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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겸 Oct 13. 2023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3, 4, 5장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리단, 반비, 2022


3장 병자를 돕는 것:병식, 병체성, 그리고 자조모임

4장 고양이처럼:우울증 환자가 삶을 운영하려면

5장 정직한 자들이 가는 지옥, 조증 


48쪽

병중에 타인에게 위해를 끼치거나 자신에게 해를 입힌 일 등은 공중에 내팽개치고, 자시이 괜찮았던, 그럴싸했던 시기만 취사선택하고자 하는 함정에 너무나 쉽게 빠진다. 그러나 그때 그건 '내'가 아니고, 이것저것도 '내'가 한 게 아니라고 밑장 빼면 곤란하다. 우리는 우리 행동의 무게를 지고 가야 한다. 당시이 일으킨 일을 재편하고, 통합하여 서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다.

[나도 '그때는 내가 너무 우울해서... 완전히 정신병이었어서...'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 그게 사실인 일들, 나쁜 행동과 반응들 흑역사들이 많다. 하지만 다 내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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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쪽

중증이 아니라도 우울증이 재발한 사람들, 우울증이 만성화된 사람들은 중증 우울증으로 곤두박질치기 쉽습니다. 우리는 기약 없는 우울증에 탑승한 채로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데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우울증 한복판에 놓인 사람들은 모두 무엇인가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것은 ... 언제나 우리의 일상을 절망케 하고, 삶과 자신을 유리되게 하며, 사람들과 갈등을 빚게 합니다.

[나의 우울증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내 온몸에 모래주머니를 찬 것처럼 나를 못 움직이게 한다. 심할 때는 말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앉지도 못했다. 전신에 힘이 없고, 힘이 없어도 몸이 엄청나게 무겁다 땅이 잡아당기는 것처럼. 안 이런 사람도 있다고? 한다면 이런 사람은 너무 큰 핸디캡을 갖고 모든 것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고 작은 계기로도 '다시' 우울해지기가 쉽다... 이 때 정말 정신 잘 차려야 며칠, 몇 달, 몇 년을 구할 수 있다. 바로 상담을 받거나 병원에 가야 한다.]


58쪽

우울증이 절망적인 이유는 언어를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 우울증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잘 모르겠다."입니다.

[진짜다. 생각이고 언어고 혼탁해진달까 멍해진다. "잘 모르겠다... 뭐가 뭐고 뭔지도..."]


63쪽

우울증 환자들은 그들이 상상하는 정상 상태보다 기능이 저하된 경우가 많습니다. ... 특히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 사회적인 문제에 부딪혀 크게 실패를 하고 나면 우울증 환자는 쪼그라들어서 숨거나 도망치거나 도피합니다. ... 같은 사고가 반복되거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상태의 우울증은 아직 기회가 많은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병자가 이런저런 시도를 끊임없이 해오고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나도 그랬다. 아예 좌절하지 않고, 다 그만둬 버리고 틀어박히지 않고 뭔가를 하려고 꾸준히 꿈틀댔던 힘이 뭐였을까? 이제 와서 신기하다. 아마 틀어박힐 곳, 방, 집이 무척 불행했고 내 힘듦의 근원이었기 때문에 틀어박힐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히키코모리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못 됐다. 집이 너무 괴로워서. 엄마, 아빠, 나 셋이 보냈던 내 극우울기는 정말 집에서가 제일 힘들었다. 하루를 보내고 집에 가려고 하면 숨이 막혔다.]


64쪽

지지적인 표현과 담담한 반응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낫겠습니다. ... 하다못해 밥 한 끼, 음료 한 잔 사는 것이 백 마디 말보다 마음에 위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내가 가장 힘들어 죽을 것 같을 때, 그리고 특히 나의 우울은 나의 가난과도 깊이 얽힌 문제였으므로, 누군가 나에게 밥을 사주는 것은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돈까지 내 주다니. 나를 만나기 위해서 시간도 쓰면서...?'라는 경악적인 감사를 느꼈다. 그리고 사실 우울증에 빠지면 먹고 마시는 기본적인 것을 제일 1등으로 제치고 신경 안 쓰기 때문에 '아 먹고 마시는 거였지'하는 정상의 감각을 선물해준다.]


