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모든 것들에 물음표를 던지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 가을날이었다. 가로수의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길은 온통 붉은색, 노란색 낙엽들로 가득했다. 하교 후 길을 건너기 위해 건널목에 친구와 서 있었다.
길 건너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었다.
“너 눈에는 신호등이 무슨 색으로 보여?” 빨간 신호등을 보며 내가 물었다.
“빨간색.” 당연하다는 듯이 친구가 대뜸 대답했다.
“나도 빨간색.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색을 배울 때부터, 나는 노란색을 계속 빨간색으로 배웠어. 너는 처음부터 파란색을 계속 빨간색이라고 배웠어. 그렇다면 너와 내가 동시에 빨간색이라고 말하는 저 색깔이, 사실은 노란색일 수도 있고, 파란색일 수도 있잖아.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다른 색깔을 보면서도 같은 색깔을 본다고 확신하는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빨간색 신호등을 주시하며 내가 말하자, 친구가 ‘너 좀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았다.
빨간 신호등을 앞에 두고 빨간색을 보며 내가 친구와 나눴던 대화이다. 그런데 나는 이 대화 내용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30년도 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친구가 고교시절의 나를 이야기하며, 그때 내가 했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제야 생각났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는 것과 그 당시 신호등 주변의 풍경까지도 생생하게.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런 종류의 생각들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일종의 개똥철학류의 생각들.
그런 이야기를 남들이 들으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까 봐,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조심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속에만 담아두고 혼자만 생각하곤 했었는데, 가끔 그런 이야기를 꺼낼 때가 있었다. 마음 잘 통하는 친구와 만나면.
다행히 나에게는 그런 친구가 있었다. 나의 속마음을 온전히 말하수 있는 내 영혼과도 같은 친구.
같은 내용을 말한다 하더라도 그 말이 정말 같은 의미의 말일까?
친구와 얘기하다 보면 서로 대화 맥락상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어디선가 엇갈린다. 그러면 처음부터 네가 생각하는 단어의 뜻과 내가 생각하는 단어를 다시 맞춰본다. 그러면 같은 이야기를 마치 서로 반대되는 것인 양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그래서일 것이다. 모든 학문이 시작될 때 가장 먼저 용어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하는 이유가.
일단 용어부터 정확히 해야, 다음 단계로 진행될 이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와 나도 단어부터 서로 정리한 후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서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이 있기나 한 것일까?
우리는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생각이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뭔가를 꾸준히 배워오며 자신의 생각을 쌓아간다. 그리고 주변의 상식들과 관습,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생각들을 구축한다. 그리고 그 생각들이 자기 자신 자체이며, 자신의 주관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이라는 것도 단지 학습된 것, 한낱 상식적인 것, 때로는 다른 사람의 생각, 혹은 그 시대의 주류사상, 그리고 당시의 과학적인 지식들의 합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우리가 배운 일련의 교육들과 우리가 습득한 일련의 생각들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올바름에 대한 어떠한 검증도 없이 단지 세뇌된 것 이거나 그저 받아들이게 된 것은 아닐까.
심지어 우리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적인 사실들조차도, 사실은 가설 위에 세워진 이론일 뿐이다. 그래서 당대에는 절대적 진리처럼 여겨졌던 것들이 후대에는 어처구니없는 사실로 밝혀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몇 가지를 그저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지동설: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회전한다는 지동설을 주장하면서, 중세시대의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중세에 천동설은 절대적인 진리였던 것이다.
사혈요법: 사혈요법은 동양과 서양 의학사 모두에서 매우 오랫동안 중요하게 사용된 치료법이었지만 지금은 의학적 근거논란과 부작용으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신생아포경수술: 내가 아들을 낳았을 때만 해도, 그 당시 신생아포경수술이 유행이었다. 아이를 낳자마자 의사가 수술을 권했고, 당연히 해야 하는 줄로 알았다. 지금은 여러 부작용 때문에 수술을 해야 한다면 학령기 이후로 권하고 있다.
편도선수술: 편도선수술도 한때 유행이었다. 그러나 사춘기 이후에는 편도선 크기가 작아지기에 편도선염을 자주 앓던 아이도 저절로 좋아진다. 더구나 편도선은 외부의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한 1차 방어선이기에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담낭제거수술: 담석증이나 담낭염 등으로 담낭제거수술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역시 신중할 필요가 있다.
담낭은 쓸개라고도 하는데 동양 의학적 관점에서 쓸개는 단순히 담즙을 저장하는 기관을 넘어 용기와 결단력을 상징한다.
약국에서 만난 환자들 중에는 담낭을 제거한 후 이상하리만큼 소심해지고 결정 장애를 겪게 되었다고 토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로 인해 나는 ‘쓸개 빠진 놈'이라는 비속어가 괜히 있는 말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
무엇이 옳다고 믿으며 살아야 할까?
부처의 말이 생각난다.
‘그 어떤 것도 단지 그것에 관해 얘기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비록 상대를 존경할지라도 그가 한 말을 그대로 믿지 마라. 철저히 검증과 분석을 해서 선이나 만물에 유익하다면 그것을 믿고 붙잡아 자신의 지표로 삼아라’ -석가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