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옌타이 여행기

불안, 설렘, 그리고 생각들

꽤 긴 추석연휴가 시작되고 있었다.

추석연휴 한 달 전쯤 중국 옌타이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공항주차를 위해 카드사의 무료 발렛파킹 서비스만 믿고 있었는데, 출발 하루 전에 전화해 보니 그 서비스가 마감되었단다. 공항의 장기주차, 단기주차도 다 만차 상태였다. 떠나는 날 주차자리가 날 수도 있겠지만 확률이 낮았다. 이른 아침 비행이라 첫 공항버스를 탄다 하더라도 공항도착 시간에 늦게 되는 상황이었다. 급하게 파킹예약을 해서 송정역에 주차한 후 공항까지 택시로 이동해야 했는데, 택시가 안 잡힐까 조바심을 냈다.

그렇게 온갖 불안을 안고 여행은 시작되었다.


어인부두

새벽 비행기로 도착한 첫날, 비가 약하게 내리고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근처에서 식사를 한 후 어인부두로 갔다. 부두라기보다는 공원 속에 해변이 같이 있는 듯한 분위기 좋은 곳이었다. 갑자기 비가 굵어졌다. 우산을 사야 했다. 수목들과 해변만 있을 뿐 건물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다행히 한 건물을 찾았고, 그곳에서 우산을 사들고 다시 해변가로 나섰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사진명소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실제 촬영장소는 아니지만 치히로가 해상열차를 타고 떠나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흡사해서 사진명소로 유명해진 곳이라고 한다.

비가 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철로 뒤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바다가 있었고 길지 않은 낡은 철로가 바다를 향해 있었다. 그냥 보았다면 저곳에서 사람들이 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지 의아했을 그저 평범한 곳이었다.

‘휘슬러가 템즈강의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라고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으로 우리는 또 하나의 특별한 장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장위 와인 문화박물관

옌타이에 갔다면 가봐야 한다는 국가 1급 박물관이자 관광명소인 장위와인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시큼한 술냄새와 오크통의 냄새가 섞여 묘하게 후각을 자극했다.

포도 품종에 따라 와인의 종류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시식할 수 있게 여러 품종의 포도를 진열해 두었다. 생각보다 맛이 강하지 않고 은은하며 상쾌했다.

장위와인의 역사, 양조과정, 오크통 등을 관람했다. 무엇보다 지하에 진열된 거대한 오크통들의 엄청난 크기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 숫자도 엄청나서 지하의 넓디넓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륙의 규모를 볼 수 있었다.

장위와인의 설립자 장비스는 당시 중국에는 와인생산기술이 없었기에 외국의 와인전문가를 고용하여 와인사업을 시작했는데, 옌타이는 포도재배에 적합한 황금 위도인 북위 37도라고 한다. 좋은 품종의 포도와 뛰어난 제조기술로 장위와인이 탄생한 것이다. 현재 장위와인은 중국 국민와인인 제바이나를 생산하고 있으며, 품질 좋은 와인으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고 한다.


금사탄 해변

어인부두에서 원 없이 해변을 보았기에 돌고래 조각상으로 유명하다는 금사탄 해변을 가봐야 하나 망설였다.

황금빛 모래가 펼쳐진 해변이라는 금사탄 해변. 고독한 고래라는 수십 미터 크기의 좌초한 고래의 조형물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해변이다.

금사탄 해변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고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정작 놀란 것은 끝도 없이 펼쳐진 해변의 광대함이다. 그렇게 거대한 해변은 생전 처음 보는 광활함이었다. 끝과 끝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한없이 기다란 해변을 보며, 끊임없이 다가왔다 물러나는 거친 파도를 보며, 엄청난 바람을 맞으며, 한동안 넋을 잃고 오랫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사람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를 새삼 느끼며.

와보길 정말 잘했다 생각했다. 해변이라고 같은 해변은 아니었던 것이다.

금빛모래에 소원을 새겨본다. 밀물로 없어질 글자지만 마음만은 그곳에 남겨둔 채.


연태산, 조양가, 소청리

비가 그쳤고, 바람이 적당한 걷기 좋은 가을날씨였다.

연태산으로 갔다. 연태산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산으로, 공원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크지 않은 낮은 산이고, 관광하기 수월하게 입구부터 출구까지 표시되어 있어서 둘러보기 편했다. 정상에는 등대가 있어서 도시 전체와 해안선을 조망할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연태의 유명한 관광명소인 조양가와 소청리가 있다.

조양가는 과거 상업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오래된 옛 건물과 현대의 서양식 건물이 어우러져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눈길을 끌었다. 관광지답게 거리 자체가 예쁘게 조성되어 있어서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예뻤다.

소청리는 명나라 때 건설된 해안방어도시로 수백 년 된 옛 건물과 기와집이 보존된 역사적인 거리라고 한다. 길게 이어진 성벽을 사이에 두고 현대적인 고층빌딩과 옛 건물이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옛 민가에서는 각자의 솜씨대로 도자기, 식재료, 탈, 의류 등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그야말로 숨은 장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연태(烟台 : 중국발음으로는 옌타이)는 ‘연기 나는 대’라는 뜻이다. 명나라 때 왜구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봉수대를 세웠는데, 거기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중국은 청나라 때 아편전쟁의 패배로 텐진조약을 맺게 되고, 이때 서양 열강들에 의해 강제개항을 하게 된다. 강제개항된 도시 중 하나가 연태이며, 이때 서양 세력이 들어오면서 서양의 여러 건축물과 시설, 문화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우리가 보았던 이국적인 분위기의 소청리와 조양가는 이렇게 생겨난 거리이다. 마냥 예쁘다고 감탄하기에는 가슴 아픈 역사가 있었다.


여행을 왜 하는가?

첫째,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일상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모습을 투영해 본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공동체 의식을 느낀다. 나뿐 아니라 사람은 생존을 위해 일하는 존재라는 일종의 동종의식이자 위안이다.

둘째, 억제된 식욕에서 벗어나 낯선 음식들을 맘껏 맛보는 즐거움이다. 건강검진에서 고지혈증 진단을 받아 식습관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평소에 자제되어 있던 식욕이 여행을 하면서 봉인해제된다. 여행이라는 미명 아래 아무 제한 없이 맘껏 먹는 식도락 여행이 되는 것이다. 평소에 은밀하게 숨겨두었던 식욕억제가 해방되는 즐거운 순간이다. 그런데 그 즐거움이 어떤 대가를 요구한다면? 요즘의 생각이다.


여행을 마치며

'여행의 즐거움은 목적지보다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 있다. 여행의 심리란 무엇인가? 수용성이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장소에 다가간다. 사소한 것들에 감탄하고 현재의 밑에 겹겹이 쌓여있는 역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거의 매일 걷는 길은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버스가 가로지르는 지역은 모두 어둠이고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의 시선은 집중된 대상에만 고정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는 사람의 눈의 구조가 그렇고, 또한 뇌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관심 있는 것만 보게 되며, 나머지는 그저 풍경으로 존재하게 된다.

여행을 마치며 여행지에서 별것 아닌 것에도 가졌던 호기심의 시선을 유지해보고자 한다. 주변의 유적지, 매일 지나던 길의 나무와 꽃들, 상점들, 동네거리에 호기심을 가진 시선을 던져보고자 한다.

그것은 무심히 지나친 것들에 대한 재발견이 되고, 해서 또 하나의 여행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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