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처럼 나도 라스베이거스라는 도시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특히나 사막이라는 단어가 주는 건조함과 뜨거움 때문에 라스베이거스는 언제나 100도를 넘는 용화구 같은 더운 도시일 거니 믿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우리가 처음 라스베이거스에 오던 2007년 크리스마스에 깨어졌다. 분명 겨울이라 부를만한 차가운 바람과 쌀쌀한 공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영도 이하로 내려가 도로가 얼어붙는다거나 눈폭풍이 몰아치는 겨울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에게 눈이란 말 그대로 하늘의 축복 같은 것이다.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며, 특히 남편은 내가 군대를 안 갔기 때문이라며 절대 눈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내내 제대로 된 눈이라는 것을 본 적도 없을뿐더러, 늘 눈으로 온 세상이 덮인 산장에 갇혀보는 게 로망 아닌 로망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 세상에..
라스베이거스에 눈이 내렸다.
아직도 그날이 생생한 것이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세상에 라스베이거스에도 눈이 온다고?' 우리는 믿어지지 않는다며 수다를 떨었다. 그 전에도 아주 드물게 눈이 왔다고는 들었지만 이번 눈은 제법 눈싸움을 할 수 있을 만큼의 눈이 쌓여 그때만 해도 엄마 말 잘 듣던 3살 아들과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는 눈은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유일무이한 산(Mt. Charleston)에 무지 추웠다고 느껴지는 다음 날 때쯤 올라가면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남아 있어서 눈썰매도 타고 눈 위를 걷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사람들은 라스베이거스에 산이 있다는 것도 잘 모르겠지만 현지 라스베이거스 사람들에게 마운트 챨스톤은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막으로 겨울에는 스키도 탈 수 있는 도심에서 30분 정도 외곽에 있는 가까운 안식처가 되고 있다. 아들이 어렸을 때는 일부러 눈을 찾아 산을 오르곤 했지만 아들이 10대에 접어들면서 사실 눈을 보러 산에 가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고 2019년 2월..
정말 라스베이거스에 그것도 2월에 눈이 내릴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순간에 밤새 눈이 소복이 쌓여 아침에 출근하려 차고 문을 여는 순간 나는
"아. 눈이다. 밤새 눈이 내렸어"
잠시 밖으로 나와 아무도 걷지 않은 아무도 만지지 않은 눈을 만지며 즐거워했다. 그날은 학교도 "snow day"라며 급하게 이메일로 휴교령이 떨어지면서 신난 아들은 눈 속을 뛰어다녔다. 물론 아침이 지나면서 뜨거운 햇살에 눈은 다 사라지고 '도대체 왜 애들은 학교에 보내지 말라는 거야' 불평이 나왔지만 거의 10년 만에 보는 눈이라 다들 어린아이처럼 좋아했었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고 한국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린다고 한다.
여기 라스베이거스는 10년에 한 번씩 눈이 온다니 아직은 7-8년은 더 기다려야 눈을 볼 수 있을까?
아니면 기후변화로 인해 예전보다 더 많이 추워진 라스베이거스이니 눈을 조금 더 일찍 볼 수 있으려나?
늘 뜨겁기만 할 것 같던 라스베이거스도 나름의 사계절이 존재한다. 다만 봄과 가을이 짧고 유난히 여름이 길긴 하지만 화창한 날 좋은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한국이나 여기 라스베이거스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사실 눈을 조금 보고 싶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