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명이 ‘노화’라고?
보통 때와 같은 평범한 저녁이었다.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누우려는데 어깨와 등이 아파서 도저히 누울 수가 없었다. 남편의 도움으로 간신히 누웠는데 엄청난 통증에 다시 일어났다. 일어나 앉았는데 팔이 저리면서 떨어져 나갈 듯이 아팠다. 너무 아파서 다 큰 성인인데도 소리 내 울었고, 대학생 아들은 당장 병원응급실에 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중학생 딸은 어쩔 줄 몰라하며 곁에 머물렀다. 어쨌든 오늘 밤을 무사히 넘겨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남편이 나를 다시 눕혀주었고, 찜질패드를 깔고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아픔을 무릅쓰고 출근했다. 진통제를 먹어가며 일을 했다. 나는 아픈 것을 티를 내면 안 되는 약사다. 아픈 게 티 나면 환자들은 약사도 아프냐고 놀란다. 약사도, 의사도 아프고 병드는 게 당연한데, 자기 아픈 것도 못 고치냐는 은근한 핀잔이다.
주말이 되어 집 근처 도서관에 갔다. 뭔가 사고가 나거나 외상으로 아픈 게 아니라면 몸 내부의 기능에 문제가 생긴 거다. 왜 아픈지 찾아봐야 했다.
도서관에 꽂힌 책들을 이것저것 뒤지다가 책 하나가 눈에 띄었다. 지금은 저자도 책 제목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저자는 기자 생활을 하는 청년이다. 회사 생활에 쫓겨 먹는 것도 불규칙하고 부실했다. 야근과 회식이 반복되고, 마감 시간 때문에 늘 스트레스를 달고 살았다. 운동할 시간은 전혀 없고 마음도 없다. 그렇게 생활하며 남은 것은 퉁퉁 부은 얼굴과 엄청난 뱃살과 피곤과 무기력함이었다.
해서 그는 자신의 대학 시절을 돌아본다. 운동을 좋아하고 활력 넘쳤던 시절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일단 걷기를 시작으로 운동을 하면서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다시 찾아간다는 이야기였다.
이름 없는 작가의 고백 같은 책이다. 자기 경험을 녹여냈기에 나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나도 나 자신을 돌아봤다. 아침에 일어나 지각만은 면하려고 허겁지겁 출근한다. 식구들도 모두 아침에는 정신없다. 아침을 챙겨 먹는 딸만이 대충 식사한다. 일단 출근하고 나면 하루 일과는 어쨌든 돌아간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퇴근 시간을 간절히 기다린다. 집으로 돌아와 급하게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배고픔의 절정에 이른다. 식사하면서 나와 남편은 술을 곁들이는 경우가 많다. 배고픔도 해결되고 하루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도 순식간에 없어진다.
먹는 것 자체가 도파민이 분비되어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데, 술까지 마시니 거의 완전한 행복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점차 음식과 술에 중독되어 간다. 술을 마시면 음식에 대한 포만감이 없어진다. 계속 뭔가를 먹게 된다.
집안일을 어느 정도하고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소화되지 않은 부대낌을 느끼며, 해소되지 않은 피곤함을 느끼며 일어나 다시 하루가 반복된다.
운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나는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도 운동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학창 시절에는 운동을 못해서 싫어했던 것이 나이 들면서는 귀찮아서 싫어졌다.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싫어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처럼 내 몸이 망가진 이유가 운동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도 운동으로 그 진창에서 벗어났듯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집 근처 공원으로 갔다. 꽤 늦은 저녁이라 어두웠다. 사람들이 축구장 주변을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걷거나 뛰고 있었다. 남녀노소 다양했다. 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풍경이었다. 이토록 어두운 저녁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운동하고 있었다. 편안함의 세계에만 있던 내가 또 하나의 세계를 보는 느낌이었다. 충격이었다.
일단 나도 원을 그리며 걸었다. 엄청나게 센 진통소염제와 근육이완제를 먹고도 한쪽 어깨와 등의 통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팔을 저으며 걸을 수가 없었다. 팔을 늘어뜨리고만 있어도 결림과 아픔이 지속되었다. 결국 주머니 속에 한쪽 팔을 넣어 고정한 채 마냥 천천히 걸었다. 하늘에서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달도 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언덕을 내려가며 보았던 바로 그달이었다. 나는 얼마나 밤하늘을 잊고 지냈던가.
