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을 하기로 마음먹은 후 우리는 우리가 가진 돈을 점검해 보았다.
분명 돈을 번다고 번 것 같은데
명품도 안 사고 집은커녕 차도 못 샀는데
탈탈 털어 우리가 모은 돈은 육천만 원이었다.
중간에 남편이 사기를 당해 몇 천을(이것도 나중에 써봐야겠다) 잃었긴 해도
우리가 가진 돈은 한의원을 새로 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물론 동기들이나 주변 선후배들을 봐도 금수저한의사가 아니 이상 자기 돈 백프로로 한의원을 열지는 않는다. 대부분 대출을 받아서 개원을 하는데, 남편은 걱정되는지(사실 나도 매우 두려웠다) 대출은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정말 조금만 받자고 했다.
그래서 예산이 한정된 우리는 한의원을 신규로 오픈하기보다는 매물로 나온 한의원을 양수하기로 했다.
한의원을 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신규와 양도양수.
신규는 처음부터 한의원을 새로 여는 것이다. 의료기기도 전부 사고 간판도 사고 물품도 사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한다. 요즘 인테리어만 1억이라 하는데 우리 예산에서는 신규 개원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선택지였다.
양도양수는 이미 운영 중인 한의원을 원장이 이사, 폐업, 은퇴, 이전 등등의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것이다. 잘되는 식당을 웃돈 주고 사는 것처럼 잘되는 한의원도 높은 값어치에 팔리기도 한다. 반대로 안 되는 한의원은 무상으로도 나오기도 한다.
남편과 나는 새로 한의원 자리를 모색하기보다
한의원 양도양수 매물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고 마침 우리 집에서 차로 이십 분 거리에 한의원이 나와 방문해 보았다.
한의원 원장님은 인상이 매우 좋으셨고 자신은 이제 따뜻한 제주도로 가신다고 하였다. 이 한의원은 고정환자들이 많아 쉽게 쉽게 한 달에 일~이천만 원은 당연히 가져갈 수 있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지나고 보니 쉽게 쉽게라는 말은 틀린 표현이라 생각한다. 돈은 쉽게 못 번다. 환자들을 가볍게 대하고 성의 없이 진료했다간 환자들도 미묘한 차이를 다 느끼고 떠나간다. 단골을 쌓기는 어렵지만 무너져버리는 건 한순간이다. 아마 원장님도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 단골이 많았었는데 겸손하게 표현하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권리금 1억 4천만 원을 제시하셨다. 우리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 거리가 가까워서 좋고 주변 한의원 경쟁도 심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부부한의원을 생각하고 있던 우리는 원장이 두 명이나 들어가기엔 비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장고 끝에 양수의사가 없다고,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나니 괜히 너무나도 아쉬웠다.
우리가 수중에 일억 사천 아니 일억이라도 있었다면 이 한의원은 내 한의원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여러 고민거리가 있었지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돈이 없고, 대출할 심리적 여유가 없다는 것 아니었을까.
막상 개원을 하려고 보니
일억은 시장에선 정말 적은 수, 남들은 다 가는 동네 산 정도였는데
우리에겐 마치
넘보지 못할
에베레스트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아 돈이 없어서 개원을 못하는구나
라고 단념하고 있을 때
우리의 여건에 맞는 한의원이
딱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