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살이 <3>
동생은 떠났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낯선 원주에 홀로 버려진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주변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원주생활에 시나브로 젖어들었다. 이때가 어떠한 조급함도 없이, 어떠한 쫓김도 없이, 생활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였던 내 인생에서 가장 충만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는 자유로웠다.
그러한 만족감 속에서도 나에게는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격증은 자립을 위한 무기이자 방패였기에, 나에게는 전문성이 절실했다. 법무사 시험의 높은 벽에 좌절했던 나는 이번에야말로 공식적인 시험으로 승부를 보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는 무엇일까 오랜 고민 끝에 대학입시를 떠올렸고, 지인의 조언으로 약대를 목표로 정했다. 경제적 자립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다는 점은 아이를 둔 서른 즈음의 나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수능 공부의 시작
내가 대입을 준비했던 1994년에는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최초로 수능이 시행되었다. 1차(8월)와 2차(11월)로 나누어 두 번 시행되었고, 수험생은 두 시험 중 더 좋은 성적을 선택하여 대학에 제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세대였다.
또한 문/이과 계열 분리 없이 모든 수험생이 같은 시험 문제를 풀었는데, 이러한 출제방식은 나에게는 엄청난 기회였다. 수학에 약한 나는 다른 과목에서 점수를 보충해야 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수능은 단순암기보다는 지문이 길고 생각해야 하는 문항이 많아서, 평소에 독서에 몰두해 왔던 나에게는 보다 수월했다.
여러모로 1994년 수능은 기존의 대입제도와는 확연히 달라진 체제였는데, 그것은 나에게는 더없이 유리한, 나를 위한 하늘의 배려처럼 느껴졌다.
나는 수능을 ebs교육방송을 통해서 공부했다. ebs교재를 사서 과목별로 선생님들의 강의를 메모하며 공부했다. 전국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선생님들의 강의였으니, 강의 내용은 더없이 훌륭했다. 수준 높은 강의는 공부하는 즐거움을 주었다.
활력이 되어준 소중한 사람들
낮에는 아파트에서 친한 엄마들과 수다를 떨며 여유로움을 즐겼다. 오후로 접어들면서는 공부에 집중했다.
사실 공부는 외롭고 힘든 자신과의 투쟁이다. 더구나 나이 들어하는 공부는 무한반복을 요구한다. 지치는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꾸준히 즐겁게 공부할 수 있었던 동력은 주변의 사람들 덕분이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던가, 나에게는 사람이 그 어떤 결심이나 의지보다 활력이 되었던 것 같다.
사람들 속에 묻혀 있을 때 나는 행복하고, 살아가야 할 의지가 솟구친다.
단과 수강을 위한 서울행
반년 정도 공부하고 8월에 치른 시험점수는 그래도 희망적이었다. 그래서 욕심이 생겼다.
부족했던 화학을 보충하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엄마집에서 3개월간 기거하며, 서대문에 있는 대입 단과학원을 수강했다.
새벽에 일어나 깜깜한 길을 걸어 첫 버스를 타고 학원에 갔다. 화학 한 과목을 듣기 위함이었는데, 선생님의 강의는 나를 매료시켰고, 화학에 빠져들게 하였다. 당시에는 화학이 나중에 약대에서 그토록 큰 재산이 될 줄은 몰랐다.
수업이 끝나면 걸어서 근처의 공립도서관에 갔다. 점심 식후에 자판기에서 뽑아 든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씩 음미하며 공부할 때, 그 시간의 소중함과 여유로움은 잊기 힘든 평생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도서관에서 홀로 공부하는 나는 더없이 자유로웠으며 말할 수 없이 충일했다.
도서관 닫는 시간까지 공부하다 집으로 가곤 했다. 집으로 가려할 때 즈음에는 거리에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고 가로등은 빛을 발했다. 가을바람이 주는 서늘함 속에서 그래도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다는 성취감은 나를 한껏 고무시키곤 했다. 공부를 마친 후에 마주하게 되는 어둠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쾌감과 보상을 나에게 주었다.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그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
어느 날, 다른 날과 다름없이 도서관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책을 펴 놓는데 책상 한구석에 누군가의 낙서가 보였다.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그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다"
나는 자리에 앉은 채 오래 생각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었고, 살아남은 사람은 그래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그 문구에 있는 오늘의 소중함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었다. 누군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오늘을 나도 치열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도서관에 갈 때마다 나는 그 자리를 찾았다. 그 문구를 마음깊이 새긴 후 하루의 공부를 시작하곤 했다.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 문구는 개인적인 낙서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중 한 명인 소포클레스의 명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명언은 확실히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 울림이 큰가 보다.
어제 죽은 이가 갈망하던 오늘을 살고 있다는 자각은 지쳐있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고, 서른 초반의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겨 평생의 기억으로 남았으니 말이다.
32살의 나이에 대학에 합격하다
나름 열심히 공부했고 2차 시험을 치렀다. 11월에 치른 시험에서 점수는 올랐지만 석차는 떨어졌다. 결국 8월 시험성적을 제출했고, 약대에 합격했다.
11월의 성적은 무용지물이었지만, 11월까지의 노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소중한 자산이 되어 주었다.
이렇게 나보다 13살 어린 현역들과 나의 두 번째 대학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