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살이 <4>
같은 학원 다니는 아이들 엄마는 아니었지만, 길을 오가며 윗집 엄마와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엄마는 나랑 동갑이어서 빠르게 친해졌다.
아래위층에 살다 보니 자주 드나들게 되었고, 서로의 속사정도 알게 되었다.
그 엄마에게는 선아, 은아라는 두 딸이 있었는데, 자신의 친딸이 아니었다. 선아, 은아의 친엄마는 셋째를 낳다가 아이와 함께 죽었다고 했다.
2층 엄마의 이름은 주희
2층 엄마, 주희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 다부진 몸매로 첫눈에도 강인한 인상이었다. 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썼는데 말투가 다소 억세 보였다.
수수하고 평범한 차림의 나와 달리, 주희는 진한 화장에 늘 화려하고 과감한 옷차림을 즐겼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둘이 늘 붙어 다니는 것을 보며 주변사람들은 의아한 눈길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강해 보이는 외모나 말투와 달리, 주희는 여리고 속정 깊은 사람이었다.
남편 구타로부터의 도망, 그리고 남겨진 아들
주희는 비교적 젊은 시절, 같은 직장에서 남자를 만났다. 자신을 줄곧 쫓아다니고, 자신을 너무나도 좋아해 주었던 그 남자와 결국은 결혼했고, 남자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커갔고, 남의 집 한켠을 세 들어 살면서, 가난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알콩달콩 잘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남자가 술을 먹기만 하면 자기를 때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남편의 폭음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구타 횟수와 정도도 심해졌다.
남편의 매질을 피해 길 모퉁이에 숨어 떨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퉁퉁 부어오른 얼굴과 멍든 몸을 이끌고 숨어있던 그녀에게 어린 아들이 다가왔다. 아들은 울면서 엄마의 돈지갑을 건네며 '멀리멀리 도망가'라고 했다. 주희는 그 길로 자신의 전부였던 아이를 남겨둔 채, 찢어지는 슬픔을 안은 채, 언니가 있는 서울로 갔다. 그것은 도망이자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당시 언니는 서울에서 고깃집을 하고 있었고, 주희는 그곳에서 언니를 도우며 일했다. 틈틈이 주변상인들에게 점심시간에는 국수나 냉면을 만들어 팔기도 했고, 중간중간 커피도 팔았다고 했다. 악착같이 일해서 돈을 모아, 시모와 살고 있는 자신의 아들과 연락해서 가끔 만나 돈도 주고 왔다고 했다.
또 한 번의 결혼
그러다가 언니의 중매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는데, 비록 두 딸을 둔 아빠였지만 남자는 무척이나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마침 아파트도 분양받아 새 아파트로 입주하는 시점이었다.
주희는 그 남자와 결혼하면서 아파트로 이사 왔고, 그렇게 나와는 아래 위층의 이웃이 되었다.
내 아들이 학원에 가고, 자신의 딸들이 학교에 가면, 주희는 우리 집 거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 설탕, 프림을 2:2:3의 황금비율로 티스푼 가득 담아 만든 그 뜨겁고도 진한 커피를 우리는 홀짝이며 마셨다.
커피를 마시며,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지청구로 늘어놓았다. 뜨겁고도 진한 커피는 우리의 치열한 인생과 닮아 있었다.
주희는 커피를 마신 후에는 우리 집 뒤쪽 베란다에 가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나중에 성인이 된 아들을 떳떳하게 만나려면 건강해야 한다는 내 잔소리가 통했는지 주희는 담배를 끊었다.
해결책에 대한 강박
주희의 인생사는 내게도 풀어야 할 숙제처럼 다가왔다. 아들을 만나고 오면 며칠을 앓아눕는 그녀를 보며 나도 함께 몸살을 앓았다.
누군가의 고민이나 슬픔은 해결해 주어야 할 과제가 아니라, 단지 옆을 지켜주며 들어주는 것이라고 심리학에서는 말한다.
그럼에도 나는 남이 하는 고민을 들으면 공감으로 끝내지 못한다.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젊은 시절의 나는 그런 강박이 더 심했다. 이런 나의 강박은 때로 위험하다. 돌이켜보면 나의 이런 성향은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고, 관계를 멀어지게도 했다.
주희는 나의 조언을 경청하며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갔다. 그러한 그녀를 바라보며 나 또한 함께 성장해 나갔다.
또 하나의 친정
남편이 회사일로 늦는 날, 나와 아들은 늘 주희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마치 친정집 드나들듯 했다. 주희는 요리 솜씨가 좋았고, 속도도 빨랐다. 마술 부리듯 진수성찬이 순식간에 차려졌다.
당시 나는 어린애 입맛이었음에도 주희가 만들어주는 산나물에 빠져들었다.
주희 남편은 산나물 나올 시기가 되면 커다란 망태기를 짊어진 채 하루 종일 산 하나를 타며 나물을 채취한다고 했다. 주희는 그것을 다듬고 데쳐서 냉동실에 보관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산나물요리는 종류도 다양했으며 맛도 일품이었다. 산나물의 쌉싸름한 맛은 어쩌면 주희 인생을 닮아있었다.
주희 남편은 늘 내 아들을 옆에 앉혀두고 밥도 같이 먹고, 놀아도 주었다. 자신의 셋째 아들이 태어나지 못한 채 죽어서인지, 주희 남편은 아들에 대한 집착이 심해 보였다. 아이를 낳자는 남편의 말을 주희는 완강히 거부했다. 나름 두고 온 자신의 아들에 대한 속죄 같은 것이었을까.
주희가 변해 갔다. 화장도 연해지고, 옷도 수수해졌다. 열심히 부업을 하며 두고 온 아들을 위해 알뜰히 저축했다. 선아, 은아가 친 딸들은 아니었지만, 주희는 그 둘을 친딸처럼 키웠다. 애정을 쏟으면서도 때로는 엄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투박한 사랑이었다.
주희는 말투가 다소 거칠었지만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런 주희가 나는 좋았다. 주희는 나의 오랜 친구 같았고, 서로는 속마음을 터놓고 지냈다. 그렇게 우리 둘의 서른두 살은 무르익어 갔다.
이사 그리고 이별
서울로 떠난다는 소식에 주희는 자기 일처럼 서둘렀다. 이사하면 정신없다며 우리 집 가전제품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닦아냈다.
어둑해진 저녁, 홀로 거실에 앉아 반짝이는 냉장고와 전기밥솥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이별을 실감했다.
이삿날, 휴게실에 들러 간식거리라도 사 먹으라며 봉투를 쥐여주며 울던 그녀는 내게 친구이자 언니였고, 또 하나의 친정이었다.
안녕 나의 친구, 안녕 나의 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