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선 개인전 서문
온갖 식물이 몸을 뻗어 가득히 들어서 있다. '어디까지 너이고 어디서부터가 나인데?', '몰라... 여기에서 그냥 하나 새로 틔울 수도 있는데 뭐.' 어느 한 포기의 독사진은 상상할 수도 없이 긴밀히 이어지고 맞물리며 화면을 채운다. 팽팽히 물이 오른 꽃과 잎은 오로지 피어나는 중이다. 캔버스를 옆으로 5센티 늘리면 곧 새 꽃잎과 줄기가 돋아나 덮을 것이 너무나 확실하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활기나 다사로운 햇살은 느껴지지 않는다.
꽃들은 누가 보라고 피어 있는 것이 아니다. 밤에도 그저 언제나처럼 갖가지 형색을 만들고, 대칭과 규칙을 따라 사방을 변주하고 있다. 형태로 의지를 드러내면서. '여기에 무늬가 있을 거야. 도톰해질 거야. 부풀었다가 가늘어질 거야.' '이쪽으로 뻗어나갈 수 없다면 반대쪽에 새 줄기를 낼 거야...'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은 그래서 어딘가 치열하다. 식물이 움직이는 마법 같은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듯 숨소리를 가다듬게 된다. 벽돌과 벽돌 사이, 지붕 위 가장 작은 구멍에도 풀은 자란다. 아무리 작은 틈새에라도, 먼지 조금만이라도 쌓인다면 식물은 또 어딘가에서 날아와 뿌리를 내리고 꽃까지 피운다.
주변의 모든 식물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상상해 보라.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공간이 비고 드러날 것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존재감이 미미한 것은 이들이 성큼 다가오는 법 없이 그저 가만히 꺾이고 뿌리 뽑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용한 점령자는 멈출 줄을 모른다. 늘 1기압의 무게를 드리우는 공기처럼, 틈새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이러한 식물을 정지된 모습으로 그리는 것은 생각보다 놀라운 일이다. 이 식물들은 뿌리가 있어 보이고 살아 있고, 자라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식물의 몸에서도 가장 극적인 부분인 꽃은, 인간이 지켜보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깜빡 잠들었다가 눈을 떠 보면 태연히 피어 있다. 식물이 하는 일은 늘 이렇다. 인간이 알아챌 수 없이 미시적으로, 느리게, 그러나 쉴 새 없이 흐르는 식물의 시간은 시간의 흐름을 더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식물의 신비로운 활동에 비하면 인간의 시선은 플래시와도 같이 단편적이다. 어느 날 공터에 수북이 자란 잡초들을 발견하면 허를 찔린 듯 무력감이 든다. 누구보다도 멈춰 있고 수동적으로 보이던 식물이 타임머신이라도 탄 것처럼-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공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인간의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인간이 신기해하든 경탄하든, 식물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 누구의 시선도 상관없다는 듯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일정 시간을 잠든 채로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일에 대한 두려움 섞인 호기심과 막연한 동경을 밤에 덮어씌운다. 밤은 알 수 없는 힘들이 움직이는 영역이 된다. 그리고 낮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빛도 그중 하나다. 밤은 태양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작은 빛이 빛날 수 있는 시간이다. 어깨를 부딪고 서 있는 식물들과 마찬가지로 보석이든 광물이든, 이 작은 빛들은 촘촘히 늘어서 있다. 이들은 어둠을 힘입어 빛난다.
매우 느린 식물과 매우 빠른 빛의 활동이 밤이라는 시간에 만난다. 꽃과 잎은 흙의 화학을 보여준다. 분명 흙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 어떻게 저런 형태와 색이 나오는지. 흙의 어디에 이런 노란색과 파란색과 분홍색과 줄무늬가 들어있단 말인가. 보석은 보석다운 반짝임으로 밝을 때에는 가려져 있던 빛의 광학을 보여준다. 꽃과 보석 모두 방사형과 대칭의 법칙을 따르며 당당한 듯 엄숙히 정면으로 드러나 있다. 캔버스는 이들이 제련해 내는 색과 빛으로 가득 찬다. 가장 구석의 한 땀도 정교하게 수놓아지는 태피스트리처럼, 식물과 빛에 의해 공간은 균질하게 다루어진다. 꽃도 반짝임도 어느 하나 가려지지 않고 뒤로 물러나려 하지 않는다. 흐려지지도, 시들지도 않는다.
꽃과 보석은 어둠 속을 빛으로 차지하기 위한 단위이자 매개체이다. 유전형질과도 같은 몇 개의 규칙과 기본 형태를 가지고 반복, 변주하며 한밤중을 채워 나간다. 이 현란한 빛과 형태의 정연함은 의도를 알 수 없는 아름다운 눈동자처럼 바라보는 이를 긴장시킨다. 꽃의 규칙적인 듯 현란하게 변주하는 외양은 매혹적이나 어디 한군데 겸양함 없이 자신을 주장하며 흐드러지는 모습은 유혹하는 듯도, 경고하는 듯도 하다. 반짝임조차, 광원에 따라 방향이 달라지는 일이 없다. 아는 꽃인가 하면 바로 옆에서 돌발적으로 돋아 나오고 친숙한 듯 알 수가 없다. 이 광물은 이름을 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바로 옆의 빛은 기하학적인 무늬에 지나지 않는 듯도 하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려는데 자꾸만 모르는 얼굴이 고개를 돌린다. 이들은 누구일까?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피고, 발하고 있는가. 무엇을, 왜 채우고 싶은가? 어디의, 무엇이 비어 있는가.
그냥, 이라기엔 너무 치열하다. 작아지지도 물러서지도 않는 충직한 마음들처럼 앞다퉈 자신을 내보인다. 흙과 어둠을 이렇게 화사하고 반짝이게 만들 수 있다고 뽐내는 걸까.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써 장식해주는 걸까. 예쁘고 빛날 수 있으니 그렇게 하겠다는 사명감일까. 아무런 대답이 없다. 화면은 다만 식물과 빛에 맡겨져 있고, 완결 지점은 명확하다. 빛과 색으로 끝까지 다 차지하는 것이다. 이 맹목적 생명력은 아주 잠시의 정지만을 허락한다. 어딘가 스러지거나 꺾인다면 한순간의 애도도 없이 다시 틔우고 뻗어낸다.
이 완성은 그러나, 언제나 잠깐뿐이다. 정점에 머무르는 것,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부풀어 있는 것은 모두가 원하지만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오로지 피어나려는 꽃과 발하려는 빛을 마주한 사람은 가벼운 탄식을 내뱉게 된다. 밤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이 화려한 음미는 낮의 산란 속에 가려져 있던 힘에 대한 명상이 된다. 꽃은 어느새 타협 없는 선에 촘촘히 둘러싸이고 빛의 만연은 저지된다. 정원사의 가위질 소리인가. 눈부시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에워싼 검은 선의 엄숙함도 떠오른다. 캔버스 가득 자리한 빛과 어둠의 대조는 움직임과 정지, 상승과 소멸의 영원하고도 일상적인 리듬을 수행하고 있다.
자유롭게 휘돌던 빛과 색이 다소곳이 어둠의 경계를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살아 있는 한 가만히 있지는 않으리라. 색들은 이미 선을 넘어서 틈새를 살피고 있다. 고요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조용한 밤의 정원을 감상하려 눈길을 들여놓았던 사람은 이내 그곳이 술렁대는 투쟁의 장임을 알게 된다. 색과 선, 빛과 어둠이 아른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바로 발밑까지 닥쳐올 것 같다. 코끝에 아릿한 풀냄새가 스친다.
서한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