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블루>(2004)
아이돌은 연예인 중에서도 매우 특수한 유형의 연예인이다. 노래 가사에 맞춰 감정을 전달하거나 쓰여진 대본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돌 팬들은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 실제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출퇴근길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사생팬이 되기도 한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가수의 모습을 넘어선 무언가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곤 그 모습이 자신이 그리는 판타지와 부합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실제 모습이 자신의 판타지와 일치하지 않는 순간 실망하고 비난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팬들이 원하는 모습만 골라서 보여주거나 혹은 덧붙이고 꾸며내서 보여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 속의 미마도 그랬을 것이다. 팬들이 원하는 모습, 회사에서 원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미마가 출연하는 드라마 대사처럼 그녀는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당신은 누구죠?” 이 물음은 아마도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과 같은 의미일 것이다. 미마의 이런 물음은 아이돌 시절의 미마, 자신을 측은하게 여기고 돌봐주는 루미, 배우가 된 미마를 죽이려는 남자 등 여러 사람을 향한다. 이들은 아마도 미마의 혼란스러운 마음속에서 생겨난 다양한 자아일 것이며, 이 과정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방황하고 분열된다. 만들어낸 이미지가 현실을 침범하고 결국엔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양한 이유 때문에 우리의 모습을 감추고 꾸며낸다. 친구들 사이에서의 모습, 연인 사이의 모습, 부모님 앞에서의 모습, 회사에서 일할 때의 모습이 모두 같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빛나는 순간을 취사선택해 스스로 전시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모습 중 일부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적당히 꾸며낸다. 짧은 하루 안에서도 아침에는 무심한 아들이었다가 오후에는 따뜻하고 다정한 남자 친구였다가 저녁에는 적당히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한 친구가 된다. 한때는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비치는 나를 보며 혼란스러워한 적도 있다. 그러나 애초에 고정된 '나'라는 것이 있다는 생각 자체가 틀렸을지 모른다. 말과 행동은 다양한 상황과 관계 속에서 얼마든 변할 수 있고 그렇다고 그중 어느 하나만 진짜일 이유는 없는 것이다. 내가 보여주는 여러 가지 모습도 결국 '나'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런 생각은 결국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한 마디로 답할 수 있는 명쾌한 답을 내리고 싶은 마음에서 온 것이 아닐까. 그러면 편하니까. 복잡한 답을 원하거나 혹은 애초에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