65쪽

스스로에게 먹이를 주세요. 물을 주고요. 한 주에 한 가지의 채소를 사서 먹이십시오. 


66, 67쪽

금전 문제는 병이 없는 사람에게도 고통스러운 문제입니다. 하물며 정신질환이 있는 상태에서 금전 문제가 결합되면 보통은, 대개는 자살을 함께 고려하게 됩니다. 우울증 환자는 이미 우울증 그 자체로 소요되는 비용이 많습니다. 

[돈이 없다는 것은... 말해 뭐하겠는가. 모든 영역에서 행동의 제약이 생긴다. 움직였다 하면 돈이니, 옴짝달쌀 못하고 숨도 얕게 쉬게 되는 느낌이다. 누군가 좋은 제안을 해 와도, 거기까지 가는 교통비를 먼저 따져야 하는 것이다.]


이 상황을 타개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직접 돈을 버는 것이지만,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고 노동하기 쉽지 않은 환자들에겐 이 허들이 아주 높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자신의 낮은 금전 감각을 인정하고 하루에 많은 돈을 쓰거나 낭비하지 않도록 금지 장치를 걸어둬 필요한 돈이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방지하는 편을 권합니다.

["그럼 돈을 벌어!" 내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자주 들은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안 버는 게 아니라 못 버는 거다. 완전히 '잘 모르겠...'고, 실제로 돈 버는 여러 활동을 했을 때 일을 잘 못했다. 변명이 아니라 정말 슬프고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고백이다. 음... ] 


70쪽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감각하지 못하고, 기력이 없고, 힘이 없고, 삶을 구성하는 기초적인 행위조차 어려운 상태이므로,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을 과소평가합니다. 많은 경우 스스로 쓸모없고 능력도 없고 타인에게 어떤 긍정적인 인상도 영향도 줄 수 없다고 판단합니다. 더 심각한 경우에는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가치한 존재이기 때문에 길가의 개미보다 가치가 없다고 진지하게 믿습니다. 

[그렇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적은 없지만. 거의 늘 무척 둔중한 괴로움을 느꼈지만. 스스로를 없는 존재처럼 느낀다. 나 같은 거... 나는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잘 불렀고, 내 그림을 '쓰레기 봉투로 포장하면 된다'는 식으로 격하하곤 했다. 누군가 나를 좋게 평가하거나, 누가 내 영향을 받거나, 누가 내 이름을 알기만 해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이상하게 생각하곤 했다. 지금도 약간 이렇다.]


우울증 환자의 생각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방향으로 흐르는데, 첫째로 외부에서 무언가 혁신적인 일이 일어나 삶이 바뀌기만을 고대하는 케이스입니다. 세상의 멸망을 상상하거나, 전쟁이나 갑작스런 사고, 재난 등이 일어나면 그때야말로 벼랑 끝으로 몰린 자신에게 새로운 세계(파국이나 죽음)가 닥쳐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자신의 삶을 영원히 바꿀 확실한 방법인 자살에 몰두하는 케이스입니다. 이런 상태까지 온 우울증 환자가 조금이라도 병에 저항하려면 오로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익히는 수밖에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벽에 못을 정확히 박을 때나 무거운 화분을 조심스레 옮길 때는 우울함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여러 신체 기관이 협동해 할 수 있는 많은 일을 일과 사이사이에 끼워 넣어 봅시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엄청난 결심이 필요하지만, 확실한 기분 전환이 된다. 쉽지 않다고 말하지 말자. 방에서 집에서 나가는 것이 엄청 좋다.]


