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 할래요?
소진 남매를 위해 골든 게이트 파크 안에 있는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를 연간회원권을 끊어서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왔었다. 매번 오는 곳이지만 아이들은 매번 좋아하고 난 뒤에서 졸졸 따라만 다니고. 가끔은 아이들을 위해서 사는 것도 좋지만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다니. 그래서 이번 여행지는 나를 위한 곳, 내가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곳, 재패니즈 티 가든이다. 골든 게이트 파크에 올 때마다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로 향하는 길에 뾰족한 탑 꼭대기와 우리나라 고궁 같은 익숙한 입구를 보면서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다. 조용한 가든에 앉아 마시는 차맛은 어떨까? 집에서도 언제든지 차를 마실 순 있지만 잘 꾸며진 가든에서 마시는 차는 어떻게 다르게 내 안에 전해지는지 궁금했다.
전에는 어려서 칭얼칭얼 떼쓰고 빽 빽 울어대는 아이들과 티 가든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조용한 가든에 아이들과 들어가는 것이 고급 레스토랑에 젖먹이 애들을 포대기로 업고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재패니즈 티가든에 들어가는 용기를 내기까지 진우가 태어나고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소진 남매와 고즈넉한 정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정원의 풀과 나무와 새를 얼마나 감상할 수 있을까. 벌레 잡겠다 뛰고 숨바꼭질한다고 탑 안으로 들어가지 않음 다행이다. 정원에서 별 일없이 잘 있다 나오는 것이 하나의 도전처럼 느껴졌다. 유모차는 지나가기 힘들게 해 놓은 바닥의 돌길이 무언의 압박으로 도전의 첫 관문 같다.
입장료가 어른 9불에 5살 밑은 프리여서 자신 있게 '원 어덜트' 하고 9불을 매표소 안에 무뚝뚝한 표정의 인도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아주머니의 매서운 눈초리가 나를, 그리고 애들을 훑는다. 왜지? 윤이는 5살인데 내야 하는 건가..? 언더가 이하였던가. 헷갈리기 시작했지만 물어보는 게 더 힘든 일이라 애써 입가에 억지 미소를 지으며 입꼬리가 떨리는 걸 느끼고 섰다. 그렇게 3년을 기다려 들어온 일본식 정원은 조용하긴 해도 우아한 레스토랑 같진 않았다. 차분하긴 했지만 사람들의 얼굴은 들떠 있었고 조용하긴 했지만 열심히 사진 찍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활발했다.
'별거 아니네~'라는 안도와 함께 들어가니 입구 바로 오른쪽으로 화장실이 보였다. 그동안 아이들이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기에(물론 나도 포함) 다 같이 들어가 화장실을 해결하고 손을 씻는데 들어갈 때는 없던 사람들이 우리 뒤로 하나 둘 줄을 서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손을 차례로 닦아주려면 우린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려서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하필 세면대가 하나뿐이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또 등 뒤에 꽂혔다. 보통은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속마음은 '이런 곳에 저렇게 애들을 데려와서 민폐야.' 라거나 '애들은 놀이공원에나 데려가지 이런데 데려와서 서로 고생이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라도 대부분 겉으로는 웃어주고 농담도 걸어주고 해서 내 마음의 부담을 좀 덜어준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 매표소의 인도아주머니처럼 무표정인 사람들이다. 아.. 별거 아닌 줄만 알았는데 화장실에서 갑자기 우울한 현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민폐가 될 수도 있다는 현실. 당당히 입장료 끊고 들어온 동등한 입장이어도 어쩐지 미안해지고 움츠러든다. '시작하자마자 별로 가고 싶지 않다. 괜히 왔다. 공원에서 떠들고 신나게 노는 게 더 나았을까...' 많은 생각들을 하며 우아한 전장으로 나왔다.
