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대명사 과일, 과일 속 '과당'의 진실
약국에서 만난 역설
약국에 자주 오는 가족이 있다. 중년 부부와 20대 후반의 딸.
그런데 병원처방전을 들고 와서 늘 타가는 약이 같다. 바로 '구내염' 약이다.
그들의 주식(主食)은 과일과 채소이며, 고기류는 안 먹는다고 했다. 신선하고 건강한 과일을 매일 접하는 그들이 왜 만성적인 염증에 시달리는 걸까? 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과다한 과일과 구내염 사이에는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는 듯하다.
문득 비교적 이른 나이에 췌장암으로 죽은 스티브잡스가 떠올랐다.
스티브 잡스는 생애 상당 기간 동안 엄격한 식단 관리로 유명했다.
그중 한 시기에 그는 주로 과일, 견과류, 씨앗만을 먹는 '프루테리언' 생활을 했다.
'애플(Apple)'이라는 회사명에서 알 수 있듯 그는 과일 식단에 심취해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췌장암 투병 당시, 그가 고집했던 채식과 과식(果食) 습관이 병세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당의 과잉섭취는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을 혹사시킬 수 있고, 전신염증수치를 높일 수 있으며, 면역에 취약할 수 있다.
무엇보다 프루테리언 식단은 영양 불균형이 매우 심한 식단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일련의 호기심으로 과당에 대해 좀 더 알아보게 되었다.
과당: 포도당과 다른 특이한 대사과정
과당(Fructose)은 우리 주변의 과일이나 꿀에 많이 들어있는 대표적인 단당류다.
포도당과 과당은 동일한 원자를 가진 단당류이지만, 원자들이 결합된 방식이 달라 성질과 구조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포도당은 혈액을 타고 전신으로 퍼지면서, 전신 세포의 에너지원으로 쓰이며 인슐린의 조절을 받는 반면,
과당은 인슐린의 조절을 받지 않고 빠르게 대사 경로에 진입한다.
과당은 100% 간에서 대사 되는데, 너무 많은 과당이 들어오면 간은 이를 처리하지 못해 중성지방으로 바꾼다. 이 과정에서 간세포에 지방이 쌓이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이 생기는데, 지방이 쌓인 세포에서는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방출되어 전신 염증의 원인이 된다.
또한 과당이 대사 되는 과정에서 요산이 생성되어 통풍이나 염증 상태를 만들며,
포도당보다 훨씬 빠르게 단백질이나 지방과 결합하여 최종당화산물(AGEs)을 만들어 노화와 염증 반응을 촉진한다.
과당의 대사를 들여다보면, 과도한 과당 섭취는 전신 염증을 유발할 수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자연 과당보다 무서운 액상과당
더 큰 문제는 마치 건강한 과일의 당분인양, 과당의 이름을 달고 있는 가공식품 속 액상과당이다.
액상과당은 옥수수시럽, 콘시럽, 물엿, 요리당, 결정과당 등으로 식품 성분에 표시된다. 가공식품이나 음료에는 액상과당이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대량으로 사용되는데, 이는 설탕보다 값이 싸고 다루기 쉽기 때문이다.
설탕(Sucrose)은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된 형태지만, 액상과당은 이 둘이 분리되어 있어 몸에 들어오자마자 간으로 바로 흡수된다. 따라서 액상과당은 혈당을 급격히 높이고 지방간을 유발하는 속도가 설탕보다 더 빠르다.
달콤함이 주는 가짜 안도감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단맛에 우리는 자꾸만 이끌린다.
단것을 먹으면 뇌의 보상 체계가 작동해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분출되어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당분은 실제로 위장 평활근을 일시적으로 이완시키는 효과가 있어서 위를 편안하게 해 준다. 동양의학에서 위장 기능을 단맛과 연결 짓는 이유다.
당분은 혈류로 바로 흡수되어 에너지가 급속 충전되니 몸에 활력이 느껴지고 편안하다. 그러나 이러한 활력과 편안함은 일시적이다. 결국에는 혈당스파이크를 일으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건강식 과일과 내 몸의 염증 수치
자연 상태의 과일, 벌꿀, 채소에는 과당과 함께 식이섬유도 포함되어 있어, 가공식품보다는 대사 속도가 완만하다.
그럼에도 과하게 먹으면 설탕을 먹는 것과 대사 결과가 비슷해져 체내 염증 수치를 높일 수 있다.
액상과당은 물론이거니와 과도한 천연과당도 자제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과일을 천연 건강식품이라 믿으며 식후 입가심으로 즐긴다. 하지만 이미 식사로 혈당이 높아진 상태에서 추가된 과당은 고스란히 지방으로 전환되며, 또한 위장에서 음식물과 섞여 발효되면서 소화 불량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취침 전 과일 섭취는 체지방 저장의 지름길이다.
무심코 집어 든 과일이 내 몸의 염증 수치를 높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물론 과일은 비타민의 보고이며, 우리에게 더없는 즐거움을 주는 먹거리이다. 이를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단지 과다한 섭취와 먹는 시간대를 조절하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