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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세권 Feb 25. 2019

5. 이것은 중국소설인가 한국소설인가

 <사장을 죽이고 싶나-우리는 해냈다!>라는 제목만 봐서는 직원을 착취하는 악덕 사장을 살해 모의하는 직원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지만 이 책은 정전으로 인해 폐쇄된 고층 빌딩의 꼭대기에서 벌어진 밀실살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장이 죽기는 죽는다.)     

누가 사장을 죽였나?

 런던 극장가에서 무명 배우로 근근이 살아가던 위바이통에게 어느 날 양안옌이라는 금융 사업가가 찾아온다. 양 사장은 위바이통에게 금융 엘리트로 만들어주겠으니 중국으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중국으로 돌아온 위바이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시체가 되어 누워 있는 양안옌 사장이었다. 가슴에 칼을 맞아 죽어버린 사장을 둘러싼 네 명의 직원들과 위바이통. 누가 사장을 죽였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양 사장의 초대로 빌딩을 찾아온 손님 네 명이 도착한다.

  태풍으로 정전이 돼 캄캄해진 88층의 고층빌딩. 엘리베이터는 멈췄고 비상계단의 철문은 자물쇠로 잠긴 완벽한 밀실 상황에서 양 사장의 시체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직원들의 죽음. 양 사장을 죽인 사람은 누구인가?     


금융 엘리트가 소설을 쓴다면

 <사장을 죽이고 싶나–우리는 해냈다!>는 금융업에 종사하는 원샨(文善) 작가의 작품이다. 홍콩에서 태어나 현재는 캐나다에 살고 있는 원샨 작가는 타이완 추리소설협회 해외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전작인 <역향유괴>제3회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을 수상했고 이 작품은 홍콩에서 영화화 되었다.

 소설가 찬호께이는 추천사에서 “본격 추리소설의 혈통을 이으면서도 다양한 범주를 섭렵, 음미할수록 깜짝 놀랄 만한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극찬했는데 읽다보면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살인사건은 밀실에서 일어나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이 갖고 있는 배경은 중국, 영국, 미국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여기에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던 9.11테러도 중요한 사건으로 등장한다.

 원샨 작가는 밀실살인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은 본격 추리소설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 금융업과 스타트업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덧붙여 나간다. 창업투자펀드의 징벌적 조항이나 3D 입체영상 투영 기술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다수 등장한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건 원샨 작가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작가의 프로필로 홍콩에서 태어나 캐나다에 살고 있는데 타이완에서 책을 펴내고 작가로 활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무경계의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일단 홍콩 출신의 캐나다 거주 작가가 중국어로 쓰고 대만에서 나온 이 소설은 중국 소설인가, 대만 소설인가. 아니면 홍콩 소설인가. 작품 속에도 등장하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구절이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원샨 작가의 정체성과 소설 속 등장인물의 죽음, 그리고 폐쇄된 빌딩 꼭대기 층의 비밀이 줄리엣의 이 대사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이름이란 게 대체 뭐란 말인가요? 우리가 장미라 부르는 꽃의 이름을 바꾼다 해도 그 향기는 여전할 텐데….”     

소설이라는 거울을 통해 본 한국 사회

  이 책을 읽다보면 내가 중국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한국 소설을 읽는 중인지 헷갈린다. 두 나라 모두 빠른 속도의 경제발전을 겪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의 경제 시스템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중점 발전 도시로 지정되어 낡은 건물이 헐려나가고 그 자리에 세워지는 고층 빌딩과 아파트들. 평범한 사람의 월급으로는 살 수 없는 아파트값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젊은이들은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한 부모세대가 살던 그런 집에서는 살 수 없을 거라 한탄한다.

 아이가 영어를 쓰는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중산층 가정에선 영어를 할 줄 아는 동남아 출신 가사도우미를 집에 들인다. 얼마 전에 병원엘 갔다가 본 광경과도 일치하는 내용인데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엄마 옆에 영어를 쓰는 외국인이 함께였는데 아이를 돌보는 일은 외국인 여성이 전담하는 것 같았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사람의 일자리를 인공지능이 대체한다는 이야기는 이제 신물이 날 정도로 봐왔고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하지만 양안옌 사장이 모든 것을 컴퓨터화 하지 않고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고용해 금융 엘리트로 만들었듯이 아직까지는 사람(의 임금)이 로봇보다 싸다. 우리 사회에서 사람의 일자리가 보전되고 있는 이유도 마찬가지라 다행이라 해야할까. 하지만 임금이 싸다는 건 다른 한편으론 끔찍한데, 로봇이 비싼 건 제쳐두고, 우리나라가 (가진 건 인적 자원뿐이라) 사람을 연료처럼 갈아 넣어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장을 죽이고 싶나>는 여러 가지 트릭으로 얽혀 있는 소설이라 책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쓸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역시 이런 본격 정통 추리소설은 읽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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