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결산
나는 정리를 자주 하지 않는다.
깨끗한 책상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인터넷에서 보는 세련된 집은 깔끔하고 매력적이다. 그런 공간의 사진이 메인에 뜨면 한동안 시선을 빼앗기곤 한다. 하지만 곧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저기에 누워 과자를 먹고 뒹굴거리며 쉴 수 있을까?’
아마 그 멋진 인테리어에서도 나는 일부만 쓰고, 나머지는 그대로 건드리지 않을 것 같다. 며칠쯤은 한 자리에서 생활이 가능하도록 마련된 내 공간에는 책과 노트북, 마실 것과 간식이 늘 가까이 있다.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나만 아는 질서가 있다.
(이 보금자리를 본 내 안의 엄마는 등짝을 때린다.)
정리는 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늘 귀찮고 번거롭게 느껴진다.
그런 내가 얼마 전, 인터넷 사이트에서 지난 1년간의 주문 내역을 쭉 훑어보게 됐다. 부모님께 챙겨드렸던 영양제가 언제쯤이었는지를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화면까지 흘러 들어갔다. 그 안에는 내가 지나온 계절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어느 시기에 무엇을 샀는지, 어딜 가기 위해 어떤 물건을 구입했는지, 한동안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지가 생각보다 또렷하게 보였다.
유난히 자녀의 물건을 집중해서 샀던 시기가 있었고, 갑자기 필요해진 것들이 한꺼번에 몰렸던 때도 있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려 했던 것과, 금세 흥미를 잃어버린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는 직장에서 일하며 심적인 소모가 많아 스스로를 자주 돌아보는 편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구매 내역이라는 기록은,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나를 훨씬 더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단순했다.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분명했다. 작게는 유명한 화장품이나 명품 가방부터, 크게는 되고 싶은 직업과 이루고 싶은 것까지 비교적 또렷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열망은 있다. 다만 그것이 정말 내가 원한 것이었는지는, 가끔 멈춰 서서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하기 위해, 내가 꽤 괜찮은 사람임을 보여주기 위해 붙잡고 있었던 건 아닐까.
방 안을 둘러보니 물건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한때는 분명 필요했던 것들인데, 지금은 자리를 차지한 채 공간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은 그 시절의 나를 그대로 남겨둔 채, 지금의 나와 조용히 공존하고 있었다.
정리가 어려운 건 물건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결정하는 일 자체가 나에게는 늘 부담스럽다. 그래서 나는 정리를 자주 미루는 편이다. 다만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 오면, 의외로 단호해진다. 필요했던 이유도, 의미 있다고 믿었던 마음도 그때는 깔끔하게 내려놓는다. 나는 그렇게 미루다 비우는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다만 올해는 조금 다르다. 정리를 하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지만, 내가 사서 쌓아두었던 것들, 그리고 내가 원한다고 믿어왔던 마음을 잠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다. 나에게는 아직 그다음이 있으니까.
아마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연말결산일 것이다.
한 해를 전부 정리하지는 못해도,
정리할 준비가 된 마음으로
지나온 나를 한 번 바라보는 일.
자주 정리하지는 않지만,
나의 일 년을 그냥 넘기지 않고
이 한 해를 이렇게 마무리해 본다.
26년에는 행운이 가득하시길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