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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ervatory of flowers

정상? 비정상?!

by 한혜령


시체꽃. 아름다운 꽃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시체 썩는 냄새가 나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직접 맡기 전엔 그 냄새를 가늠할 수 없다. 시체 냄새를 모르니. 컨서버토리 오브 플라워즈를 검색해보니 시체꽃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이번 여행지는 이 곳이다.


시체꽃.jpg 저 꽃대가 피고나서 이틀정도면 시들어버린다고 한다. 키가 엄청 크다.


골든게이트 파크 안에 있는 컨서버토리 오브 플라워즈는 1879년 개장한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온실이다. 여러 가지 사고와 자연재해로 폐쇄되었다가 2003년 재개장을 하였다고 한다. 찾아보니 샤론스톤이니 힐러리 클린턴이니 나도 알만한 미국의 유명 인사들이 기금을 모아 재개장에 힘썼다고 한다.


스크린샷 2018-10-23 오전 10.54.59.png 옛날 재개장 전의 모습과 지금의 외형이 거의 비슷해보인다.


온실은 골든게이트 파크 안에서도 서쪽에 가깝게 위치해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골든게이트 파크는 동서 방향 길이 약 5Km, 남북 방향 길이 800m의 직사각형 인공공원이다. 이 넓은 골든게이트 파크에 그동안 열 번 이상 와봤어도 너무 넓고 볼게 많아 컨서버토리 오브 플라워즈는 와보지 못했다.


DSC00403.JPG 바깥에 조성된 조경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DSC00417.JPG 저멀리 보이는 별 같은 모양이 뭔가 했더니 장미다.

온실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 앞에 펼쳐진 너른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꽃과 높게 솟은 야자나무, 그 옆으로 아라비아 궁전 같은 하얀색 온실까지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꽃 그릴래. 벌! 벌! 나비! 나비!"


동화 속에 들어온 소윤이는 이미 흥분상태다.

소윤인 그림을 그리고 진우는 누나 옆에 조용히 앉아 간식을 먹었다.


DSC00427.JPG 평일이라 사람이 적어 한가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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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 입구에서부터 어디선가 들려오는 정글 소리에 소진 남매의 에너지가 또 폭발한다.

"동물원! 동물원! 가자! 가자!"

'동물이라도 있나?'

입구에서부터 갖가지 새소리 곤충소리 등 티브이에서 나오는 정글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제 동물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티 나게 과장된 소리다. 소진 남매는 그 소리가 동물들이 정말 안에서 내는 소리로 생각한 모양이다.


DSC00481.JPG 찍고 나니 포즈가 아쉽다.


DSC00493.JPG 입구 앞에서 파노라마로 길게 찍어봤는데...사진기술을 좀 더 배워야 겠다.


안으로 들어서니 끈적끈적한 습도와 미적지근한 온도가 온실임을 오감으로 느끼게 해 준다. 추운 겨울에 왔으면 좀 나았겠다. 밖에도 더운데 들어오니 안에도 후텁지근한 데다 습하기까지 해서 반갑진 않았다.

소진 남매는 소리의 진원을 찾아 전진. 이리저리 찾는다. 분명히 여기서 나는데.. 보이는 건 온통 풀과 꽃과 커다란 나무들.


DSC00497.JPG 작긴해도 밀림이 이렇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높이가 엄청 높은데 카메라로 담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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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0498.JPG 무지해서 사실 이 꽃이 시체꽃인가 했다.

"어딨지? 어딨어?"

슬슬 아이들의 호기심은 어느새 투정으로 변해간다.

"뭐야!"

"나가자~"

아무것도 없음을 인지하자 진우가 대번 나가자고 난리다.

"우리 저쪽으로는 안 가봤잖아. 저기 나무 위에는 원숭이가 있을지도 몰라."

입장료 12불이 아까워 소진 남매를 꼬셔 조금 더 돌아본다.


