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고독한 중년부인의 우울증 (1)
약국 환자 중에, 제법 큰 키에 화장도 짙고, 활발해 보이는 중년여성이 있었다.
그녀가 오는 이유는 대사질환약과 우울증약을 타기 위해서였다.
명랑한 말투에, 제법 솔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곤 했던 그녀는, 얼마 전 까지도 전문직으로 종사했던 커리어우먼이었다. 그래서 더욱 우울증 약을 먹는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정작 본인은 오래전부터 우울증 약을 먹어 왔다고 했다.
그녀는 부쩍 우울증이 심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퇴직 후 집에만 있다 보니 자꾸 마음도 몸도 가라앉는 것 같다고 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사람들하고 자주 만나 식사도 하고 영화도 보고 했는데, 직장을 그만두자 서로 연락하기가 쉽지 않아졌다고 한다.
가족들과 함께 하면 되지 않느냐 물으니, 결혼을 하지 않아서 혼자 살고 있으며, 친척들도 멀리 살고 있어서 관계도 소원하다고 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절대로 집에 혼자 있지 말고, 무조건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그녀는 나가도 만날 사람도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다고 했다.
아무도 안 만나도 좋으니 그냥 밖으로 나가서, 햇빛을 쬐며 걸으라고, 복잡한 시장통에 나가 사람들 틈에서 장도 보라고, 나는 열심히 권했다.
그러다 마음이 내키면 도서관이나 체육센터 프로그램에도 참가해 보라고 했다.
그녀는 이 모든 말에도 시큰둥했다. 자신은 정말 집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물론 이해는 한다. 사실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이 그녀를 행동 불능 상태로 묶어 두고 있는 것이리라.
또한 우울증 약 자체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고, 일종의 정신적 족쇄처럼 작용해 사람을 꼼짝 못 하게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나가서 햇빛아래 앉아도 보고, 걸어도 봐야 한다.
우울증 환자의 경우, 무조건 나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 : 햇빛 때문이다
햇빛을 보게 되면, 뇌의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된다.
세로토닌은 기분, 수면, 식욕, 통증 조절 등 다양한 행동과 감정에 관여하는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인데, 특히 평온함, 안정감, 행복감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나가기 힘들다면 맑은 날 창문을 활짝 열어 햇빛이 충분히 들어오게라도 해야 한다.
흔히 비 오는 날이나 구름이 잔뜩 낀날, 우리의 기분도 같이 우울해지지 않던가.
두 번째 이유 : 운동 때문이다.
나가야 하는 이유 중에 또 하나는, 나가면 일단은 걷기라도 하기 때문이다.
운동은 우울증 증상을 완화하고 치료 효과를 높이는 데 매우 효과적인 보조 치료법으로 여겨진다.
일부 연구에서는 운동이 항우울제 복용만큼의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고 보고한다.
운동은 무엇보다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
또한 의욕, 동기 부여, 보상과 관련된 호르몬인 도파민의 분비를 늘려 의욕을 북돋아 준다.
그리고, 엔도르핀의 분비도 늘려주는데, 이는 천연 진통제이자 기분을 좋게 만드는 물질이다.
이외에도 운동은 뇌 기능을 활성화시키며,
자신감과 성취감을 높여 우울감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존 J. 레이티 <운동화 신은 뇌>에서 보면,
운동이 뇌 건강과 정신 건강에 미치는 놀라운 효과를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신체 활동이 뇌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고,
우울증, 불안, ADHD 등 다양한 정신 질환을 개선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거창한 운동이 아니어도, 규칙적인 걷기, 달리기, 자전거 타기 등의 꾸준하면서도 단순한 신체 활동이 뇌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운동을 싫어하는 나에게도 희망적이다.
약국을 찾던 중년부인의 문제는 우울증이 깊어지면서, 기억력이 날로 쇠퇴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약의 복용도 자주 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정기적으로 오는 곳은 병원과 약국뿐이라며, 깊은 한숨을 지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여동생 이야기를 했다.
동생은 인천에 살고 있어서 거의 못 만나는데, 동생이 자신의 집에서 몇 달 지내다 가라고 했단다. 그녀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동생집에 가게 될 날을 손꼽으며 짐을 챙기고 있다고 했다. 친 여동생이니 언니의 딱한 사정을 알고, 잘 챙겨주겠지 생각하며, 정말 다행이라고 나는 말했다.
온갖 짐을 싸들고 갔던 그녀가 하루 만에 돌아왔다. 왜 벌써 왔냐 묻자, 얼버무리며 대답을 피한다.
이후, 말 많던 그녀가, 말없이 멍하니 앉아있다가 돌아가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녀의 처방전을 들고, 요양보호사가 오고 있다. 요양보호사를 통해 그녀의 소식을 묻고는 했다. 여전히 집에만 꼼짝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처방전에는 대사질환약만 있을 뿐 우울증 약이 빠져있었다. 이제는 우울증 약 안 먹어도 되는 상태냐고 묻자, 오히려 상태가 더 안 좋아져서, 전문 정신과에서 처방받고 있다고 했다.
그 부인을 생각하니 뭔가 안쓰러우면서도, 같이 우울해지는 기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녀가 용기 내어 무조건 밖으로 나갔더라면, 단지 걷기라도 좀 했더라면, 사람들 속에 섞여 들어갔더라면... 어땠을까.
온갖 가정 속에 마음이 복잡해지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