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길, 독서모임
미치도록 권태로운 시간들이 지속되고 있었다.
집과 직장으로 이어지는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는 생활. 늪에 빠진 듯 아주 천천히 침몰되어 가는 기분이었다.
쇼펜하우어는 권태와 결핍은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두 가지 고통이자 불행의 근원이라고 했다.
결핍은 욕망이 충족되지 않아서 느끼는 고통이고, 권태는 욕망이 충족되거나 추구할 대상이 사라져서 오는 고통이다. 결핍의 고통이 해소되고 나면, 그 만족감은 잠시뿐이고 곧 권태라는 새로운 고통이 찾아온다. 공허함과 무료함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는 육아하랴, 경제적 기반 잡으랴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살았다. 그때는 시간이 늘 부족했고 뭔가를 하느라 늘 바빴다. 세월이 가면서 아이들도 손이 안 갈 정도로 어느 정도 자랐고, 대출을 끼고 샀을 망정 내 집마련에 성공하면 그래도 안정적인 중산층이라도 된듯했다. 이제는 행복해도 되나?
젊은 시절 추구했던 목표들을 어느 정도 이루었어도, 이제는 삶의 동력이 전과 같지 않다고 느끼면서 중년의 허무는 찾아온다. 결핍을 넘기고 나니 권태가 찾아온 것이다.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살았나.
나를 단단히 잡고 있던 지구의 중력이 느슨하게 느껴졌다. 허공에 붕 뜬 기분으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나를 잡아줄 뭔가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던가부터 시작해 보았다. 몇 년을 고민해 본다. 그런데 딱히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대략 난감이다.
낯선 길에 있을 때 사람의 뇌는 활성화된다고 했던가, 익숙하게 오고 갔던 길을 벗어나 일단은 낯선 길 위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
딸 친구 엄마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독서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같은 동네에 사는 워킹맘 5명이 모여 독서모임이 시작되었다.
평일 저녁, 한 달에 한번 모이는 것으로 했다. 5명이 번갈아 가며 책을 정하기로 했고, 다섯 파트로 나누어 각자의 파트를 발표하는 식이다. 누가 주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주최하고 발표하는 것이라 각자가 적당한 책임감을 가졌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책 읽는 취향도 다르다. 책의 여러 분야를 골고루 읽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책에 대해 편식이 심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정한 책을 읽다 보니 뭔가 시야도 다양해지는 것 같고, 무엇보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니 좋았다. 같은 내용이라도 해석이 다르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어서 그 또한 좋았다.
모임장소는 스터디카페나 일반카페 스터디룸을 빌려서 했다. 각자 커피 한잔 정도 마시는 가격이면 가능한 장소였다. 늦은 시간 지인들과 커피를 마시며 책에 대해 이야기하노라면 뭔가 자유롭고, 허영스럽다.
결혼 전에는 늦은 저녁까지 자유롭게 사람들과 만나며 지냈는데, 결혼 후 육아에 얽매이면서는 이토록 늦은 저녁의 외출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카페의 젊은이들과 같이 호흡하는 공간은 나를 나름 들뜨게 해 주었다. 이것은 독서모임으로 얻은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보다 지속적인 인간관계, 단순한 수다가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인간관계 말이다.
독서모임이라는 낯선 길에 들어섦으로써 얻은 것들이다.
우리가 살았던 동네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 뭉쳐진 동네이다. 주변에 명문 초중고등 학교들이 포진해 있다. 유명한 학원들도 엄청 많아서 인근지역의 아이들이 공부를 위해서 끊임없이 모여드는 동네이다.
동네 전체가 학원가이고 학원에서 설명회를 하면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는 동네이다. 그래서인지 학업을 위해서 이사 왔다가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이사 가는 집들이 제법 많다.
우리 모임에서도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서 한 명, 두 명 이사 갔고 결국 한 명만이 남아 그 동네를 지키고 있다. 이사 가면서 각자의 거리도 멀어졌고 독서모임도 뜸해졌다. 독서를 빼고 모임만 하기도 했다. 이제는 눈도 제대로 안 보이고, 책도 읽기 힘들다며. 그러다가 그래도 독서모임인데 다시 독서를 하기로 했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까지도 십수 년간 4명이 남아서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나에게는 이러한 독서모임도 권태로운 익숙한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 위에 서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사는 것이 권태로울 때 일단은 신발끈 단단히 매고 낯선 길에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