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11개 한 날

by 서한겸

집을 정리하며 무료나눔 8개, 판매 2개 했다.

이 과정에서 당근 앱 하도 많이 봐서

사고 싶은 거 발견해 버려서 1개 구매도 했다.


판매한 것 중 하나는 4만원에 사서 1년 넘게 잘 쓰고 여전히 새것같은 상태로 3만원에 팔았다. 좋은 거래였다.

판매한 다른 하나는 50만원짜리를 선물받았는데 개봉과 동시에 가격대가 반, 4분의 1 정도로 떨어졌다. 나는 10만원에 올렸는데 '끌올'을 8번 하는 동안 팔리지 않고 '5만원에 주면 안 되겠냐'는 채팅만 몇 번 왔다. 가격제안 불가인데 가격 제안하는 사람들 대부분 거래해 봐도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 많아서 안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똑같이 5만원들을 제안하길래 내가 파는 물건의 시세를 한 번 검색해 봤다. 3만원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너무 비싸게 올렸다 이거지. 저번에 누가 5만원에 달라고 했을 때는 며칠이나 기분 나빠 하며 채팅을 안 읽고 버티다가 고민 끝에 '혹시 아직 구매 의사 있으신가요' 하고 물어봤다. 대답은 '다른 곳에서 샀어요'였다. 그러더니 후회가 되는 것이었다. 못 팔려나... 그런데 이래 놓고도 미련을 못 버리고 어제 7만원으로 가격을 낮췄다. 또 다른 사람이 5만원에 달라고 채팅이 왔다. 여전히 가격 제안 불가였지만 '이건 최대 5만원인가보다'하고 팔기로 했다.


고민이 많기는 나눔도 마찬가지였다.

동네 지인에게 물려받은 물건이 나에게는 안 맞고, 나는 줄 사람도 없어서 당근 시세를 검색해 보니 6-7만원이나 하고 있었다. 세상에 나는 많이 고민했다. 당근에 팔았다가 그 지인이 이 물건을 발견하면 나는 얼마나 창피할까? 그런데 6-7만원은 꽤 비싼 돈이고, 나는 이 물건을 줄 사람도 없는데. 어떡하지. 중고나라에 팔까. 하지만 중고나라 거래 건도 왠지 지인이 알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반드시 알게 되어서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될 거라는 거의 확신이 들었다.

이 물건이 필요할 만한 사람을 생각하고 생각하다, 오다가다 1-2번 만난 정도로 거의 모르는 사이인 사람을 떠올리고는 그에게 주었다. 6-7만원...을 그에게 준 느낌이었지만 나도 그냥 받은 것처럼 그냥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도 거의 모르는 사람에게 6-7만원 가치 정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티켓 한 장을 확보한 것처럼 느끼려고 노력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또 다른 물건은 오래전부터 집에 있던 것인데 너무 못생겨서 사용하지 않고 갖고만 있던 터라 나눔하기로 했다. 이건 제발 누가 가져가기만 해라, 오늘 내로 아무도 안 가져가면 버려야지 하고 '가져가시는 분 오늘까지 안 계시면 처분합니다' 하고 글을 올렸다. 그런데 1분도 안 돼서 채팅 6개가 왔다. 첫 번째 사람은 글을 안 읽었는지 모레 오겠다고 해서 안 되겠다고 했다. 두 번째 사람에게 주기로 했는데 좀 지나치게 고마워하는 자세로 대답이 왔다. 그 사람은 고맙다, 고맙다 하며 물건을 가져갔다. 그런데 집 청소를 하다가 그 물건의 부속품을 발견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집이 어디냐, 근처면 가져다 주겠다고 다시 채팅을 했다. 너무 감사하지만 집이 멀다며 주소를 알려 주었는데, 도보 30분 거리였다. 나는 요즘 매일 만 보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어디든 가긴 가야 했다. 갖다 주겠다고 했고, 갖다 주었더니 '나눔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답이 왔다.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 싶어 그 물건의 당근 시세를 검색해 보니 무려 6만 원. 갑자기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물건도 가져 가고 제 발로 배달까지 마친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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