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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Sora Aug 29. 2024

처음으로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신생아는 시각이 잘 발달하지 않아 흑백만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뒤로 선명한 색깔부터 알아보기 시작한다.

실제로 우리 집에 딸랑이 세 개가 있었는데 아기는 처음에는 한 가지 딸랑이, 쨍한 주황색 토끼 딸랑이만 좋아했다. 그 뒤로는 두 번째 노란색 용 딸랑이에 관심을 가졌다. 친구가 사준 베이지 딸랑이는 귀여운데 왜 관심이 없지라고 생각했는데 색깔 때문이었나 보다. 5개월이 되어서야 마지막 베이지색 딸랑이를 흔들면 방긋방긋 웃는다.

아기는 매일 똑같이 누워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매일매일 지구에 적응하며 크느라 오늘도 고생하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다른 아기, 실제로 느끼니 정말 신기하다.


2. 이유식을 시작하니 아기의 식성을 파악하게 된다. 아기는 일단 과일을 제일 좋아한다. 청경채는 입구컷을 당했다. 사과, 바나나, 수박 등 과일을 좋아하는데 특히 수박을 제일 좋아한다. 수박을 한 입 주고 연이어 주지 않으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식탁을 마구마구 치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 일부러 수박을 천천히 다. 그러다가 곧 짜증이 울음으로 바뀌려고 해서 '아기 성격 나빠지기 전에' 수박을 연신 준다.


3. 6개월이 넘자 아기와 외출이 좀 더 수월해졌다. 오늘은 남편과 아기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당에 아기의자가 있어 아기는 아기의자에 앉혀두고 우리는 저녁을 먹는다. 아기가 낯을 가려 새로운 장소에 가면 한동안은 조용하다. 그 틈을 타서 우리는 재빨리 저녁을 먹는다. 식당 직원이

"어쩜 이렇게 순할까."라고 말을 거신다.

속으로는 '낯 가려서 그래요. 좀만 있으면 본모습을 드러낼 거예요.'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웃음으로만 답하기로 한다.

아니나 다를까 아기는 삼십 분 정도 지나자 본색을 드러낸다. 칭얼거리기 시작하여 우리는 재빨리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온다. 그래도 오랜만에 우리 가족이 다 함께 한 외식이라 기분이 좋았다.


'까똑'


남편이 아까 식당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 아기는 나를 정말 사랑스럽게 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온 세상의 전부라는 듯이.


요즘에서야 엄마가 된 것이 실감이 난다. 아기가 나를 의지하고 나만 보면 방긋방긋 웃고, 내가 사라지면 나를 찾으며 울고. 어렸을 때 효도는 다 한다더니, 정말 사랑스러운 순간들이다.


아기 낳고 처음으로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정신이 없어서 언제 돌이 되지, 언제 걷지, 말을 하면 좀 더 수월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은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니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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