73쪽

당신의 시작 지점이 여기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절대 능력을 위주로 고려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능력도 병과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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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쪽

사실 병과 싸울 때 가장 어려운 지점은 따로 있다. 병이 자신을 강타할 때 기존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관리 시스템을 스스로 가동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

우울해지기 시작할 때:식사를 챙겨 먹고, 일찍(12시 정도) 자고, 하루에 1번 이상 편의점이라도 외출하도록 한다

기분이 들뜨기 시작할 때: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리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나는 우울이 깊고 조증 성향은 남들이 기분 좋은 정도로만 발현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가끔 책이나 문구류를 사는 정도이므로 큰 돈 사고를 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심한 행동을 할 수도 있으므로 늘 주의하도록 한다. 은행 예금, 적금을 시작하기도 하는데 '앞으로 고정수입이 생길 것만 같은 좋은 기분' 때문이다. 이것도 큰 피해는 되지 않는다. =>'무리해서 글쓰고 책 읽어서 병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이때 무리해서 자주 병이 나기 때문이다. 최대한 이 시기를 길게 가져가도록 유지해 본다.] 


82쪽

식사는 맥주로 대체했고, 어느 기분 좋은 날은 이 친구 저 친구 학생증을 빌려다 책을 수십 권 빌려서 끙끙거리며 집에 갖고 가 하나도 읽지 못하고 수만 원씩 연체료를 냈다. 

[나도 술이나 물로 식사를 대신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도 증상이었나... 2012년 경의 일이다. 우울증 약(웰부트린) 끊고 나서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작업실비랑 생활비 벌려고 꾸역꾸역 학원 강의 다닐 때. 음료만 마셔도 스스로를 칭찬하곤 했고, 햇반에 물이면 잘 챙겨 먹었다고 생각했었다. 어쩜 기본 생활을 보살피지 못하고... 앞으로 주의하자... 누가 이러고 있으면 밥을 사주자... ] 


87쪽

생각이 물질이었다면 조증 환자는 방 안에서 질식해 죽었을 것이다. ... 사고 비약, 사고 질주... 이 사고에서 저 사고로 넘어가는 과정이 너무 빠르게 이어지지만, 결국 이어졌던 흔적은 쉽게 휘발해서 종국에는 기이한 사고 집산만 남기기 쉽다.

[이런 사고가 시작됐던 순간이 기억이 난다. 중학교 교복을 입고 학교 가는 길 '엠마'라는 빵집 앞을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빠르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억하기 위해 단어로 축약해 곱씹고 있었다. 그 단어 중 '시계'가 있었던 게 기억난다. 20세 정도까지 가장 심했다. '발상, 연상작용이 특이하다'는 말을 잘 들었다. 29세까지 우울증에 억눌림, 그 뒤로도 지속되고 있다.]


91쪽

생각이 끊임없이 온다. ... 이것을 이렇게 저렇게 하고 싶은 생각, 생각들로 가득 차 정리도 못 하며 사라지려는 생각을 붙잡으려 병아리 풀어놓은 마당에서 잡으러 뛰어다니는 것마냥 군다.

[이렇게 해서 '아무것도 못한다'는 상태로 몇 년을 보냈다. 거의 20, 30대 내내. 사실 지금까지도... 우울 아니면 이런 상태 사이를 오갔다.]


93쪽

조증에 더해 술을 많이 마신다면 위기의 신호다. 만취의 감각 또한 조증과 유사하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가 일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자들이 대개 그러하듯 이들도 빨리 취하고 싶어 한다. ... 

[나도 19세부터 33살 정도까지, 혼자서도 술자리에서도 술을 많이 마셨고 급히 마시고 취하려고 마셨다. 마셨다 하면 필름이 끊기던 것만도 몇 년이다. 음............. 지금은 끊어서 다행이다. 필름 끊겨 위험해지기, 필름 끊긴 채로 실수하기, 알콜성 간염으로 쓰러지기, 술 마시면 알레르기 생기기 등으로 끊었다.


95쪽

사고장애의 가장 대표 격이 바로 자살사고이며, 조증과 자살사고가 결합되었을 때 그 사람이 죽을 확률 혹은 영구적인 장애를 입는 등 손상을 입을 확률은 정말 높아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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