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로 가는 길

우연이 모여 필연이 될 때 : 운명

by 현주

경주로 가는 길은 멀었다.

막히지 않고 달려도 왕복 8시간 정도 걸린다.

토요일 1시에 일이 끝나고 바로 출발했다. 점심으로 차 안에서 김밥을 먹었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휴게소에 한 번만 들렀다. 미리 약속한 부동산에 들러 딸이 살게 될 원룸을 알아보려면 시간이 촉박해서였다.


경주는 특이하게도 보증금은 적은 대신 1년 치 연세(年稅)를 미리 지불한다. 연세에 관리비가 포함되어 있고, 몇 월에 입주하든 상관없이 해당 연도의 연세를 낸다. 신박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주변이 거의 원룸촌인 곳에서 연식이 좀 됐지만 리모델링한 방을 얻었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가구가 잘 정비된 그곳에, 가져간 짐들을 내려만 놓았고 정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어느덧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문 닫을 준비를 하는 식당에서, 마지막 손님으로 다소 급하게 저녁을 먹었다.

언젠가의 거제도 여행에서, 저녁시간에 식당들이 생각보다 빨리 문 닫는 바람에 편의점에서 요깃거리를 대충 사다가 숙소에서 저녁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딸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자격증을 가지고도 계약직으로 취업하는 현실을 보면서 딸을 비롯해 요즘 젊은이들이 너무 힘들겠구나를 절감했다.

우리의 학창 시절과는 다르게 여러 스펙을 쌓고도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저 안쓰러웠다. 우리 때는 경제가 고성장이었기에 그 흐름을 타고 모든 것이 수월했지만, 지금은 저성장구조이기에 쉽지 않다. 가난이 일상이었던 우리와 달리, 풍요 속에서 정답만을 강요받은 세대에게 결핍은 더 큰 공포일지도 모른다


전공에서 살짝 방향을 틀어보고자 인사부 쪽으로 가게 된 딸은 인사기록을 정리하다가 뜻밖의 사실에 놀라게 되었다. 어느 정도는 정해진 하나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을 바꿀 만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바꾸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늦은 저녁, 딸은 나에게 전화하며 어떻게 그렇게 자신이 살아온 길과 다른 길들을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그리고 몇 달의 고민 끝에 자신도 새로운 길을 가고 싶다고 했다. 새로운 길은 험하고 고된 길이었으며 성과가 없이 끝날수도 있었다. 해서 딸은 많이 망설이며 고민하고 있었다.

나이 들어 가장 후회하는 일들 중 하나가, 젊은 시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가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나중에 후회만 남을 거라 생각했기에 나는

딸에게 가고 싶은 길을 가라고 했다. 젊은이의 특권이 도전 아니겠는가. 그 길에 도달하면 좋은 일이고, 아니어도 또 다른 길들이 있을 테니까.


딸은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그 길은 과정 자체도 힘들었지만, 중간중간 ‘내가 가는 이 길이 과연 맞는 길인가’ 하는 의구심은 딸을 더욱 지치게 했다. 그럼에도 딸은 자신의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갔다. 지난(至難)한 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과를 얻었다. 성과를 얻기까지 자신의 노력도 있었지만 운도 따라주었다고 했다.


나는 운(運)이라는 말을 믿는다.

모든 일이 전적으로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성과를 얻기 힘든 경우도 많다. 성과는 나 자신만의 싸움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타인의 노력과도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운을 믿으면 겸손해진다. 나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성과가 아니기에.

그래서 盡人事待天命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최선의 노력을 하되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것이다. 결과에 대해 원망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고 해서 깔끔하다. 그렇다고 운에만 의존하며 비겁하게 뒤로 숨지도 않는다.


딸은 운명은 믿지 않았었지만 자신이 걸어온 길들을 돌아보면 마치 운명 같았다며 신기해했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길들 이었지만 우연히 들어서게 된 길들, 그 길들이 모이고 모여 필연처럼 하나의 좌표를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들이 모여 하나의 필연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자신의 운명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했다.


나 자신도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꼭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아니었어도 우연에 의해 하나의 길에 들어서게 되고, 그 길이 또 다른 길로 이어지면서 마치 필연처럼 한 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러함을 운명이라고 이름 지어도 좋을 듯하다. 단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숙명(宿命)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 좌충우돌하며 나아갔는데 결국은 돌고 돌아 하나의 지점에 이르렀다면 그것은 운명(運命)이리라.


"삶의 작은 길들 위에서 발견하는 사소한 것들이야말로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

는 니체의 말처럼 살아가다 보면 알게 되는 사소한 사실이나 느끼게 되는 감정들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궤도를 벗어나 다른 곳을 기웃거림으로써 또 다른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지금까지 옳다고 믿었던 상식과 도덕 그리고 모두의 암묵에서 벗어나 나 자신의 길로 들어섦을, 나 자신의 가치관을 세우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니체의 정신의 단계변화에서, 딸은

지금까지 사회가 정해준 무거운 짐을 지고 묵묵히 걷던 '낙타'의 시간을 지나,

기존의 가치관과 관습을 부정하며 자신만의 의지와 자유를 획득하는 '사자'의 시간으로 진입하고 있다.


살아오던 둥지를 벗어나 새로운 곳에 터를 잡기 까지가 험난했듯이, 반나절 동안에 경주를 오고 가는 길은 멀고도 고단했다. 그럼에도 딸이 선택한 길이고, 희망을 갖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하고 싶은 뭔가가 있고, 그 뭔가에 몰두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는 딸이 부럽다.

자신을 찾아 새로운 길에 들어선 딸에게 힘차게 응원을 보낸다.

“지금의 여러 우연들이 훗날 네 인생의 가장 눈부신 필연의 좌표가 되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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