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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여행하실래요?

당신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요?

by 한혜령

저녁 8시. 주문이 시작된다.

'자장자장 자장자장'

마법에 빠지고 싶지 않은 소진 남매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움직여보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마법의 꿈나라 문을 두드린다.

'똑똑똑'

아이들이 꿈나라로 들어가면 난 핸드폰 자판을 누른다.

'꾹꾹꾹'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지구 그림을 배경으로 한 '지구온난화'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한국에서 연일 지속되고 있는 폭염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인해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무더위는 매년 반복되며 그 수위도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극지방의 얼음이 녹는 속도가 빨라져 이제 이상고온 현상을 바로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기사를 보고 며칠 전 한국에 있는 친구와 했던 찜질방 얘기가 생각났다.

"찜질방 가서 땀 빼고 시원한 팥빙수 한 그릇 먹고 싶다." 한국에 있을 땐 잘 가지도 않던 찜질방 이건만 미국에 있으니 괜히 더 가고 싶다.

"찜질방 가고 싶어? 한국으로 와. 한국이 찜질방이야. 나가면 오분도 안돼서 땀이 줄줄 나.".."거기 살아서 복인 줄 알아~아우~부럽다. 나도 거기 가고 싶다."


안다. 나도 이곳 날씨가, 사계절이 비슷한 이 선선한 날씨가 살고 있으면서도 부럽고 좋다. 날씨라도 약이 되지 않았다면 내 향수병은 더 중증으로 악화되었을지 모른다. 기사를 읽고 안 그래도 쓸데없는 걱정으로 가득 찬 마음에 이런저런 걱정이 또 더해진다.

'그렇게 뜨겁다는데 뭘 더 심해져? 계속 뜨거워지면 우리 애들이 나이가 들면 얼마나 더 더워진다는 거야? 내 미래의 손자들은 어떡하지? 어떻게 살아?’

그때 머리에 번뜩! 진흙 속의 진주처럼 단어 하나가 튀었다.


여행.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혹은 '죽을 때 가장 후회되는 일'과 같은 리스트에서 대개 1,2등을 다투는 항목. 미국에 와서 2년 동안은 애를 배고 애를 낳느라 여행을 다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애들이 배 밖으로 나온 뒤에는 오롯이 남편과 나 둘이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여행을 갈 체력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여행은커녕 외식 한번 번듯하게 하기도 힘들었다. 나가서 먹더라도 배만 채우고 나오는 정말 ‘먹다’의 기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배만 채우고 후다닥 나올 거 비싼 곳보다는 싼 곳으로, 분위기 있는 곳보다는 우리 아이 하나쯤 칭얼거려도 덜 눈치 보이는 곳으로 가곤 했다. 당일치기로 어디라도 갈라하면 이삿짐 수준으로 짐을 싸야 했고 왜 가는지 의미를 찾기도 어려웠다. 아이들은 답답한 차가 싫어 가면서부터 울기 시작해서 멋진 경치를 봐도 맛있는 음식을 줘도 익숙한 집이 아닌 환경에 칭얼댈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도 여행을 즐기는 건 사치인듯했다.


어느덧 아이들이 6살, 4살이 됐다. 똥오줌 가리고, 알아서 먹고, 옷도 스스로 입고, 치카치카도 혼자서 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아이들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과 좋은 거 보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인생을 좀 더 풍성하게 채울 때가 됐다.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추억들을 만들어 보고 싶다. 마음은 캠핑카 타고 미국 전역 일주를 해보고 싶지만, 경험도 없을뿐더러 내 변덕스러운 마음도 걱정이 된다. 서른일곱 해를 같이 살아왔건만 변덕이 죽 끓듯한 내 마음을 아직도 잘 모를 때가 많다. 미국 전역 일주를 하며 하루하루 순간순간 행복해할지 모른다. 아니면 어딘가 이름 모를 사막에서 '내가 이 고생을 왜 하는 거지'와 같은 여행의 본질적인 질문을 퍼부어대며 하루하루 매달 낼 캠핑카의 할부와 생활비를 걱정할지도 모르겠다. 앞뒤 다 자르면 솔직히 돈이 없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가장 부담이 적은 것부터 시작해 볼 계획이다.


난 샌프란시스코 가까이에 산다. 행정구역상 우리 집 주소가 샌프란시스코가 아니니 가깝게 산다고 하는 게 정확하다. 한국에서 누가 "미국 어디 살아?"라고 물어보면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레드우드 쇼어즈요"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들으면 알만한 곳. "샌프란시스코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레드우드 쇼어즈가 캘리포니아 주의 샌프란시스코로부터 남쪽으로 고속도로를 달려 30분 거리에 있는 곳이라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되니까. 어쨌든 그래서 샌프란시스코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뜨거운 지구에서 뜨겁게 살아봐야겠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무엇을 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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