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연례행사 ‘김장 담그기’

몸살을 동반한 한 해의 든든한 저장식품

11월이 되면 김장에 대한 이야기로 술렁인다.

집집마다 김장에 대한 저마다의 방법들이 있다.

직접 하거나, 같이하고 일부를 받아오거나, 그냥 받아오거나, 구매하거나.


어쨌든 김장은 우리네 가정에서 꼭 치러야 하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김장은 2013년에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한국의 정체성과 공동체 정신을 대표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김치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김치는 오늘날의 빨간 김치와는 달리, 채소를 소금물에 절여 장기간 보관하는 발효 음식의 형태였는데, 오늘날의 매운맛의 빨간 김치는 임진왜란(1592년) 이후 고추가 전래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긴 겨울 동안의 저장식품이니 만큼, 겨울에 들어서면서 각 가정마다 김장을 장만하기 위해 몸살을 앓는다.

요즘은 아무리 직접 김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절임배추는 사서 하는 경우가 보편적인 것 같다.

몇 해 전 우리 집도 남들 따라 바닷물에 담가 절구 었다는 절임배추를 샀는데, 막상 받고 보니 초록잎 부분은 절여지고, 흰 줄기 부분은 그대로였다. 할 수 없이 다시 절이는 수고를 했다.

그 이후 힘들어도 배추를 직접 사서 절였다.


김치를 사 먹기로 결심하다

그러다가 재작년에 김장을 담그면서, 남편이랑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앞으로는 무조건 김치는 사서 먹는다고 결심을 했다. 그래서 김치를 사 먹기 시작했다.

그동안도 간간히 김치를 사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담근 김장은 있는 상태에서 보조적인 것이었다.

사 먹는 김치가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집에서 한 김치보다 맛있다고도 느껴졌다. 그런데 계속 먹다 보니 묘하게 너무 단것도 같고, 약간 질리는 것도 같았다.

그래도 편하다는 이유로, 나는 시켜 먹는 것에 마음을 두었다. 다른 식구들도 "이제는 힘들게 김장하지 말고 사 먹는 게 좋겠다"에 의견이 모아졌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강경하게 반대했다. 자신은 사 먹는 김치가 너무 맛없고 싫다는 것이었다. 김장은 반드시 해야겠다고 나섰다.

결국은 내가 한걸음 물러났고, 김장을 하더라도 절임배추를 사서 하자고 했다. 그런데 지인의 소개로 절임배추를 시키려고 하자, 기간도 오래 걸리고, 배달 오는 요일도 평일이었다. 주말을 이용하여 김장을 해야 했기에, 결국은 직접 절이기로 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남편이 배추를 사러 갔다.

망에 든 배추를 담고 계산대로 가려는데, 해남배추가 들어오고 있다는 말이 돌면서, 일반배추를 사서 계산대에 줄을 서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다시 배추를 바꾸러 갔다고 했다. 남편도 덩달아 해남배추로 바꿔 들고 왔다고 했다. 크기도 더 작은 것 같은데, 남편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왜 사람들이 해남배추에 열광하는 걸까.

그것도 일종의 브랜드 효과일까? 나는 궁금해서 해남배추에 대해 찾아보았다.

일반 배추는 특정 지역에 한정되지 않고, 봄, 여름, 가을 등 계절별 재배 환경에 맞춰 다양한 품종으로 재배되는 배추를 통칭한다.

반면, 해남 배추는 겨울철에 해남에서 재배되는 배추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배수가 잘 되는 황토 땅, 그리고 온화한 겨울 기후 덕분에, 명품배추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김장 김치를 담갔을 때 오래 두고 먹어도 맛과 조직감이 잘 유지된다고 한다.


남편이 배추를 절이기 위해 잘라놓은 배추가 욕실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런데 잘라진 배추의 단면을 보니 배추가 두껍지 않고 얇으면서도 촘촘하게 꽉 차 있었다. 색깔도 노랑과 연두색이 조화롭게 섞여 있었다.

뭔가 맛있을 것 같은 모양새다. 그래서 해남배추인가 보다. 단순한 브랜드효과가 아니었다.


김장을 담글 때 가장 힘든 일이 배추 절이는 일이라고 한다.

노동력도 많이 들어가지만 무엇보다 배추의 흰 부분과 초록 부분을 조화롭게 절이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다들 절임배추를 사는 것 같다.

우리 집에서 배추를 절이는 일은 남편이 혼자 한다. 사실 나는 엄두를 못 낸다. 일단 배추만 봐도 몸살이 날 것 같다. 김장을 담가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남편이니, 나는 한발 더 뒤로 물러났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벌써 물소리가 나고 있다.

남편이 기어이 배추를 절구어 물을 빼고 있다. 혼자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남편 뒷꼭지에 대고 한마디 했다. 내년부터는 일찍 서둘러서 절임배추를 신청해서, 편하게 김장을 하자고.


김치를 사지 않고 담그게 된 것에는 약국손님들도 한몫했다. 11월 초입부터 몸살약이나 강한 피로회복제를 사러 온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김장을 하느라 힘들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면 꼭 되묻게 되는 질문이 있다. 몇 포기나 했느냐는 것이다. 보통은 생각보다 많이 한다. 100~200 포기했다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4인 가족 기준 김장은 몇 포기나 하며, 비용은 어느 정도인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4인 가족 기준으로 김장을 평균 18~20 포기한다고 하며, 대략적인 비용은 절임배추 기준으로 했을 때 35~50만 원 정도라고 한다.

배추 가격은 가을배추 출하가 늘어나는 11월 초·중순부터 하락세로 전환되어 김장 성수기에 가장 저렴해지기에, 가장 경제적인 김장 시기는 11월 중순에서 12월 초 사이라고 한다.


가족 저마다의 입맛에 따른 김장 담그기

김장을 하는 어려움 때문에 사서 먹는다고 했지만, 내 마음 한켠에서도 김장은 담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역시 가족 저마다의 입맛이 있는 법이다.

집안의 김치통을 다 비운 후, 새로 한 김장을 차곡차곡 담고, 김치냉장고에 저장했다.

김장은 하는 게 힘들어도, 며칠 몸살을 앓고 나면 한해의 든든한 먹거리가 장만되니, 뭔가 부자가 된 느낌이다. 해냈다는 뿌듯함이 차오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