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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겸 Apr 24. 2023

불안장애 치료기 230423

주말에 부모님 댁에 갔었다. 약 먹는 거 비밀로 하느라고 힘들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는다고 하면 '마음을 굳게 먹어라 하나하나 신경 쓰지 마라' 이런 소리를 들을 테니까. (병원 갈까 생각중이라고 할 때 이미 들었다.)


소고기와 여라 나물을 얻어먹고 집에 왔다.


최근 1~2년 동안 미련할 정도로 무리하게 심신을 힘들게 했는데 결국 친구한테 한소리 들었다. 돈 쓸 데에는 좀 쓸 것이지 몸으로 때워서 지금 몸과 마음이 다 죽을 지경이니 그런 소리 듣기 싫다고. 내 딴에는 노력한 것이고 사실 별 수 없기도 했다. 돈도 없었고 그냥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그래도 달라 빚을 내서라도 돈을 쓰고 좀 내가 덜 힘들게 했어야 했나.


하여튼... 저녁에는 내가 '강박활동'이라고 부르는 취미생활을 했다. 다 흐트러진 퍼즐 맞춰 놓기, 작은 블록 같은 걸 종류별로 또는 색 별로 정리해 두기 같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정리를 재미삼아 하는 것이다. 내 강박증을 조금 충족시켜 준다.

레고를 벌크로 얻어왔는데 그 안에 옥스퍼드 블록이 섞여 있었다. 레고 듀플로와 크기가 호환되는 모양이었다. 하나하나 꺼내서 레고와 옥스퍼드를 분리했다. 옥스퍼드는 두 시리즈라서 사진을 보며 이 모양이 몇 개 있는지 체크해 가며 정리했다. 먼지도 많이 나오고 힘들었지만 재밌었다. 이런 강박증 충족이 좀 해소도 되고 좋을지 아니면 강박증을 악화시킬지 모르겠다.


레고의 검은색 블록의 검은색이 아주 예뻤다. 어릴 때 레고나 블록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는데 한참 만지다 보니 이것저것 만들어 보고 싶고 어릴 때 레고를 갖고 있었다면 좋아했겠다 싶었다. 그리고 내가 창의성이라고는 1도 없는 사람이고 경직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좀 더 수용적인 편안한 환경에서 내 마음과 내 생각이 받아들여지면서 자랐다면 안 그러지 않았을까. 더 재밌고 이 생각 저 생각 자유롭게 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이게 후회가 아니고. 내가 지금도 많이 긴장해 있구나. '틀리면 어떡하지 절대 틀리면 안 돼 틀리면 큰일 나고 돌이킬 수 없으니까!!!! 절대!!!'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일은 레고를 좀 갖고 놀아 봐야겠다. 


오늘은 약의 부작용을 거의 못 느꼈다. 페르페나진 빼고 먹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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