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인연으로 만드는 힘, 용기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에서는 ‘제시’도 ‘셀린’도 마주치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영화를 본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기차여행을 하며 혹시나, 우연히,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나지는 않을까? 하며 자기도 모르게 기대를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뜨거운 계절이 오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벌써 20년이 된 영화다. 하지만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가 않다. 20년 사이에 달라진 것이라고는 두 주연배우가 중년이 되었다는 것(물론 여전히 아름답지만), 마주 보고 앉아 손으로 통화하는 시늉을 하며 마음을 고백하던 두 사람이지만 이제는 영상통화도 가능하다는 것, 더는 LP판으로 설레는 사랑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뿐인 듯하다.
영화를 보며 지금과 다른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어째, 20년 전이 지금보다 더 좋았던 것 같다. 연락도 만남도 이동도, 모든 것이 사랑하기에 더 편리해진 지금인데 어째서일까? 아마 그때가 아니었으면 할 수 없는 것들, 그때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었던 감정들,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공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과거를 그리워하며 추억한다. 셀린은 제시에게 내 인생이 추억의 모음일 뿐인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과거에만 머물러 그때를 그리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셀린은 제시를 만나 또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저 추억으로만 남지 않을지도 모를, 찬란한 추억을 말이다.
처음 만난 기차에서 제시가 파리로 돌아가는 셀린에게 함께 비엔나에 내릴 것을 제안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래도 두 사람은 어떻게든 만날 운명이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바로 그때, 그 순간 비엔나에서 제시와 셀린이 만들어간 아름다운 추억은 쌓이지 않았을 것이다.
제시와 셀린에게 단 하루가 아닌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고, 서투르지도 않고 가난하지도 않은, 그때보다는 모든 것이 완벽해진 순간에 만났으면 어땠을까? 두 사람은 서로를 그리워할 필요 없이 더 완벽한 사랑을 금세 이뤘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족하지 않은 만큼, 그리움의 시간이 필요 없는 만큼, 애틋함도 없었을 것이다.
비엔나에서 꿈같던 하루를 보내고 헤어져야 했던 제시와 셀린은 6개월 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은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은 짧았지만 애틋함은 컸고, 여운은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