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타고 입장하는 신랑, 가마 타고 입장하는 신부

남들과 다르다면 다른 결혼식을 한 전통혼례 후기

by 솔아Sora

"너는 결혼식 때 웨딩드레스 못 입어서 아쉽지 않았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다.

"나는 괜찮았어."

내가 대답했다.

"그래, 얘네 결혼식 동네잔치 같고 재밌었어. 요즘 시대에 누가 그런 결혼식을 하겠어."

다른 친구가 대신 대답해줬다.


그렇다. 나는 요즘 시대에 전통 혼례를 올렸다.

한복 입고 양 볼에는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가 얼굴에는 연지 곤지를 찍고 가마를 타고 입장하는 그런 혼례.


일 년이 지나서 그때의 일을 써보려고 한다.


백마 탄 왕자님은 아니지만 흑마를 탄 우리 신랑



나는 결혼식에 특별한 로망이 없었다. 나는 스무 살 때 대학교 언니들과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횡단한 적도 있고, 갑자기 반수를 해서 한의대에 가기도 하는 등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찾아서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렇게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할까, 다음 여름에/다음 해에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유독 '내 결혼식은 어떨까'하는 상상은 되지 않았다. 내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잘 그려지지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남자 친구 부모님을 몇 번 만나고 지금의 시아버지께서 조심스럽게 꺼냈던 다음과 같은 말에 별로 고민하지도 않고 '음 좋아요'라고 했던 것 같다.

시아버지는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렇게 말하셨던 것 같다.

"내가 한옥을 지어서 너희 결혼식을 전통혼례로 열었으면 하는데 괜찮냐."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다.

"그래도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말을 해도 된다. 천천히 생각해봐요."


나는 정말 괜찮다고, 아니 더 좋은 것 같다고 하였고 그렇게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다. 시부모님은 강원도의 한 시골에 짓고 있던 집을 거의 완성하고 잘 꾸미기 시작하였고(물론 꼭 결혼식을 위해서 지은 집은 아니었고, 결혼식이 끝난 뒤에도 그 집에서 지금도 잘 사시고 계신다.) 청첩장을 돌릴 무렵 사람들은 두 가지 사실에 놀랐던 것 같다.


"결혼식을 집에서 한다고?"


"결혼식을 전통혼례로 한다고?"


"응. 미안. 멀리 오기 힘들지. 힘들면 안 와도 괜찮아. 일단 버스 대절을 하긴 할 건데 그래도 너무 멀거야. 요즘 코로나도 그렇고 그때 상황보고 알려줘."


그렇게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신랑은 검은 말을 타고 들어왔다. 말은 크기가 꽤 커서 얼추 어른 남자만 하였다. 신랑과 나는 결혼식 전에

"신랑 입장하다가 말에서 넘어지는 거 아니야?"

하고 농담을 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신랑에게 말이 불쌍하지 않냐고 말도 허리 디스크 터질 수 있으니까 살 좀 빼라고 했는데 말처럼 쉽지는 않았는지 다이어트는 실패하였다. 그날 말이 힘들어했는지 나는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거구의 신랑을 묵묵히 짊어준 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나는 가마를 타고 들어왔다. 역시 우리는 식전에 농담으로

"가마 타고 들어오다가 가마 터져서 나 땅 밑으로 꺼지면 어떡하지?"

라고 하며 살 좀 빼야겠다고 했는데 나 역시 다이어트에 실패하였다. 그날 가마꾼들한테 미안해 죽는지 알았다. 사례는 해드리긴 했지만 더운 땡볕에 더운 가마꾼 옷을 입고 가마와 무거운 나를 들어 올렸으니 정말 고생하셨을 것이다. 신랑의 사촌과 친구 등이었는데 신랑을 안다는 죄(?)로 나를 들어 올리는 형벌에 당첨되셨으니 말이다. 나는 29년 인생 처음으로 가마를 타봐서

'와, 조선시대 양반의 기분이 이렇겠구나'

라는 생각을 잠깐 했는데 내리고 나서 가마꾼 분들의 표정을 보고 지난날 맛있게 먹은 내가 죄송했다.


그렇게 신랑은 말에서 넘어지지 않고, 신부는 가마에서 밑으로 꺼지지 않고 무사히 입장을 마쳤다.



다음에는 전통 혼례 준비과정과 장, 단점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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