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

에디 제이쿠 / 동양북스

by 현주 약안먹는약사

1920년생 유대인이면서 독일인이 쓴 책이다. 히틀러 정권시절, 유대인 말살시기에 몇몇 강제수용소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전전하다 살아남은 자신의 경험담을 썼다.

아무 이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했던 죽음과도 같았던 고통. 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은 그 기억을 무의식 깊숙이 두어 아예 잊거나, 아니면 의식적으로 잊고자 노력한다고 했던가. 저자도 자식이나 손자들에게 자신의 경험에 대해 함구하다가, 이러한 일이 역사에서 반복되면 안 되겠다 결심하면서 노년의 나이에 강연도 하고, 책도 쓰게 되었다 한다.

비교적 부유하고 안정된 중산층 생활을 누렸던 그는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두들겨 맞고 체포된다. 이후 이어지는 수용소 생활은 인간이하의 생활,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을 잡고 차라리 죽고 싶은 생활이다. 그런 와중에 그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가족과 친구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그가 짐승 같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야만 했던 이유이다. 같이 수용소에 들어갔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스실에서 죽고, 숱한 유대인이 나치정권의 게임처럼 총살당하는 현실 속에서, 엄청난 고통과 절망 속에서 그래도 희망을 품고 살게 해 준 친구, 크누트가 그에게는 있었다.

교육이 아들을 살아남게 하리라 믿은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기계공학을 공부시키고, 결국 그 기술이 그를 죽음의 고비에서 여러 차례 살려준다. 그의 어머니는 남겨진 이웃 고아들을 보살피고, 마지막 순간까지 숨겨줌으로써 그들의 생명이 살아남게 해 준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기에 에디는 그 어떤 순간에도 사람에 대한 사랑과 도덕심을 버리지 않은 것 같다.

결국 전쟁이 끝나면서 자유를 찾게 되고, 시민으로 돌아오고, 여동생과 친구도 다시 만나게 된다. 여기서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또 하나의 시작이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사람들, 그들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치거나 자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 그리고 다시 살던 집으로 왔으나 가족이나 지인들, 집은 없어지거나 예전의 그대로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에게도 고비는 있었으나 이후 에디는 결혼하여 가정도 꾸리고 사업도 하면서 행복한 생활을 이어간다.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나치정권에 대한 가장 확실한 복수라고 생각하면서.

저자가 품었던 의문, 자신의 이웃이었고 친구였던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때리고 벌레취급하고 죽이고 하는 상황은 대체 무엇일까.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 선량한 시민이었던 한 사람이 살인자가 되어가는 과정. 거기에는 도덕심이나 양심의 가책은 없다. 히틀러는 당시 기울어져 가는 독일을 일으키기 위해 적이 필요했고, 그것이 유대인이었다고 한다. 이 모든 책임을 유대인이라 설정하고, 온 국민이 분노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최고 권력층의 명령에 의한 합법적인 살인.

자신이 그 상황 속에 처해 보지 않았으면 함부로 타인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가 살아온 인간의 세상은 비합리적이고 잔인한 일이 많았다. 종교의식을 위해 사람을 제물로 삼고, 나이 든 부모를 산에다 버리고, 마녀사냥을 하고, 노예, 미친 사람, 나환자들은 사람취급을 못 받았다. 그러나 그 시대, 그지역에선 그것이 문화이기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치정권 아래의 만행이 그저 명령에 의한 수행이었을 뿐이라고 하기엔 너무 잔인했다. 오히려 그 명령을 넘어서서 잔인함을 즐긴다고도 느꼈다.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자신도 위험해지는 상황이라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도 도가 지나쳤다는 느낌이 들면서, 근본적으로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회에 무리 지어 살아간다. 그리고 그 시대와 공간에 따라 문화가 다를 것이다. 우리가 속해있는 문화는 공기와 같아서 너무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행하는 행동과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어떻게 알 것인가. 지금 살고 있는 공간, 지금 살고 있는 시대에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련의 것들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면 말이다.

“그 어떤 것도 단지 그것에 관해 얘기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비록 상대를 존경할지라도 그가 한 말을 그대로 믿지 마라. 철저히 검증과 분석을 해서 선이나 만물에 유익하다면 그것을 믿고 붙잡아 자신의 지표로 삼아라” -석가모니-

부처는 자신의 논리를 포함해서 이 세계의 어떤 논리에도 미혹되지 말라고 하였다. 결국 보편적인 상식을 기반으로 자신이 깊이 있게 통찰하여 판단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시대를 거스를 수 없겠지만, 시대의 흐름이 무조건 옳은 것처럼 따라갈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과학도 결국 가설을 기반으로 하기에 진리는 아닌 것이다. 그 시대 속을 살면서도 올바르게 살고자 한다면, 나름의 통찰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죽음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도 주위의 많은 선한 사람들을 보았다고 했다. 어려운 처지에서 서로 돕는 사람들,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주는 사람들,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타인을 돕는 사람들 말이다.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은 과연 선한 사람들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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