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치료의 과학적 접근
"침 맞으면 시원해."
"몸에 바늘을 찌르는 거 아니야? 그거 그냥 플라시보야. "
침 치료에 대한 경험은 각양각색이고, 누가 좋다더라고 해서 한의원을 찾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침 치료가 정말 효과적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당연하게도 많은 한의사들이, 그리고 심지어 한의사가 아닌 다른 과학자들도 궁금해했던 질문이고, 이에 대한 연구가 정말 많다.
그래서 오늘은 주로 과학적인 입장에서 침 치료가 효과적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많은 내용의 출처는 <침의 과학적 접근과 임상활용, Jacqueline Filshie 저/한미의학>이라는 책을 참고하였습니다.)
우선 침 치료가 정말 효과적인 질환부터 살펴보자.
1. 여러 종류의 만성 통증
허리가 아파서, 어깨가 아파서 등 통증이 있어서 한의원에 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실제로도 한방의료기관에서 청구하는 상병을 살펴보면 1위는 단연 근골격계 질환이다.
침 치료는 대부분 허리, 무릎, 어깨, 목 부위의 통증과 두통 등에 널리 적용되고, 통증 클리닉 형태의 한의원이 많으며 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특히 연구의 질도 높은 편이어서, 잘 설계된 RCT와 이를 고찰한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 등에서 침 치료는 통증 치료의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이미 많은 연구에서 입증하였다.
(연구는 이런 식이다. 침 치료를 받은 실험군과 약물치료를 하거나 아무것도 안 한 치료 혹은 가짜 침 치료를 받은 대조군 등을 비교한다. 이렇게 해서 나오는 논문이 RCT이고, 이런 여러 종류의 RCT를 비교한 것이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이다.)
따라서 미국내과학회(American college of physicians)와 미국통증학회(American Pain Society)의 공동가이드라인에서는 만성 요통의 침 치료를 지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환자의 통증이 6주 이상 지속될 경우 12주 동안 (3개월 동안) 10회 정도 침을 맞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출처 Nonpharmacologic therapies for acute and chronic low back pain: a review of the evidence for an American Pain Society/American College of Physicians clinical practice guideline - Roger Chou 외, Ann Intern Med . 2007 Oct 2;147(7):492-504.
침이 통증에 효과적인 기전은 이미 밝혀졌다.
이에 대해서도 수 페이지에 걸쳐 설명해야 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국소적 측면에서는 침을 놓으면 감각신경이 활성화되면서 다양한 신경펩티드가 방출된다(CGRP, Substance-P, NGF 등). 침 치료 시 아데노신이 분비되는데 아데노신은 통각 수용기의 세포벽에 결합하여 자극에 대한 통증 반응을 억제한다. 즉, 아데노신이 분비되면 통증이 줄어든다. 전신적인 측면에서는, 침 치료가 뇌에 작용을 하는데, 침을 놓으면 신경계의 오피오이드 펩티드가 방출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오피오이드는 모르핀 유사 진통작용을 보이는 내인성 펩티드이다.
출처 The Involvement of Descending Pain Inhibitory System in Electroacupuncture-Induced Analgesia, Qiuyi Lv 외, Front Integr Neurosci. 2019 Aug 21;13:38.
2. 뇌출혈 및 뇌경색, 두통 등 신경계 질환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and Clinical Excellence)에서는 만성적인 긴장형 두통과 편두통의 치료로써 침 치료를 인정하였다.
침 치료가 두통에 효과적인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침의 진통기전에 따라 설명할 수 있을 것이고, 단순히 침이 두통이 발생했을 때 통증을 감소시켜주는 것 외에도 두통이 앞으로도 당분간 발생하지 않을 것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뇌출혈 및 뇌경색 등 뇌졸중은 국내 사망원인 3위인데(암, 심장질환 다음으로), 뇌졸중은 사망 외에도 한 번 발생하면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기 때문에 발생률을 줄이고 발생한 후에는 재활 치료가 중요하다.
뇌졸중 환자에게 침 치료가 도움이 되는 기전은 뇌기능 재구성과 관련된다. 뇌졸중이 발생하면 해당 영역의 뇌세포는 죽지만, 그 주변의 세포가 죽은 세포를 대신할 수 있다. 이를 신경가소성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뇌졸중 환자가 아무 치료를 받지 않아도 다시 걷게 되는 등 회복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침 치료는 이 회복할 수 있는 정도를 더 빠르게, 더 많이 제공하는 것이다. 그 기전은 침 치료가 신경보호 효과 및 뇌혈류 개선 (쉽게 말해 침 치료를 통해 혈액 순환이 잘 되니까)에 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뇌졸중은 재발방지가 정말 중요하다. 재발률이 높고, 지금은 지팡이를 쓰는 정도였는데 그다음에 또 재발하면 아예 침대에서 못 일어날 수도 있을 정도로 다음 재발 시 더 심각한 경향이 있다.
