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고독을 추다
1996년 개봉한 수오 마사유키 감독의 <쉘 위 댄스>
성실한 직장인이자 가장인 중년남성이 주인공이다. 그는 우리네 인생처럼 대출을 끼고 집을 마련했고 단란한 가정도 꾸렸지만, 매일 똑같은 출퇴근의 반복에 공허함을 느낀다. 어느 날 퇴근길, 전철 창밖으로 우연히 보게 된 댄스 교습소, 그곳에서 그는 댄스의 즐거움에 빠지게 되면서 삶의 활력을 찾아간다.
정장을 차려입은 다소 사무적이고 딱딱해 보이는 중년의 남성은 댄스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댄스에 빠져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며 기뻐하는 어린아이의 열정과 닮아있었다.
나 또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반복되는 생활이 권태로웠다. 그래서인지 오래전에 봤던 영화 ‘쉘 위 댄스’가 떠올랐다. 나의 생활은 영화 속 중년남성과 꼭 닮아있었다.
어쩌면 댄스가 나의 권태를 달래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파트 커뮤니티의 댄스 강좌는 시간대가 맞지 않았다. 혼자 선뜻 나설 용기도 부족했다.
딸과 함께라면 댄스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딸과 함께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유튜브를 보며 줌바댄스를 했다. 거실에서 어설프게 따라 하는 정도였지만 일단 음악이 신나고, 땀을 흘리며 동작을 하기에 운동한다는 기분도 들었다.
닌텐도 게임, 줌바댄스와 저스트댄스
그런 우리를 지켜보던 아들이 어느 날 TV에 닌텐도를 연결해 주면서 줌바댄스를 해보라고 했다. 조이콘 한 개를 오른손에 들고 플레이하는 게임이다. 그래픽 캐릭터가 아닌, 실제 유명 줌바 강사들이 화면에 등장해 동작을 보여주기에, 생동감 있게 따라 할 수 있다. 음악은 정통 라틴 댄스부터 최신 팝송까지 다양하게 되어 있었다.
TV에 연결하여 커다란 화면을 보면서 따라 하니 더욱 신나고 재미있었다. 조이콘이 내 움직임을 인식해 점수를 매겨주니 묘한 승부욕과 동기부여도 생겼다.
이후 아들은 저스트 댄스를 권했다. 저스트 댄스는 K-POP, 빌보드 팝송, 클래식 등 보다 다양한 대중적인 음악을 담고 있다. 강사도 실제 전문강사가 아니라 화려한 색감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등장한다.
줌바댄스가 지루해졌는지 딸은 저스트 댄스에 환호하며 제법 잘 따라 했다. 반면에 나는 동작이 빠른 곡들은 조금 버거웠다. 그래도 엄청 다양한 음악에 화려한 예쁜 색감의 화면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나름 동작도 좀 더 매력이 있었다.
물론 직접 현장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기에 잘 안 되는 동작은 끝까지 막히는 한계도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으니까.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딸과 나는 저녁에 댄스를 함께 했다. 살아오면서 뭔가 하고 싶은데 혼자서는 자신 없는 것들을 나는 딸과 함께 해나갔다. 댄스도 그중 하나다.
딸이 독립하면서는 집에 오는 주말에 댄스를 함께 했다.
그런데 딸이 멀리 살게 되면서 이제는 주말조차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다.
어스름한 저녁시간, 나는 홀로 거실에서 저스트댄스를 한다.
조이콘을 들고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든다. 딸과 함께 할 때는 웃음소리와 음악이 함께 어우러졌는데, 이제는 음악소리만 울려 퍼진다. 확실히 혼자 하니 흥이 덜 난다.
고독하다.
그런데 그 고독이 꼭 싫지만은 않다. 고독은 커피를 닮았다. 씁쓸하면서도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그 고혹(蠱惑)스러움이.
고독을 말하다 보니,
평생 독신으로 살며 ‘고독의 철학자’라고 불린 쇼펜하우어가 생각났다.
그는 고독을 사회에서 소외된 상태가 아니라 정신적 특권이라고 여겼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다. 그러므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유를 사랑하지 않는 자와 같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우리가 홀로 방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지 못하는 데서 온다."
라고 말하며 고독을 자신이 올곧게 서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또한 그는 '자신의 내면을 독서나 사유, 배움으로 채우고,
타인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여 그들의 생각에 휘둘리지 말고,
타인에게 큰 기대나 위로를 구하지 말아야 실망도 적다'라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나 니체처럼 나도 고독을 온전히 즐길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늘 건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어 돌이켜보니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던 것 같다. 또래들이 골목길에서 놀이를 할 때, 나는 방에 머물며 책을 읽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이 싫어서도 아니었고, 놀이가 싫어서도 아니었는데, 따뜻한 햇빛에 노출되면 기운이 빠지면서 쉽게 지쳤다. 햇빛 아래 서면 촛농처럼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
그래서일까 어릴 때부터 혼자인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혼자 있음을 즐길 수도 있게 되었다.
자의적인 것은 아니었는데, 나의 몸이 그렇게 나를 이끌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름 좋은 것이었다.
이제 노년을 향해가는 길목에서 사람들은 말한다. 고독은 필수이며, 그 깊은 심연에서 진짜 자신을 길어 올려야 한다고.
여전히 사람과의 관계를 좋아하지만, 한편으로는 혼자 춤을 추며 맞이하는 이 고독을 즐긴다.
씁쓸하지만 풍미 깊은 커피 한 잔을 즐기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