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집어삼키는 어둠

한강 ‘어둠의 사육제’를 통해본 우울증 (2)

지역 독서토론에서 우연히 읽게 된 한강소설 ‘어둠의 사육제’

40대 중반의 명환은 늘 불 꺼진 방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의 교통사고로 임신한 아내는 죽고, 명환은 한쪽 다리를 잃게 된다. 그리고 보상금으로 받게 된 서울의 42평 아파트, 결국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아파트는 아내와 태아의 목숨값인 것이다.

명환은 그것을 못 견뎌하며 자신을 스스로 어둠 속에 가둔다. 그가 늘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늘 죽음을 꿈꾼다.


명환의 맞은편 아파트 베란다에서 기거하는 사람은 영진.

20대의 그녀는 여상 졸업 후 상경하여 회사에 다니며, 대학을 꿈꾼다.

우연히 만난 고향언니와 돈을 합쳐 전세를 얻는데, 어느 날 언니가 전세금을 빼가면서 영진은 살아갈 집이 없어져 거리로 내몰린다. 그래서 이모집 베란다 방에서 기숙하게 된 것이다.


명환은 자신이 죽은 후 아파트를 물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래서 베란다에서 잘 수밖에 없는 그 누군가는 집이 절실하게 필요할 거라 여겼고, 그 사람이 영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아파트를 주고자 하는 명환의 끈질긴 제안을 거절하며 영진은 울부짖는다.


“불을 켜세요. 제발 불을 켜란 말이에요.

불을 켜면 되잖아요, 살림살이를 들여놓고, 텔레비전을 켜세요. 이곳이 싫으면 다른 데로 가면 되잖아요. 이 빌어먹을 서울이 싫으면 떠나버리면 되잖아요. 그만한 돈을 가졌으면 어디서 뭘 해도 살 수 있어요.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 영진의 말대로 명환은 일단은 불을 켜야 한다. 그래서 어둠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어둠은 정신을 잠식하고, 육체를 잠식한다. 일단 불을 켜야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고, 어둠에서 벗어나야 정신도 밝아질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희망의 단초는 제발 불을 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일상의 소소한 일에, 그리고 나아가 행복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명환은 끝내 어둠 속에 남았고, 결국 자살했다.


영진은 왜 끝내 그 아파트를 안 받았을까.

명환에게 그 아파트는 아내와 아이의 피의 값이었듯, 영진에게도 그 아파트는 결국 명환의 피의 값이 될 것이었다. 그 아파트로 명환이 어둠에 파묻혔듯, 영진이 명환에게서 아파트를 받았다면 영진도 어둠 속에 잠겨 버렸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영진은 명환의 죽음을 모른 척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아파트를 받음으로써 명환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니까.

영진은 명환이 어둠 속에서 나오길, 그래서 일상 속에서 살아내길 바랐던 것이다.

그가 불을 켰다면, 그가 어둠 속에서 벗어났다면 그도 살아냈을 것이다.


우울증이 먼저였을까, 어둠이 먼저였을까. 이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유착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두운 집이 싫다. 나는 늘 우리 집의 조명을 환하게 밝힌다. 조명 인테리어는 차치하고라도, 환한 조명이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하고, 조명 자체가 주변을 따뜻하게 감싸주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다가도 어두운 집이 배경으로 나오면, 뭔가 답답하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예고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꼭 한마디 하게 된다. “집은 밝아야 하는데, 저 집은 왜 저렇게 어두워” 라며.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번 느꼈다. 빛과 우울증의 상관관계를.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일단은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햇빛이 밝게 내리쬐는 한가운데로.

그곳에는 행복호르몬 ‘세로토닌’이 쏟아진다.


나는 집과 직장 그리고 집, 9 to 6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탈출구 없는 무한반복처럼 느껴지는 생활이다. 그런 생활이 날 옥죄는 듯했고, 어떤 날은 심하게 우울했다. 그런 날은 집에 도착하면서 나는 스스로 배우가 된다. 한 톤 높여 아이들에게 인사하며 짐짓 명랑함 속에 나를 숨긴다. 나는 내 속에 숨겨져 있는 나의 우울감을 아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고, 전염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암막커튼을 치고 완전한 어둠 속에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나의 우울은 진정된다. 잠이 들면서 우울은 치유된다. 아침이 되면, 전 날의 우울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하루의 활기로 바뀐다.

낯의 햇빛은 우리에게 세로토닌이 나오게 하여 하루를 활기차게 한다.

밤의 어둠은 바로 그 세로토닌이 멜라토닌으로 바뀌어 우리를 잠들게 하고, 치유되게 한다.

그렇다. 어둠도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빛과 어둠은 서로를 존재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과학적으로도 그러한 것이다. 어쩌면 과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들을 더 설득력 있게 풀어주는 하나의 도구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에겐, 빛과 어둠 둘 다 필요하다.

단지, 너무 어두움 속에 매몰되어 있다면 그것은 우울감을 끝없이 깊게 끌고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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