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루카스'를 관람하고
딸이 티켓을 보내왔다.
딸은 대학시절부터 밀알복지재단 후원자였다. 재단에서는 후원자들에게 공연 무료 티켓을 보내주곤 했었다. 선착순이기도 하고, 시간도 맞아야 해서 이번이 처음으로 가게 된 공연이었다.
딸이 보낸 티켓은 뮤지컬 <루카스>
처음엔 뮤지컬인 줄 알았는데, 뮤지컬 실황을 영상으로 제작한 뮤지컬 라이브 영화였다.
뮤지컬 <루카스>는 캐나다 토론토의 발달장애인 공동체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한다. 발달장애인 부부 사이에 아이가 생기는데, 아이는 태아 때 뇌의 일부가 밖으로 빠져나오는 '뇌막류'라는 선천적 기형을 진단받는다. 아이의 이름은 루카스.
의사는 루카스가 자가 호흡이 불가능하여 태어나자마자 15분 내에 사망할 것이라고 진단하고 낙태를 권유한다. 그러나 발달장애인 부부는 루카스를 낳기로 결정한다. 아빠 앤디는 루카스를 좀 더 오래 곁에 머물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울부짖는다. 기도 덕분이었을까, 루카스는 기적적으로 17일 동안 생존한다.
이 17일이라는 짧고 눈부신 삶 동안 발달장애인 부모와 공동체 식구들이 루카스에게 온갖 사랑을 퍼붓는다. 생일파티, 출생신고, 세례식, 그리고 야외소풍까지.
장애인 부부는 태아가 선천성기형을 진단받은 것이 세 번째라고 했다. 벌써 두 번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곧 죽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에서는 주어진 생명은 낙태하지 말고 낳아야 한다고 하지만, 15분 동안의 삶이 아이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엄마가 겪어야 했던 임신과 출산의 고통은 어쩌란 말인가. 또한 아이가 죽은 후 겪게 되는 부부의 상실감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여러모로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루카스는 17일 동안 살아냄으로써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뮤지컬 중에 '고통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 보라'는 합창이 나오는데 평범한 나로서는 고통은 그저 피하고 싶은 것일 뿐이다. 내가 너무 성숙하지 못한 걸일까...
평범한 사람인 조현우가 등장하여 장애인들과 살아가면서 이야기는 살을 붙여 나간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우연히 공동체에서 일하게 된 조현우, 그는 장애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키우지도 못할 자식을 왜 태어나게 하는지, 자신의 몸도 건사하지 못하면서 왜 사랑해야 하는지, 왜 글을 배워야 하는지, 모든 게 불만투성이다.
그런데 그는 장애인 공동체에서 생활하면서 그들과 서서히 섞여 간다. 그들을 통해 진정한 사랑, 순수함, 생명의 소중함 등을 알게 된 것이다.
공동체에서의 생활을 마친 이후, 현우가 귀국하는 공항에서, 아버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어린 시절, 처음으로 받은 95점 시험지를 비행기로 접어 날렸던 아버지다. 그 종이비행기를 아버지가 들고 있다. 아버지가 접은 비행기는 그를 무시함이 아니라 그에 대한 아버지의 자랑스럼움이었음이,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밝혀진 것이다.
그는 아버지를 이제야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그는 아버지를 꼭 끌어안는다.
그의 아버지도 발달장애인이었다.
사람의 기억에 얼마나 많은 왜곡과 자의성이 개입되는지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 자신도 형제들과 얘기하다 보면 어렸을 때 같이 겪었던 추억도 서로 다르게 기억되는 것에 종종 놀라곤 했었다.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정상의 테두리 안에 들어야 비로소 안심하며,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피하려 애쓴다. 장애인들을 보며 비정상인이라고 폄하한다.
그런데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비정상인'의 범위는 시대와 사회의 권력관계, 종교적 신념, 의학적 지식수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으며, 매우 광범위하고 자의적인 기준으로 적용되어 왔다.
중세 시대 이전에는 정신적 문제를 겪는 사람들은 악마나 사탄에게 홀렸다고 여겨져서, 치료 대신 구마 의식이나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기이한 신체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신의 저주로 여겨져 격리되었다.
17~18세는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가 확산되면서, '비정상인'의 범위는 매우 넓어졌고, 이성적이지 않거나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규정하고 대규모로 감금했다. 광인, 극빈자나 거지, 성병 환자가 감금의 대상이었다.
19세기에는 '비정상'이 의학적, 과학적 지식의 틀 안에서 재정의되기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광인은 정신질환자로 바뀌어 치료나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범죄자나 비행 청소년, 그리고 성적(性的)인 정체성이 당대의 도덕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역사적으로 '비정상인'은 그 시대의 주류 가치와 질서를 위협하는 모든 집단을 포괄하는 유동적인 개념이었다.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했고, 같은 시대라도 살아가는 장소에 따라 변했던 것이다.
결국, 비정상인에 대한 절대적인 개념이나 기준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발달장애인은 비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인 우리와 다를 뿐이다.
그들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