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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한겸 Oct 13. 2023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프롤로그, 1장, 2장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리단, 반비, 2022


프롤로그

1장 네가 다 잃어도 나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장 처음 정신병이라는 세계에 발 딛는 당신에게


15쪽

삽화episode 정신병으로 인해 영향을 받아 수행 능력에 손상이 있는 상태가 유지되는 기간을 말한다. 증상이 극심하게 나빠지거나 악화되는 불특정한 기간이 찾아오면 그것을 삽화라고 할 수 있다.

[나의 경우 4세 정도부터 무척 기분이 나쁘고 항상 짜증나기 쉬우며 우울하고 몸이 아프고 화가 나는 상태로 억눌려 있었다고 기억한다. 아주 자주 거의 항상. 미취학 시기 집에서 오빠에게 자주 맞으며 언니에게 미움받고 엄마 아빠는 나를 외면하는 상태에서 힘들어하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사회성이 극도로 부족해 학교 적응과 친구 관계가 어렵고 따돌림도 거의 매년 당했다. 그러다가 중학교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면서 약간 조증 같은 모습을 보였다. 돌발적으로 활기를 보이면서 화난 듯이 적극적이 되는 상태가 자주 있었다. 연극부 활동도 그 일환이었던 것 같다. 이러는 중의 기본 상태는 초긴장에 억눌리고 불안해하며 초조했다. 공부하고 뭔가를 배우는 것을 좋아했던 게 나름의 구심점이자 활동 중심이 되어주었다.]


신경증

내적인 심리적 갈등이 있거나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과정에서 무리가 생겨 심리적 긴장이나 증상이 일어나는 인격 변화를 말한다. 심리적 갈등이나 외부의 스트레스에 의해 생긴 불안이 여러 가지 신경증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신경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으로는 불안을 직접 체험하는 불안장애가 있다.

[이 설명 자체가 나에게 위안이자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


19쪽

신체화 증상

정신적 심리적 스트레스나 갈등으로 인해 여러 불편한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지만 의학적으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것.

[나는 너무 자주 아파서, 때로는 다른 변명을 한다. '아파서 못 나가' '아파서 약속 취소야'라고 말하기 더이상 민망해서. 아프다는 말을 하기도 부끄럽다. 게다가 병원에 가도 병명도 없다. 기껏해야 '신경성' ... 신체화 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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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네가 다 잃어도 나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3쪽

처음 발병했을 무렵, 내가 만난 정신질환자들은 모두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었다. 10대 때 이미 병증을 자각하고 있었고, 대학 시절, 대개 20대 초입에 처음 삽화를 경험하며 삶이 착실히 망가지고 있었다. 학교 상담센터와 연결이 되어 지원을 받기도 하나 이미 팽배한 자살사고 등 심각해진 병증을 감당하긴 어렵다. 상담자나 주위의 권유로 약물 치료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 약 저 약 시도해도 듣지 않고 나빠져만 가 깊은 체념과 여러 중독에 시달린다. 그때는 그런 상황을 지칭할 말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 후일 회고하며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라고 마음을 달랬다. 이들에게 학교는 그나마 유연한 제도나 태도를 보였지만 졸업 후 기존 소속이 사라진 이들에게 병의 맹공이 집중됐다. 새로운 소속을 갖기 전까지 모두 병증으로 아주 고생을 했다.

[나의 상황과 정확히 일치한다. 10대 때는 왜 적절히 치료받지 못하는 걸까? 대입이라는 목적 때문에? 그러다가 대학에 가서 풀어지며 병증도 활개치는 걸까? 나도 고등학교 때 심각하다고 느껴 정신과에 갔었는데 의사의 고압적이고 차가운 태도(나의 말을 듣고 나서 '지금 굉장히 잘난척 하고 있는 거 알아요?'라고 함. 잊혀지지 않는다. 너무 충격받아서 전과 후의 상황이 기억이 안 날 정도.)에 다시 안 가고 약도 안 먹고 치료도 안 받고 수험생활에 몰입, 죽도록 힘든 심리상태로 고1~2~3~대1~2~3~4~5~6(나는 대학을 6년 다녔다! 6년 내내 거의 매일 울었다. 그러면서도 견디다니 대단하다... 그러면서도 학교도 가고 동아리도 하고 졸업까지 하다니 정말 대단하고 힘겨웠다.)~대학원1~2~졸업 후~를 살게 됨.