대만에서는 뇌경색으로 새롭게 진단받은 30,058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침 치료를 받은 중풍 환자가 재발률이 낮았다고 한다.
출처 A Retrospective Cohort Study Comparing Stroke Recurrence Rate in Ischemic Stroke Patients With and Without Acupuncture Treatment, Chun-Chuan Shih 외, Medicine (Baltimore). 2015 Sep; 94(39): e1572
침 치료는 뇌졸중의 다양한 증상에서 여러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전반적인 운동 기능 향상, 장애 감소, 삶의 질 향상, 사망 감소 등에서도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3. 구토 등 소화기계 질환(기능성 질환 위주)
흔히 체했을 때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으면 체기가 내려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침 치료가 음양의 균형을 회복한다고 표현하였지만, 현대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침 치료가 교감신경과 부교감 활동 간의 불균형을 조절할 수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와닿을 것 같다.
침 치료가 주로 소화불량, 역류성 식도질환, 과민성 대장증후군 등의 기능적인 질환에 효과적인 연구가 많은데, 아무래도 일차진료에서는 기능적 질환이 많고, 그리고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서양의학적 접근이 first choice 일듯 싶다(충수염이 있으면 충수 절제를 해야지 침을 놓을 수는 없겠죠).
구역, 구토에 대한 침 치료의 기전은 침이 위장관 평활근에 직접적 영향을 끼쳐서 나타난다고 연구에서는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혈자리 내관은 위전도기록에서 규칙적인 서파 출현 분율을 향상하고, 내관 전침은 역행성 연동 수축을 억제하고 구토 빈도를 줄였다고 한다.
침 치료가 효과적이라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질환들
1. 건선 등 일부 피부질환들
침 치료는 아무래도 금속 물질을 피부에 자입하기 때문에 아주 가끔 두드러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나도 가끔 내 손에 침을 놓고 나서 침놓은 부위에 국소 홍반 및 혈종이 생길 때가 있고 가끔은 간지럽기도 하는데, 보통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곧 사라진다.
그런데 건선이라는 피부질환은 유전성이 강한 비감염성 염증성 피부질환으로, 신체적 피부 자극으로 촉발될 수 있다. 따라서 건선 환자에게 금속 물질을 자극하면 오히려 악화를 촉발시킬 수도 있다. 차라리 레이저 침을 통해 자극을 주거나 한약 치료가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반면 아토피 피부염에는 침 치료가 항원-유발 호염 기구 활성화를 감소시키거나 뇌섬엽과 조가비핵 등 가려움 신호 처리에 관련된 뇌 영역을 조절한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는데, 앞으로도 더 수준 높은 임상 연구가 필요하다.
2. 금연 및 약물의존
최근 우리나라에서 마약 이슈가 뜨겁게 떠오르고 있다. 미드나 영화로만 접하던 마약이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유통된다고 하는 등 우리나라도 더 이상 마약 안전지대가 아니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약물 의존에 대한 침 치료에 대한 연구는 우리나라보다는 해외에서 활발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되듯이) 약물의존 관련된 임상시험 연구는 중간에 탈락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높은 질의 임상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외국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전기 침이 변연계에 작용하여 금단증상 억제 기간을 연장시킨다는 보고가 있었다. 하지만 알코올 의존이나 코카인 의존 등에 대한 침 치료와 관련된 연구는 방법론적 질이 낮았고, 완수 비율이 낮았으며 대상자 수도 적었다.
금연에 대한 이침 연구도 활발하지만 내가 다른 글에서도 밝혔듯이, 효과가 있냐 없냐 논란이 있으며 결국 중요한 것은 환자의 의지인 것 같다.
3. 대부분 질환의 말기
질환이 이미 진행된 상태에서는 침 치료에 대한 기대는 완치보다는 일단 이거라도 해보자라는 대안적 치료로 방향이 잡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말기암환자에게 침 치료가 암세포를 없애줄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암환자가 통증이 조금이라도 줄어서 잠을 잘 수 있도록, 진통제나 항암제의 구역, 구토 등 소화기계 부작용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
CRPS라는 질환이 있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이라고 하여 극심한 고통이 만성적으로 환자를 괴롭힌다.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며 TV나 언론에도 가끔 나오는 질환인데, 나는 가히 상상도 못 할 정도의 통증이라고 하니 차마 환자의 마음과 고통을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CRPS에 대한 소규모 연구에서는 통증의 개선이 있다고는 하나 결국은 초기에 질환을 진단받는 것을 강조한다. 물리치료, 심리치료, 인지 치료 등 다학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다시 말하면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이것도 해고 저것도 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침 치료는 CRPS 환자들에게 물론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일정 이상의 효과를 주는 것은 힘들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환자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치료는 환자의 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침 치료가 단순히 기혈을 조절한다라는 식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는 시대는 지났다.
한의사는 전통 동아시아의 관점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도 침 치료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침은 맞으니까 좋아, 너도 맞아야 알 수 있어."보다는 침의 원리와 효과에 대해 대중들과 다른 의료진들이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