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왜 우리는 소비하는가

by 현주 약안먹는약사

대학교 때 미술수업 시간이었다. 중년의 남녀가 쇼핑을 하고 나온 듯 남자가 쇼핑백을 들고 있는 조각상이 미술책에 나와 있었다. 회화가 아닌 조각상이라 표정은 어느 정도 무덤덤해 보였다. 나는 조각상의 얼굴에서 무덤덤한 표정 뒤에 숨겨진 뭔가의 지침과 허무함을 보았다. 이상했다. 쇼핑을 하고 뭔가를 소비한다는 것은 즐거움 아니었던가.

어린 시절, 그러니까 내가 9살 정도였던 것 같다. 나보다 어린 동생 2명을 이끌고 아케이드를 갔다. 당시 우리 가족은 재래시장이 길게 이어지는 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백화점과 유사한 아케이드가 생긴 것이었다. 그것은 작은 동네에서 생긴 획기적인 일이었고 광고도 요란해서 한번 가보고 싶었다. 물론 뭔가를 사고자 함이 아니라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아케이드에 들어서자 화려한 조명 아래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그 옆에는 점원들이 상품을 설명하며 팔고 있었다. 나와 동생들은 홀린 듯 물건들을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꾀죄죄한 어린아이들이 매장을 휩쓸고 다니자 점원들의 따가운 눈총이 느껴졌다. 어른들에게 야단맞기 전에 빨리 그곳에서 나와야 하는데, 어느 매장에서 우리는 발목이 잡혔다. 장난감코너였다. 인형부터 자동차, 로봇등 온갖 장난감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며 진열대에 다가가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젊은 부부가 어린 딸들에게 인형을 골라주고 있었다. 예쁘게 차려입은 딸들은 인형을 들고 있었고 마냥 행복해 보였다. 동생들은 부러워하며 그것을 지켜보았다. 나도 그들을 지켜보았다.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그 순간, 인형값을 지불하기 위해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가장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족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일해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피곤함, 지침이 보였다. 그 안쓰러움이 너무 강렬해서 명치끝이 아프도록 아려왔다.

어린 내가 가장의 책임감까지 아프게 느낀 이유는 우리 집이 가난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가족은 5녀 1남이다. 생존을 위해 늘 피곤해하며 살아가는 부모님을 보면서 어른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은 고된 일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이 미술수업의 작품을 보면서 생각났던 것 같다. 작가는 아마도 나처럼 가장의 고달픔, 아니 현대인들의 살아냄의 고달픔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소비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노동이 제공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라는 책을 읽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라 관심 있게 읽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이 대량생산을 통해 상품의 단가를 낮춤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고, 대량판매를 통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 결국 기업은 많이 만들고 많이 팔아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소비자가 많이 사야 경제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청난 광고가 쏟아진다. 광고를 보고 있자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필요한 것인 양 느껴진다. 광고는 유행을 만들어내고 소비욕망을 만들어낸다. 광고로 만들어진 브랜드는 거부할 수 없는 자체적인 지위를 확보한다. 단지 그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뭔가 지위를 얻은 듯하다.

이에 더불어 금융계에서는 신용카드와 대출을 이용해 개인의 소비를 수월하게 해 준다. 당장 돈이 없어도 집도 사고 명품백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빚이 있어야 경제가 돌아간다.

우리가 돈을 은행에 예금하면 은행은 일정비율을 지급준비율로 정해서 중앙은행에 예치해 두고 나머지 금액으로는 대출을 해주는 것이다. 대출은 또 다른 대출을 낳아 통화량은 커져 간다. 즉 자본주의 경제에서 돈은 단순히 인쇄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대출을 통해 창조되는 것이다.

그래서 은행은 저축보다는 대출을 선호한다. 은행은 은밀하게 곳곳에서 대출을 권하고 있다. 신용카드의 ‘리볼빙’ 제도가 그러하고 카톡도 너만을 위한 대출이라며 수시로 우리를 유혹한다. 또 은행의 마이너스 통장은 어떠한가. 주택담보대출처럼 정말 필요한 것들도 있지만 어쨌든 빚은 꼼꼼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우리는 소비를 미덕으로 여기고, 빚을 권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읽으며 소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소비뿐 아니라 우리의 욕망을 위한 소비까지 가세하다 보니 우리는 소비자로서 어디까지 와있나. 현대인의 소비는 욕망을 위한 소비가 거의 대부분이라 한다. 욕망은 끝이 없는데 우리의 재정은 한정되어 있다. 소비를 하면서도 우리는 늘 부족하다. 주변과 비교하며 늘 더 많은 소유에 목말라한다. 광고와 언론 매체가 이를 심하게 부채질한다. 우리는 소비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건강과 젊음을 담보로 미치도록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늙어서 남는 것은 질병과 허무함뿐일 수도 있다.

어른들은 간혹 말한다. 이제 남은 것은 한주먹 가득한 약뿐이라고. 은퇴하고 남은 것은 집 한 채인데 그것조차 대출에 엮여있다면 정말로 불안하고 허무해진다.

‘자본주의’에서 소비에 대해 읽었을 때 어렸을 때의 기억과 조각상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는 자본주의경제 한가운데서 살고 있다. 그래서 그 경제시스템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시대를 벗어나서 살 수 없다고는 하지만 시대를 알고 사는 것과 그냥 살아가는 것은 꽤나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생각해 본다. 왜 우리는 소비하는가? 우리의 소비는 필요소비인가, 욕망소비인가. 욕망소비를 위해 빚을 내서라도 소비하는 호구는 아닌가. 소비에 관한 올바른 주관과 철학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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