화장실 밖으로 나와서 꽃과 나무와 연못을 보는 순간 우울했던 마음속 안개가 쨍쨍한 햇빛에 증발해버렸다. 내 감정의 롤러코스터와는 반대로 정원의 아름다운 모습은 정적이고 황홀했다. 온화한 아침, 비 온 뒤 화창하게 볕이 드는 차분한 정원을 보는 것 같았다. 물을 가득 머금은 생동한 꽃, 나뭇가지마다 찬란하게 빛나는 색색의 나뭇잎이 달린 나무, 꽃과 나무를 뚫고 연못으로 떨어지는 햇빛까지. 모든 것이 잘 어우러져 정갈한 느낌을 준다. 1895년에 일본인 정원사가 꽃과 나무, 잉어까지도 일본산으로 가지고 와서 만들었다니까 123년이나 된 것들인가.
정면으로 간단한 요기거리와 차를 파는 매점이 있었다. 한가로이 앉아 차를 마시던 사람들이 소진 남매가 조잘 재잘 티격태격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장실에 있던 사람들의 무심한 눈초리가 생각나서 인지, 차를 즐기던 사람들의 눈이 우리에게 바로 쏠려서 그런지 소진 남매 또래의 아이들이 없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조용히~뛰지 마~"하는 내 목소리가 정원에 가득 찼다.
물에 비친 나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물이 맑고 깨끗했다. 그 안에 내 팔뚝만 한 잉어들이 정원의 분위기만큼이나 슬렁슬렁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비단잉어들에 정신이 팔려 소진 남매는 한참을 잉어를 봤다.
잉어들 가운데 몇은 배가 불룩 튀어나왔다.
"엄마 저 잉어는 임신했어요."
"왜 새끼를 낳아요?"
"그래야 쟤들도 계속 많아지지."
"그럼 계속 낳아요?"
"새끼가 크면 또 낳고 또 그 새끼가 크면 또 낳고 하겠지?"
"그럼 계속 계속 많아져요?"
차마 계속 많아지지 않게 나이가 들면 죽게 된다고 말하지 못했다.
진우가 자기 멋대로 한참을 앞서 갔다.
"진우야!"
위험한 순간이나 급박한 순간엔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부터 지르게 된다.
엄마의 다급함과 창피함은 안중에도 없이 진우는 천진난만 옆의 풀들을 손으로 쓸고 갔다.
앞에 가는 할아버지의 팔짱을 낀 할머니가 그렇게 풀들을 만지며 가는 걸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저렇게 나이가 들어도 팔짱을 끼고 풀잎들을 손으로 쓸고 가는 감성을 간직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드영에서 혼자서 와인을 마시며 앉아있는 젊은 여자가 생각났다. 결혼하기 전 남편도 아이들도 없었던 그 시절 어두컴컴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당구를 쳤던 나의 지난날들. 술 대신 와인을 당구 대신 미술관을 볼 생각을 왜 그땐 하지 못했을까. 뒤로 돌아갈 순 없지만 앞은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다. 나중에 저런 모습이 부럽고 후회되지 않도록 살아야지.
미국에 와서 새삼 놀란 건 노인들이 멋지고 세련되셨다는 것이다. 뒷모습만 봐서는 노인인지 모를 정도로 패션 센스가 젊다.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할머니, 할리데이비슨을 귀 시끄럽게 몰고 가는 할아버지, 어디서나 당당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한국 문화와 가장 다른 점이 노인들의 생황 양식인 것 같다. 완숙미라고 해야 하나. 사람도 와인도 막걸리도 시간이 지나야 세월이 흘러야 그 맛이 깊고 완전해지는 것 같다. 물론 개중엔 안 그런 불량품들도 있지만.
정원을 산책 삼아 한 바퀴 돌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후에 다시 매점으로 돌아왔다.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앞엔 작은 찻주전자와 찻잔이 놓여있다. 혼자서 찻잔에 차를 따라 마시는 건 양도 많고 시간도 부담이 될 듯하여 아이들과 마실 수 있는 핫 초콜릿과 우리나라 단팥빵 같은 오꼬 야동을 주문했다.
그사이 소진 남매는 자리를 잡고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어느새 이렇게 컸구나.'
