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생활 <5>
생애 첫 지방도시
원주는 내 생애 최초로 살아본 지방도시였다.
서른 초반, 세 살배기 아들의 손을 잡고 남편의 발령지를 따라 내려간 그곳에서 나는 2년 남짓을 머물렀다. 동생과 함께였던 1년을 제외하면, 오롯이 혼자 힘으로 삶을 일궈낸 기간은 1년 남짓이었다.
나는 서툴지만 홀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주변을 관심 있게 탐색하기 시작했고, 사람들과 섞이기 시작했다. 시간을 자유롭게 갖고, 나 자신이 주도하며 살아간 세월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내가 진정 갖고 싶었던 것을 성취할 수 있었던 기간이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며, 사람들과 교류하며,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해냈다.
관계가 주는 힘
학창 시절, 나는 공부를 위해 많은 부분을 희생했다. 인간관계와 수면, 그리고 취미 같은 것들을.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원주에서의 생활은 내게 '역설의 미학'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포기했던 부분들이 오히려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사람들과 접하면서 오히려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다. 그 어떤 결심보다 사람 자체가 공부를 지속하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어주는 일
인생은 어찌 보면 공평하기도 하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토록 원했던 전문직으로의 길은 열렸지만, 나의 자유시간과 노동력을 맞 바꾸어야 했다. 그래서 나만의 자유로운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던 원주생활을 돌아보면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원주생활로 나는 평생의 추억 속에 남을 사람들을 간직하게 되었다.
자유로우면서도, 치열했던 나의 젊음을 나는 원주와 함께 했다.
뮤지엄 산, 그리고 다시 찾은 기억의 조각들
30여 년이 흘러 가족과 함께 원주의 랜드마크인 '뮤지엄 산(Museum SAN)'을 찾았다. 뮤지엄 산의 '산'은 물리적인 산(山)의 의미와 개념적인 가치(Sky, Art, Nature)를 동시에 나타내는 중의적인 명칭이라고 한다.
일단 뮤지엄산은 산 위에 자리 잡고 있어서 시야가 탁 트이고, 입구부터 장엄하다. 노출 콘크리트와 기하학적인 구조를 따라 걸으며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건축물 구조가 크고 특이한데, 조명이 아닌 자연빛이 공간에 스며들게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뭔가 아늑하면서도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건축물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었다. 역시 위대한 건축물은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원주에 오자 오래전 살았던 아파트 그리고 친구 주희에 대한 갈망이 강박처럼 솟구쳤다.
결국 발길을 옮겨 찾은 그곳은 아파트 입구부터 상가, 뒤터까지 그대로였다. 젊은 시절의 나와 어린 아들이 오고 갔던 오래전 기억 속의 수많은 길들이었다. 30년도 훌쩍 지난 세월이 무색하게 마치 어제처럼 느껴졌다.
재회 혹은 이별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초저녁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열렸다.
주희가 환하게 웃으며 나오리라는 확신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변하지 않은 길들 과 고스란히 간직된 나의 옛 감정들 때문이었으리라.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젊은 여자였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 역시 수차례 집을 옮겼건만,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만남에 대한 한가닥 희망의 실이 끊어지면서, 실망했다. 세월의 변화에 대한 묘하고도 진한 아픔을 느끼며 돌아섰다.
내가 살았던 1층 집 앞에 서 보았다.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래 엄마들의 왁자지껄한 수다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았다. 그곳은 우리의 사랑방이었고, 30대 초반의 내가 가장 뜨겁게 머물던 자리였다.
마치 어제 일처럼 옛일들이 스쳐 지나갔다.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아파트 앞 흙마당을 바라보았다. 공동으로 김장을 하고 파묻었던 마당이었다. 이제는 나의 기억들을 그 마당에 묻어둘 터였다.
한바탕의 꿈을 뒤로하고
안녕, 나의 친구, 나의 젊음. 치열하고도 아름다웠던, 더없이 충만했던 한바탕의 꿈들이여!
나의 인생에서 가장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었던 원주에서의 생활,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서울로 향했다.
어느덧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
30년 전보다 차선은 늘어났고 서울로 가는 시간은 단축되었지만, 마음의 거리는 오히려 더 멀어진 것만 같았다.
서울에 도착하면, 나는 다시 현실의 내가 되겠지만, 원주의 그 흙마당엔 여전히 서른 살의 내가 웃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