그렇게 나의 걷기는 시작되었다. 저녁마다 나는 거의 매일 공원길을 걸었다. 공원길을 걷다 보니 좀 더 멀리 걷고 싶어졌다. 공원에서 좀 더 벗어나면 당현천이 나온다. 이후 당현천을 걸었다. 걷기만 했다. 걷는 것만도 만족했다. 사람들을 보며 하늘을 보며 나무들을 보며 바람을 가르며 걷는다는 것은 충만감을 느끼게 했다.
‘통즉불통 불통즉통’ 기혈이 통하면 아프지 않고 기혈이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한의학의 기본원리이다. 한의학을 배우면서 너무도 당연하다고 알고 있었던 사실인데도, 그저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끔찍이도 아팠던 통증은 꾸준히 걸으면서 진통제 없이도 서서히 줄어들어 어느새 없어졌다.
결국 나는 혈액의 흐름이 막혀 통증이 유발되었다. 그것이 풀어지면서 통증도 사라졌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춥거나 눈이 오면 운동하는 사람들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몹시 춥던 어느 겨울날, 그 긴 길을 거의 혼자 걸었던 것 같다. 추위도 추위지만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날씨에 상관없이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찾고 싶었다.
이사 오고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집 바로 옆에 있는 구민체육센터에 가보았다.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수영을 선택했다. 가장 자신 없는 종목을 택한 것이다. 그동안 무던히도 피해 왔던 것을 맞대면해 보고 싶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서보고 싶었다. 수영은 나에게 거의 공포에 가까웠다. 가는 날 아침부터 벌써 두려워지는 것이었다. 실제로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팠는데, 호흡이 안 되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다. 몇 개월을 참고 다니니 두통은 사라졌고, 남들 한 달 할 것을 나는 일 년 하는 식으로 다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니는 것에 나는 만족했다.
기대가 적으면 만족도가 올라간다고 했던가. 나는 운동에 관한 한 나에 대한 기대가 거의 없다. 단지 포기하지 않고 다니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응원했다. 누군가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만을 생각하며 다니는 것이라 더 그랬다.
처음 걷기를 시작한 게 50대 초반이었고, 이제 나는 60대 초반이다. 걷기가 나비효과가 되어 미약하나마 지금도 운동을 놓지 않고 하고 있다. 틈틈이 헬스와 필라테스를 하고 있다. 운동을 하는 강도나 빈도는 낮으나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약국을 하면서 환자들이 너무도 쉽게 병원에 의존하고 약을 찾는 것을 보아왔다. 물론 외상이라든가, 감염이라든가, 뇌 질환이나 심장질환 같은 경우는 병원을 찾아가 빠른 처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하는 동네약국의 경우, 혈압, 당뇨 같은 대사 질환자들이 많다. 주변에 노인들이 많아서 그런 환자들이 더욱 많다. 그분들은 일단 혈압이나 당뇨로 시작하다가 점차 복합적으로 나타나 여러 가지 약을 한 움큼씩 먹는다. 그런 분들을 보면 안타까움도 느낀다. 일단은 생활 습관을 돌아보면 좋을 텐데 싶어서이다. 나름 조언을 하다 보면 너무도 상식적인 이야기라 오히려 당연한 얘기를 왜 하느냐는 식이다. 사실 우리는 몰라서가 아니라 하기 싫어 안 하는 게 맞을 거다. 하지만 상황이 심각해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 상식적인 당연한 얘기가 몸이 무너지면서 자신의 생활 습관을 돌아봐야 순간이 되는 것이다. 나도 그랬듯이 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 아픈 경우가 종종 생긴다. 젊었을 때는 전날 잠을 못 잤다거나 어딘가에 부딪혔다거나 과식을 했다거나 뭔가 이유가 있어서 아팠다. 지금은 아무 이유 없이 관절이 아프고, 부어서 피가 나고, 어깨를 움직일 수 없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다 보면 거의 ‘노화’가 질병명으로 나온다. 물론 노화가 근본원인일 수는 있다. 하지만 노화를 핑계로 숨어들 수는 없다. 젊었을 때는 생활습관이 나빠도 빠른 회복력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었을 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좀 더 자신의 생활습관을 돌아보며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말 질병명이 ‘노화’라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