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처럼 무너진 건강, 그리고 건강염려증
등 통증
충수절제술을 받은 후 일주일 동안은 별무리 없이 몸이 회복되어 갔다.
그런데 이후 등판이 너무 아파서 잠자다가 한밤중에 깨어나곤 했다. 일단 깨어나면 통증 때문에 잠들지 못하고 아침까지 뒤척여야 했다.
수면 중에 깨어나야 하는 통증이 지속되자 수술한 병원에 다시 들러 X-ray 검사와 혈액검사를 했는데, 수술은 아무 이상 없이 잘 되었다고 했다.
구태여 원인을 찾아보자면 수술 후 올바른 자세를 취하지 못해서 생긴 근육통이거나, 전신마취로 인해 잔류된 가스로 인한 통증인 것 같다고 했다.
지속되는 등통증과 설사
설상가상으로 등통증이 생기고 닷새정도 후부터는 설사가 시작되었다. 등통증과 설사가 같이 나타나자 잠자는 자체가 공포스러워졌다. 누웠을 때 더욱 심해지는 통증과 급박한 설사로 수면 도중에 깨야하는 고통 때문이었다.
근처 의원에서 통증과 설사에 대한 수액을 며칠 동안 맞으며 증상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복부초음파 검사
한 달 정도 지속된 오른쪽 갈비뼈 아래에서 날개 죽지로 이어지는 등통증은 담석증이나 췌장염 같은 무시무시한 병들을 상상하게 했다. 이제 수술은 더 이상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며칠간은 노심초사했지만, 결국은 복부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담낭, 췌장, 간 모두 이상 없음.
정형외과 검사
등통증이 내장계통의 문제가 아니었으니, 이제는 정형외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여러 검사결과 뼈나 신경 쪽의 이상은 아니고 근육이 심하게 뭉쳐있다고 했다.
충격파와 전기치료를 몇 차례 받으며 증상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민간요법
그 와중에 한 달 넘게 지속된 설사는 나를 거의 미치게 했다. 설사 자체도 문제였지만 급박하게 가스와 함께 나오는 예고 없는 점액변은 대책이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식이를 내가 스스로 조절해야 했고, 유산균과 진경제, 가스제거제를 복용했다.
그럼에도 설사가 오래 지속되자, 외할아버지가 한의사였기에 여러 민간요법을 잘 알고 있었던 엄마는 나에게 하얀 분이 묻은 곶감을 뜨거운 물과 함께 달여 먹어 보라고 했다.
엄마의 조언으로 설사가 차츰 잡혀갔다.
건강이 하나, 둘 도미노처럼 무너지면서 나의 건강염려증은 이처럼 병원을 순례하게 만들었다.
다가오는 봄
어느덧 입춘이 지나고 우수도 지나자, 벌써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바람은 차가운 날카로움이 아닌 따스함과 시원함을 함께 머금고 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나목들 아래의 풀들이 초록빛을 살짝 내비치고 있었다. 그토록 추웠던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수술 때문이었는지 특히 이번 겨울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혹독하게 추웠다. 그냥 무조건 추웠다.
이제 따스한 봄의 기운이 다가오면서 나의 몸도 살아가야 할 의지로 꿈틀대는 것 같다. 손 놓고 있었던 운동도 해야겠고, 설사로 몸을 사렸던 음식들도 보충해야겠다. 수면도 다시 정상 궤도를 잡아야겠다.
그동안 몸이 무너지면서 마음도 우울함의 나락 속으로 빠지면서, 몸이 서야 정신도 똑바로 설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쇼펜하우어는 ‘건강한 거지는 병든 왕보다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외부적인 부나 명예는 일시적이고 박탈당할 수 있지만, 건강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행복의 근본이라고 보았다.
나이가 들어보니 무엇보다 건강이 최우선이다.
빌려온 몸
우리가 의지해서 살아가는 육체, 몸이란 과연 무엇인가? 몸은 우리의 정체성인가?
불교에서는 우리 몸을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이 잠시 인연에 따라 모인 것으로 본다. 땅의 기운(뼈와 살), 물의 기운(피와 눈물), 불의 기운(체온), 바람의 기운(호흡)이 합쳐져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
인연이 다하면 다시 흩어질 것이기에, 우리 몸을 빌려온 것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는 빌려온 몸을 통해 살아가다가 죽을 때 돌려주면 되는 것이다. 몸조차 우리의 것이 아니다. 결국 '빌려온 몸'이라는 통찰은 우리를 죽음의 공포와 소유의 집착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놓아준다.
우리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소유.
우리가 몸을 빌려 살아가듯 우리의 생각은 몸을 빌려 발현된다. 정신이나 사유도 몸이 사라지면 같이 사라진다. 몸은 현실이기에 우리가 몸을 떠날 수 없고, 더없이 소중하다. 그렇다고 몸에 너무 집착하면 우리는 그것에 끄달리게 된다.
해서 소중하게 다루되 빌려온 것임을 자각하여 자유롭게 되기를.
건강염려증에 빠지지 않기
작년 연말 수술 후 약 두 달 동안에 걸쳐 이토록 건강에 대해 전전긍긍한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자신의 건강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 못 했던 나는, 내가 일련의 증상들을 겪자 나 또한 건강염려증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실감했다.
남들이 수술도 아니라는 맹장수술로 내가 이토록 많은 건강상의 어려움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구정이 지나면서 한해의 액땜을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몸이 아파보니 알겠더라. 건강염려증의 실체를.
아프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되뇌어도 건강에 대한 불안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사라지지 않았다. 이쯤에서는 인간의 나약함에 진저리가 쳐진다.
그래서 불교의 무소유가 생각났을지도 모르겠다.
생로병사의 고통, 노(老)가 왜 고통일까?
모든 자연이 그러하듯 인간도 그냥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것이 고통이 될 수 있을까를, 젊은 시절의 나는 의아해 했다.
젊었을 때는 이유가 있어야 아팠다. 막상 내가 늙어가다 보니, 늙음에는 이유 없이 병이 따른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그래서 늙음이 고통이 되었다는 것을.
앞으로 더 자주 이유 없는 병이 찾아오겠지만, 잠시 몸을 빌려 살아가고 있음을 자각하면서, 늙음이 병과 친구임을 이해하면서,
건강염려증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