을 다 무시했다가는 큰일 나겠지. 여하튼 정상은 12인 모양으로 철분제가 효과가 없는 것인지 안 먹었으면 더 심했을 것인지 모르겠다. 피를 만드는 속도가 느리고 조혈기능 자체가 안 좋다고 한다.
빈혈약도 별로인가 싶어 다시 고기를 먹기로 했다. 소고기를 사다가 100g씩 잘라 얼려 두고 하루에 1개씩 먹기로 했다. 삼일 만에 질려서 선짓국을 사다가 먹었다. 남의 피라도 먹어야겠다 생각하며. 돈이 좀 들겠구나 싶었는데 걱정할 것 없이 일주일도 못 먹었다. 소고기와 선짓국을 먹은 며칠 내내 등과 팔다리가 아파 새벽 세네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이게 무슨 순환인가. 피를 잘 만들지 못하고, 그래서 생리통과 근육통이 심한데, 남의 피를 좀 먹자니 또 근육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의 피를 소화하기도 벅찬 걸까? 어느 통증 눈치를 봐야 하나. 어찌 됐든 쉽게 풀릴 일은 아닌 모양이다. 남의 피는 포기하고 시금치와 달걀노른자 브로콜리 등을 먹어야겠다 싶다. 빈혈약도 가장 효과 좋다는 것으로 다시 주문했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숨도 잘 쉬지 않고, 기분에 따라 몸 상태도 많이 달라진다는 걸 깨닫고는 나의 모든 통증이 '단순히 심리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하곤 했다. 문제는 있으나 병은 아니라고 하니. 그래서 '단순히 심리적인 것이라면 무시해보자'고 결심하고 무시하려고 했는데 전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설사 정말로 단순히 심리적인 것이라 해도 그게 외부적, 물리적인 사실보다 '덜 사실'인 건 아닌 모양이다.
냉동실에는 소고기, 냉장실에는 돼지 피가 남아 있다. 피 하면 붉은 피... 피의 맹세... 피로 맺은... 뜨거운 피... 피 흘려 얻은... 그러니까 피... 정도면 꽤 절실하고 절절해서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해줄 것만 같았는데. 그런 피는 스스로 만든 피여야만 하는 건가. 남의 피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