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과 대화하다가 끼니를 챙겨 먹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거의 매일 편의점 음식을 먹는다고.
이웃은 당과 염분이 너무 많고 몸에 안 좋다며 걱정했다.
저녁에 전화가 왔다. 음식을 했는데 좀 주고 싶다고.
세상에?
어떻게 갚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음식을 받으러 갔다. 그러면서 생각도 못한 게,
음식을 받고 보니 음식이 또 엄청 예쁘고 깨끗한 그릇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둥근 유리 몸체에 흰 플라스틱 뚜껑이 닫힌 그릇 두 개.
그릇......은 생각도 못했다. 그럼 뭐 손에 담아 오거나 비닐에 받아 오려고 했는가?
그냥 뭐에 담는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음식을 나눠주다니'에만 꽂혀서
음식만 생각했다. 그 수고로움, 감사, 어떻게 갚지 하는 부담. 음식이 담긴 그릇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메뉴는 어묵 채소볶음과 소고기 곰국이었다. 세상에. 둘이서 먹고도 약간 남았다.
맛있었고 너무 감사했고 이웃에게 음식을 나눠 받았다는 게 신기하고 신났다.
하지만 밤에 걱정되고 조금 앓았다. 저 그릇... 뭘 담아서 돌려드린담...
나와는 달리 끼니를 잘 챙겨 먹는 가족 덕에 집에 재료는 충분했다. 밤새 걱정해서 계획한 메뉴는 채소볶음밥과 무 북엇국이었다.
무를 썰고... 일단 새우를 해동해서 팬에 익히고, 아 그전에 팬을 예열하고.
새우 익힌 팬에 마늘, 파를 넣고 기름 내고... 당근 다듬고 당근 양파 애호박 넣고...
밤새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약간 잠도 설쳤다.
아침에 수영 다녀오고 빨래하고 이것저것 하면서도 '볶음밥... 그릇 돌려주기'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낮잠도 자고 낮잠 자면서도 앓았다. '볶음밥... 그릇...'
어서 그릇을 돌려줘야만 한다! 갖고 있다가 깨뜨리기라도 하면!
그리고 '요리해서 담아서 돌려줘야 하기'가 계속 남아 있는 건 너무 힘들어!
오늘 돌려드리자!
하고 낮잠을 겨우 끊고 일어나 오후 5시부터 요리를 시작했다.
하다 보니 두 메뉴는 무리라서 무 북엇국은 포기했다. 다듬은 무는 볶음밥에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양이 많아져서 양파는 포기, 파에서 초록색이 나서 애호박 생략.
당근 무 새우볶음밥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릇이 두 개인데 어떻게든 두 메뉴로 만들 순 없을까 궁리하다가 볶음밥을 두 개로 나눴다. 하나는 간장 굴소스 대체당으로 간을 하고 다른 하나는 생크림과 치즈로 간을 맞췄다.
이제 음식을 그릇에 담는데 또 생각도 못했던 일로 놀랐다. 그 많던 볶음밥이 거의 다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렇게 오랜만에 스스로 음식을 했는데 그릇에 담아 주기도 하고 나도 먹으려 했던 건데...?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제 그릇 두 개로 둘이서 먹고 남을 정도였으니 당연히 많은 양이었겠지.
하지만 프라이팬 가득 볶은 음식이 거의 다 들어가고 2인분 조금 못 되게 남으니 당황스럽고 아쉬웠다.
무 당근 채 썰고 힘들었는데... 다 없어져버린 기분이었다.
받을 때 모르던 것이 줄 때는 이렇게 크다니.
하지만 아주 정확하고 미묘했던 점은, 다른 '은혜를 받고 갚기'와 다르게, 정확히 양이 정해져 있는
그릇으로 받고 그 그릇에 담아서 갚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받은 만큼 주는 것인데도 이렇게 크게 느껴졌다. 받을 때는 아무리 고마워했어도 그 수고를 체감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하여튼 얼른얼른 연락해서 다행히 아직 저녁 하기 전이라고 해서 얼른얼른 가져다 드렸다.
그런데 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웃은 내가 돌려주는 그릇을 받고... 또 하나의 그릇에 오이 숙주나물을 담아서 준 것이다.
이건...? 정말 생각도 못했다.
나는 특히 생활적인 부분에서 내 앞가림도 반 정도밖에 못해서, 타인에게 나눠주기까지 하는 감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나누는 것인가? 너무 대단하고 충격적이었다.
이번에도 유리그릇. 이번에는 네모난 유리그릇 하나를 손에 꼭 쥐고 집에 돌아왔다.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