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주고받은 '내밀한 일상'의 기록
초등학교 4학년 어느 이른 봄이었다.
수업시간에 국군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고, 우리는 편지지를 한 장씩 받았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본 경험이 없어서, 어설프게나마 자기소개를 하면서 편지를 써내려 갔다. 수업시간에 모두가 다 같이 써야 하는 편지였고, 그것은 그저 하나의 과제와 같았다.
준비되지 않은 채 갑자기 쓰게 된 형식적인 편지였다.
계속 이어지게 된 편지의 시작
그런데 며칠 후, 답장이 왔다. 신기했다.
입대한 지 얼마 안 된다는 육군 아저씨가 보내온 답장이었다. 답장을 받은 친구들이 많지는 않았고, 답장을 받은 친구들도 보통은 한두 번의 편지왕래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나와 아저씨는 계속 편지가 오갔다. 편지를 쓰는 즐거움과 답장을 기다리는 설렘이 평행선처럼 이어졌다. 나는 그날그날의 일상과 그로 인한 생각들과 감정들을 주로 썼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읽어준다는 것
아직 어린 내가 편지를 쓰는 내용은 흡사 일기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일기와 달랐던 것은 누군가가 읽어준다는 것이었다. 그것에는 뭔가 특별함이 있었다.
그것은 책을 읽으며 저자와 소통하는 느낌과도 달랐고, 나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것과도 달랐다. 나 자신에게 말하듯, 동시에 타인에게 속삭이듯, 편지는 내 내면의 목소리를 꺼내는 통로가 되어주었다.
아저씨는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편지를 주고받을 때는 아저씨가 전혀 낯설지 않았고, 나의 오래된 친구 혹은 내면의 또 하나의 나와도 같았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나의 생각과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내곤 했었다.
무엇보다 나의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자체가 나는 참 좋았던 것 같다
강한 어른이라는 이미지 속의 어린아이
그때의 내가 생각하는 아저씨는 어른이었다.
나에게는 어른에 대한 어떤 기준이 있었다. ‘흔들림 없고 강한 이미지’라는 기준.
하지만 아저씨는 군대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약한 면모와 감정들도 드러내었고, 어른이라도 아이와 같은 솔직함과 감정의 여림이 있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저씨는 겨우 20대 청년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겉만 강인해 보이는 군인 아저씨였을 뿐, 내면은 아직도 어린아이의 모습을 많이 지녔을 테니 말이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계절은 여러 차례 바뀌어갔다.
나는 점차 학년이 올라갔고, 아저씨도 제대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며,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내가 6학년 막바지에 이를 무렵 아저씨는 제대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저씨는, 손꼽아 가며 애타게 기다렸을 제대를, 마침내 했다.
제대한 아저씨와의 갑작스러운 만남
늦가을, 겨울 초입이었을 것 같다.
약간 서늘한 날씨였고, 일요일이라 느긋하게 집에서 숙제를 하고 있던 오후였다.
군복을 입은 채, 제대한 아저씨가 어떤 언질도 없이 갑자기 집으로 찾아왔다.
아저씨가 나타나 내 눈앞에 실물로 서자, 나는 너무도 부끄러워서 집안으로 도망쳤다.
어쩌면 은밀하게 이루어졌던 생각들의 분출이 밝은 햇빛아래 까발려진 기분이랄까. 게다가 내성적인 나의 성격까지 더해져, 아저씨를 보게 되자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는 의아했을 것이다. ‘편지로는 온갖 얘기를 조잘대던 아이가, 저렇게나 수줍어하다니’ 하면서 말이다
다행히 언니가 자연스럽게 아저씨를 맞아주었다.
아저씨는 내 덕분에 군대생활을 지루하지 않게 잘 지냈다고 고맙다고 말하며, 선물을 안겨 주었다. 편지를 기다리는 즐거움 덕분에 행복한 군생활을 할 수 있었기에, 제대하면 꼭 만나 인사하고 싶었다고 했다.
아저씨는 뚝섬에서 산다며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갔다. 꼭 한번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3년 동안의 편지 릴레이
아저씨와 편지를 주고받은 기간은 거의 3년 정도 된다.
1~2주일에 한번 정도 편지를 썼으니, 꽤나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것이다.
그날의 만남 이후 추억으로 간직된 아저씨
그날의 만남 이후로 나는 끝내 아저씨에게 전화하거나, 찾아가거나 하지 않았다.
아저씨를 만나기 전, 편지만을 주고받을 때는 친구처럼 무척이나 허물없었지만, 막상 얼굴을 마주 보자, 아저씨가 더욱 어른으로 느껴졌다고나 할까, 예전처럼 철없이 떠들기에는 뭔가 어색해졌다.
온라인상의 만남이 오프라인으로 이어졌을 때의 괴리감 같은 것 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인연은 편지 속에 남았을 때 가장 아름다웠을지도 모른다.
한때 서로에게 좋은 인연으로서, 각자의 빛나면서도 힘든 시기에, 서로가 의지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성격 좋았던, 다정했던 나의 아저씨는 지금쯤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믿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나에게는 나의 생각과 감정들을 이해해 주고,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었던 어른이 있었다.
아저씨는 나의 첫 어른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