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다시 가질 수 있지만,
내가 나의 첫 직업을 공무원으로 정했을때 부터, 아니 그 이전에도, 내 인생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한번도 예상 못한 일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민’이다. 1년여를 매일같이 도서관에서 10시간씩 공부한 이유는 내 믿을 구석을 만들기 위해서 였고, 애써만든 내 믿을 구석을 3년만에 내 스스로 그만두는 일은 생각조차 한적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민 할 결정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쉬웠다. 나에게는 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직업은 다시 가질 수 있지만, 이 사람은 내 인생에서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은 직업을 갖는 것이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은 이 사람을 만나게 된 순간이다.’라는 생각이 든 순간, 결정은 쉬워졌다. 그때 깨닫게 된 것이지만, 어떤 결정이든 망설여진다면 그 결정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어떤 결정을 바로 내릴 수 없다면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이유가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지않기로 결정하고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정말 하고싶은 일은 나를 고민하게 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다른 나라에 가서 정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고,
사회생활을 막 시작해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어린시절의 치기였던 것 같다.
결혼을 결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그 후 나의 결정을 들은 주변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다시 생각해보라며 말렸다.
한국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버리고 아무것도 기약할 수 없는 다른나라의 삶이 녹록치 않을 거라는 걱정은, 사실 맞는 말이었다. 미래의 일은 아무도 약속할 수 없고, 현재는 이미 내가 노력해서 얻어낸 내 손안의 것이니까…
그리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나서 자기의 일이 필요한데 외국에서 다시 자기일을 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뭘할지 계획도 없으면서 무작정 가는건 너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서는 좋지 않을 것이다’ 라며 나를 걱정했고, 누군가는 응원을 했으며, 누군가는 직장을 그만 둔다는 결정을 한 나를 부러워했다.
사실 아무런 걱정과 계획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한국에서 선생님을 했으니 가서 비슷한 전공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생각과 이 참에 내가 고등학교때 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공부를 해보고 나에게 맞는 다른 전공을 선택해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 생각들이라는게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자신이 있었고, 특히나 남편과 함께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변의 걱정들을 뒤로하고 나는 이민을 하기로 결정했고, 현재는 다시 못만날 것 같은 남편과 결혼해서 미국에서 새로운 직업을 가지고 한 아이를 키우며 살고있다. 그 동안은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지만 10여년간의 이민 이후의 내 삶은 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