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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Nov 02. 2019

에어팟 프로 카피 - 압도적인 리듬감

콘텐츠 마케터가 본 에어팟 프로 영문 카피와 국문 카피 비교

에어팟 프로가 찾아왔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갖춰 기대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무선이어폰은 3년 만에 연간 1억대가 팔리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애플은 지난 2분기 기준 점유율 53%로 독보적인 1위 브랜드다.


에어팟 프로는 IT 업계 종사자들에게 멋진 소개 페이지로도 회자가 되었다.

무려 2만 5천 줄의 소스, 1.8만 줄의 CSS, 704개의 미디어 쿼리, 3,500줄에 달하는 언어별 자간 조절 코드로 구성된 페이지는 스크롤에 따른 멋진 액션들이 아름답게 구성되어 있다.


콘텐츠 마케터이자 카피라이터로서 에어팟 프로 페이지에서 눈길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역시 카피다.

큰 글자의 메인 카피와 비교적 작은 글자의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큰 글자 카피들이 제품 소개의 큰 줄기를 이어가며, 보는 이에게 매혹을 이끌어낸다면

작은 글자는 기술적 특징을 설명하기도 하고, 기능의 세부 사항과 차별화 지점을 좀 더 자세히 말해준다.


애플의 제품 소개 페이지 카피를 만드는 일은 꽤 까다로운 일이다.

애플의 카피라이팅 업무를 했던 지인에게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전세계 동시 페이지 런칭을 위해 번역팀이 모여서 진행하고 로컬 언어로 번역 후에는 다시 영문 번역을 해서 왜 이런 단어를 썼고, 이렇게 바꾸었는지 설득해야 한다고 한다. 마케팅 번역 카피라이팅을 진행해본 분들은 익숙한 과정이다. 


또 중요한 점은 페이지 디자인 혹은 줄바꿈 등에 맞춰서 글자수를 조정해야 하는 과정이다. 영문 카피에 비해 한국어 카피가 너무 길면 디자인의 통일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굉장히 강박적으로 맞춘 바이트에 어색한 단어도 보였는데, 최근의 페이지를 보니 예전만큼 영문과 한국어 카피의 글자수가 꼭 같이 가지는 않는 듯하다. 내부 가이드라인이 바뀌었을 수 있겠다.   


이번 에어팟 프로 소개 페이지의 카피를 보면서, 영한/한영 번역 카피라이팅을 하는 분들이 참고하면 좋을 예시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쏙 든, 압도적인 리듬감의 카피를 소개한다.



1. 인트로 카피
- 차별화된 기능을 강조하되 사용자의 경험으로 말하라

온전히 빠져들게 하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주변의 소리를 들려주는
주변음 허용 모드.

온종일 편안한 맞춤형 핏.

새롭게 귓가를 찾아온 매혹.
Active Noise Cancellation
for immersive sound.

Transparency mode for hearing 
what’s happening around you.

A customizable fit
for all-day comfort.

Magic like you’ve never heard.


에어팟 프로의 소개는 위와 같은 네 문장으로 시작한다.

영어 문장이 한국어 문장으로 규칙적으로 바뀌었다.

기능부터 말하고, 그 기능이 가져다 주는 베네핏을 수식어로 뒤에 붙인 영어 문장을
한국어 문장으로 번역할 때는 수식어+기능 순으로 바뀌었다. 그게 한국어로 읽을 때 자연스럽다.


차별화되는 기능(feature)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주변음 허용 모드, 맞춤형 핏.

이는 기존의 에어팟과 차별화된 기능이며, 이번 에어팟 프로를 찾는 소비자가 가장 기대할 기능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를 합쳐서 "새롭게 귓가를 찾아온 매혹"으로 요약한다.



위 문장의 번역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으로 흔히 영어 교과 시간에 배우는 식으로 투박하게 번역하면 "당신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마법" 정도일 것이다. 현재 완료형을 곧이 곧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새롭게"라는 단어로 산뜻하고 심플하게 바꿨다. 


대신 "magic"을 어떻게 옮길 것인지 공을 들인 것이 보인다. "귓가를 찾아온"은 영어 문장에 없는 문구이기도 하지만 "heard"에서 연결된 뜻이기도 하다. magic에서 연상되는 감정을 "매혹"으로 바꾼 과정을 따라가보자. 마법같은 일, 놀라운 일, 마술사가 '짜잔'하고 멋진 기술을 선보였을 때 느끼는 경탄.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으로 인해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것을 이제 느끼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의 '매혹'으로 바꾸었다. 



2. 기능 소개
- 심플하지만 리듬감 있게, 말맛을 살려 각인하라


본격적인 기능 소개 페이지는 여섯 개로 나뉜다.

편안한 착용감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음질
성능과 디자인
배터리
매혹적인 경험

위의 메인 카피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으로 시작했는데, 왜 이번에는 편안한 착용감으로 시작했을까?