사색까지는 아니지만 같이 찻집에 와서 앉아 있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스스로 자기들의 할 일을 찾아서 하는 소진 남매를 이제 슬슬 하산시킬 때가 오는 건가.
정원이 잘 보이는 어느 한적한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소진 남매는 탑을 그리고 난 의자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는 사치를 부렸다. 차분하고 생동한 분위기에 내 마음을 합해 그와 같은 느낌의 근사한 생각이 떠오르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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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감사.'
여행지라서 그런지 단체로 온 활력이 넘쳐나는 사람들도 많고 오후가 되니 삼삼오오 가족 단위의 사람들, 친구들끼리 여행을 와서 사진을 찍고 재잘재잘 거리며 가든을 싱그럽게 만들어주는 아이들도 주위에 많아졌다. 난 이 낯선 곳에서 무얼 하는 걸까. 시뻘겋게 칠해진 높은 탑, 귀에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사람들이 내 주위를 감싼 곳에 이렇게 잠시 앉아 있자니 내가 있는 곳이 낯설고 우리 가족만 동떨어져 있는 것 같다. 울퉁불퉁 돌길 위를 유모차를 끌고 가야 하는 것처럼 무언가 불편하고 힘이 든다. 가끔 여행 와서 보는 이국적인 풍경과 낯선 문화와 언어는 새롭고 흥분될지 모르지만 매일 같이 너무 다른 곳에 살면 내 뿌리가 그리워진다. 뭐든 적당한 게 좋은 것 같다. 라면을 하나 먹으면 뭔가 부족한 것 같으면서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두 개 이상 끓이면 하나도 채 먹지 못하고 이내 퉁퉁 불은 면이 그 밀가루 맛이 물리는 것처럼. 적당한 게 좋다. 그런 것 같다. 나는.
좋은 점도 있다. 미국에서 살면 복작복작 세상만사 일들이 반의 반의 반으로 줄어든다. 매일 공기 좋은 산속 리조트에 사는 기분? 그것이 나에게 행복을 때로는 외로움을 주기도 한다. 아직까진 이곳에 사는 것에 감사하고 가끔 느껴지는 외로움은 투정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는 중이다. 나에겐 세상을 전부 다 가진 것보다 더 소중한 가족이 있고 그 안에 사랑이 있고 그 안에 행복이 있다. 더 이상 바랄게 무엇이랴.
눈 앞에 왔다 갔다 날아다니는 벌레가 아이들을 혹시 물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리저리 팔을 휘저어 날려버렸다. 내 왔다 갔다 하는 생각도 벌레와 함께 날아가 버렸다.
여행을 마치고 차로 돌아가는 길엔 언제나 소진 남매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오늘 뭐가 제일 재밌었어?"
내 손을 꼭 잡고 걷던 진우가 무심코 대답했다.
"행복해"
????????????
4살 아이에게 행복은 무엇일까?
달콤한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려줘야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하는 최대한의 표현이 "좋아요"일 뿐이던 애가 "행복"하다니.
그 뜻이나 알고 말을 했을까?
재패니즈 티 가든에서 산책을 하고 그림을 그린 하루에 아이가 "행복해"라고 말을 하다니. 가슴이 따뜻했다. 이 여행을 하는 이유가 손에 잡힌 것 같이 뿌듯하고 행복하고 감사했다.
여행을 하면 사람은 기분이 좋아진다. 누구에게 좋은 평을 들어도 마찬가지고, 좋은 일을 해서 그로 인해 누군가 행복해해도 그렇다. 하물며 자식이랴.
이 모든 것이 오늘 내가 세상 행복한 이유였다.
차로 향하는 발걸음이 피로에도 가벼웠다.
“진우야 행복해?”
“...”
“얼마큼 행복해?”
“...”
“진우야? 행복하다며”
“TV 틀어줘.”
짜식... 이 여행이 나중에 소진 남매에게 어떻게 추억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오늘 소진 남매에게 얘기할 거리가 하나 생겼다. 진우가 처음으로 “행복해”라고 한 날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