DSC00506.JPG 수중식물이 있는 방이다. 예쁘게 잘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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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이는 신기하게 생긴 풀과 꽃과 나무들을 연신 보고 만지고 향기를 맡았다. 소윤이가 꽃을 좋아하는 게 가끔은 신기하다. 나와 너무 달라서. 내가 낳은 딸이지만 나랑은 다른 취향을 가져서 그게 좋다. 그림, 음악, 꽃,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 아직 애기니 바뀔 수 있겠지만.. 난 소윤이만 할 때 로봇, 딱지, 구슬 이런 걸 가지고 놀았던 것 같다. 그런 동경을 해왔다. 내가 본 대로 내가 느낀 대로 그리고 노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건 주황이랑 노랑이 섞인 색이야."

"저건 보라색이랑 검은색인가?"

자기가 아는 색으로 그 색깔을 생각해내느라 윤이의 머릿속은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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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에 심어져 있는 식물이 있는 방, 물에서 자라는 식물이 있는 방 등 각각의 방마다 온도와 습도가 달라 어느 방에 가면 꿉꿉하고 후덥지근했고 어느 방으로 가면 선선했다. 몸을 덮을 만큼 넓은 잎사귀를 가진 식물, 쟁반으로 써도 될 만한 모양과 크기로 물에 둥둥 떠 있는 식물, 내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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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집에 와서 다시 확인해보니 시체꽃(Titan Arum)은 9/5일에 이미 개화 행사를 했단다.. 아.. 2주일만 더 빨리 이쪽으로 왔으면 시체꽃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몇십 년에 한 번 피는 그 꽃을 2주일 차이로 놓치다니...

꽃이라고 다 향기만 나지 않는걸 소윤이가 알 수 있었을 텐데... 자꾸 이주가 늦었음에 아쉬워진다. 언제 또 시체꽃을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어떤 곳은 77년 만에 어떤꼿은 100년 만에 또 어떤 꽃은 20년 만에 피었다고 하니... 찾아볼수록 2주가 아쉽고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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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에 비단잉어들이 있는 작은 분수가 있다. 내 팔뚝만큼 두꺼운 비단잉어 한 마리가 물 밖으로 나와 뻐끔뻐끔 거품을 낸다.

"엄마 저 물고기 버블 해요."

"가끔 저렇게 나와서 숨 쉬는 거야. 물에서도 숨을 쉬지만 저렇게 바깥에서도 숨을 쉬는 물고기들이 있대"

"그럼 밖에 나와서 살아도 돼요?"

"안돼.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지 밖에 나오면 죽어."


DSC00544.JPG 비단잉어는 일본에서 처음 개량된 관상용 어류이다.


밖으로 나와 양지바른 곳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안보다 밖이 더 화려하고 멋져 집으로 바로 가기엔 걸려있는 해가 아까웠다.

작은 강아지 두 마리가 돗자리 근처로 와서 이리저리 킁킁 냄새를 맡았다. 지난번 돌로레스 파크에서 커다란 개가 진우 신발을 공인 줄 알고 물고 갔던 게 생각나 계속 보게 됐다.

한 마리의 다리가 뭔가 어색하다. 뒷다리 하나가 말끔히 없다. 잘 보면 모르고 넘어갈 정도록 세 개의 다리로도 잘 걷고 뛴다.

"엄마, 이 개는 다리가 3개예요. 저 개는 다리가 4개예요." 소윤이가 개들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그렇네."

"......."


'왜 저 개는 다리가 없어요?'라고 묻지 않았다.

'다리가 세 개밖에 없어서 이상해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뭐가 정상인지 굳이 따지지 않았다. 왜 묻지 않는 것일까?

소진 남매도 개의 다리가 4 개인 건 잘 알고 있을 텐데...

나라면 엄마한테 이렇게 말했겠지. "엄마, 이 개 다리가 하나 없네. 어서 잘렸나. 원래 없었나. 그래도 잘 걷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다리가 있고 없고 가 아니라 그 다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허우대 멀쩡한 사람이 사람의 본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비정상이 되는 것처럼.


아이의 평범한 시선이 뭔가 좀 특별하게 들린다. 내 의식이 비정상이 되지 않도록 바짝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다.


DSC00552.JPG 온실앞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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