이 과정에서 알콜성 간염?으로 쓰러지기 2회.

그 뒤 내가 가진 새로운 소속은 결혼해서 만든 가정이었을까? 내가 가장 힘든 이유도 원가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나름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하게 되면서 치유되고 안정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25쪽

정신병의 여러 병증들과 자해나 자살 같은 자기파괴적 사고들이 이른바 '상식선의' 사고들과 함께 공존했다. 여전히 파괴적인 생각을 했지만 주어진 과제를 해낼 수 있었다. ... 우리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 뛸 때와 비할 수 없이 멀리 갈 수 있지. 이런 생각은 병에게 형태를 부여해주는 행동이었으나 그때는 몰랐다. 나는 덜 외로워 기뻤을 뿐이다.

[병과 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말로 이랬다. 그래서 어떻게든 삶의 무언가를 유지, 진척시켜 나갈 수가 있었다. 매일의 과제, 자주 파기하지만 지키기도 하는 약속, 인간관계 등등. 하지만 이게 당연히 쉬울 리 없다.]


28쪽

그때 가장 빈번하게 들었던 생각은 억울함이었다.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것, 즉 출석, 출퇴근, 식사, 음주, 수면 등이 내게는 공황과 조증과 우울을 동반하는 신체 증상의 총집산과의 전쟁이었다. '나는 왜 맨날 죽고 싶어 하는지?' 또한 매일의 과제였다. 


35-36쪽

좋은 병원에서는 당신이 하는 말을 잘 들어주고, 적절한 질문을 해주고, 꼭 필요한 설명을 해줍니다. 약에 대해서도 이러저러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고 약물 복용 지도를 해줍니다.

처음 시작한 당신에게 드리고픈 말들 중 가장 중요한 말 하나는 이 약물 치료가 예상보다 길어질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병은 1~2년 관리한다고 반드시 호전되지 않으며 조금만 미끄러져도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적은 약을 먹을 때 치료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절대 단약하지 말고요. 또 당신의 병을 제대로 진단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즉 의사가 당신을 관찰하고 지켜볼 시간이 그만큼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2010년 정신과에서 처음으로 약물치료를 시작했을 때, 9~10개월 정도 웰부트린을 먹었다. '매일 울기, 하루에도 여러번 울기'가 너무 대학원 생활에 곤란해서 (미친년처럼 보이니까)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울기'는 일단 약으로 멈춰졌다. 신기했다. 그런데 그림 그리는 대학원생인 내가 손이 너무 떨리는 부작용이 있었고, 부작용을 줄이는 약을 더 먹는 게 좀 내가 기계처럼 느껴져서 단약해버렸다. 학교 정신과에 나오던 교수가 대학병원으로 가면서 대학병원 정신과에 다니며 훨씬 심각한 환자들을 보는 것도 힘들었고. 그 때 단약한 것이 아쉽다. 약을 바꾸든가 해볼 걸. 덕분에 10년 정도 더 치료를 미루게 된 것 같다. 이 10년간은 상담을 매년/ 격년 받고 좋은 친구와 인연을 만나고 불교 공부를 조금 하면서 나름대로 나아지기도 했지만 약을 먹었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


때로는 충분한 효과가 나타나기 이전에 부작용이 선행할 수도 있습니다. 부작용은 약물 치료를 위해 용기를 낸 환자들을 쉽게 좌절시키고, 정신과에 재방문하는 것을 무의미하게 여기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시기를 잘 넘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물을 처방받을 때, 해당 약물이 작용하기 시작할 때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의사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기약 없이 효과를 기다리는 것과 한계를 정하고 참는 건 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37쪽

약 복용의 주된 목표는 그 사람을 다시 총명하고 똑똑한 사람으로 돌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삽화 발생을 줄이고자 하는 예방적 차원의 접근이 큽니다.

치료 계획을 세우는 데에 자기 자신이 큰 역할을 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의존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의사와 약물, 그리고 신뢰하는 친구나 친지입니다.

[친구나 친지도 너무 좋지만 감정적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는 관계이므로, 조금 더 거리감 있는 공적 관계, 의사와 약물을 잘 찾는 게 단단한 보험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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