이는 페이지 스크롤을 하면 이해가 된다.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고개를 들어올리는 남자의 귀에 에어팟 프로가  있다. 메인 카피의 마무리가 "새롭게 귓가를 찾아온 매혹"인 만큼, 그 귓가에 에어팟 프로가 있는 이미지를 처음으로 보여주는 것이 맞다. 

너무나 아름답게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히어로 이미지


첫 번째 편안한 착용감은 "귀와 하나 되다."라는 카피를 사용한다. 영문은 "Arrival of the fittest"이다.

영문이 fit의 최상급 표현을 쓰고, 마침내 도래한 느낌을 줬다면, 한국어 카피는 영문의 느낌을 살리지 않고 독자적인 표현을 썼다. comfort라는 동사를 착용감으로 번역했듯이, 착용의 대상인 귀에 착 붙는 느낌을 하나 되다라는 표현으로 바꾼 것이다. 흔히 '초월 번역'이라고 말하는 예시일 수도 있겠다. 한국어가 잘 하는 구조의 문장을 잡아냈다.


두 번째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의 카피는 "소리로 소음을 압도하다."이다. 영문은 "Sound that cuts out the noise."이다.

영문은 sound와 noise를 대비시키면서 cut out으로 강하게 제거하는 능동적인 느낌을 준다.

국문은 소리와 소음을 대비한다. 두 단어 모두 "소"로 시작해 더 리듬감이 있다. 노이즈 캔슬링의 원리를 '압도하다'라는 단어로 압축해 표현했다. 노이즈 캔슬링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에 앞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강한 느낌 또한 살렸다.


세 번째 음질의 카피는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들려주다."이고, 영문은 "Everything you hear is unheard of"이다.

국문 카피도 "들어보지"와 "들려주다"의 리듬감을 잘 살렸지만, 영문 카피도 재치 넘친다.

hear에 대비되는 unheard of가 "surprising or shocking because not known about or previously experienced"의 뜻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들어보지 못한 소리라는 과거의 느낌도 있지만,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하거나 알지 못했던 것을 체험하며 느끼게 되는 놀라움이라는 뜻이 있다. 

이전에도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제공하는 제품은 많이 있었지만, 에어팟 프로가 전대 미문의, 전례가 없는 놀라움을 주겠다는 자신감을 unheard of에 담은 것이다.


네 번째 성능과 디자인의 카피는 "귀 안에 두뇌를 달다."와 "A chip with serious chops."이다.

영문 카피에서 "chops"가 무슨 뜻인지 몰라 찾아보니 "chops"에 악기를 멋지게 다루는 능력이라는 뜻이 있다. 에어팟 프로 안에 적용된 chip을 chops로 대비하고, 동시에 악기를 멋지게 다루는, 음악을 제대로 잘 살려내는 chip이라고 수식한다. 

국문 카피는 칩과 찹과 같은 리듬감을 살리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듯하다. 대신 멋지게 음악을 다루는 칩의 성능을 "두뇌"로 표현했다. 똑똑하고, 엄청난 기능을 가졌다는 느낌을 준다.


다섯 번째 배터리의 카피는 두 줄로 되어 있다.

선을 모르는 충전.
지칠 줄 모르는 플레이.

Charge wirelessly.
Use tirelessly.

영어는 wire+tire, lessly로, 국문은 "모르는"으로 리듬감을 살렸다. "선을 모르는"이라는 표현은 일상적으로 쓰는 말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말맛이 더 신선하다. 충전과 플레이라는 단어에 모두 주체적인 행위의 동사인 "모르는"이라는 수식을 붙여 재미있다. 영문의 wire와 tire를 아주 멋지게 번안한 카피다.



시작부터 Siri까지 간편하다.
Simplicity from start to Siri

영문의 Simplicity와 Siri, 국문의 시작과 Siri가 시(Si)로 시작하는 리듬감이 있다. 보통 from start to 뒤에는 finish가 나와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시종일관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finish 자리에 Siri를 써서 사용 중의 모든 과정이 시리를 통해 쉽고 편하게 컨트롤이 잘 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국문은 그만큼의 느낌은 살리지 못한 느낌이다.


에어팟 프로의 카피를 보면서 이렇게 리드미컬한 카피가 이렇게 멋진 이미지와 기술과 만나 이렇게 시너지를 내는구나 싶어서 정말 놀랐다.


아래는 에어팟 프로의 국문 페이지와 영문 페이지 주소다. 사이트 설명만 봐도 리듬감 넘치는 간략한 문장이 가득하다. 영한/한영 번역하는 분들, 카피라이팅 하는 분들이 한번 꼭 살펴보시면 좋을 만한 사례다. 


https://www.apple.com/kr/airpods-pro/

https://www.apple.com/airpods-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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