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에 대하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611. 권태와 유희 - 욕망은 우리에게 노동을 강요하고 노동의 수확으로 욕망은 가라앉게 된다. 항상 새롭게 욕망이 눈을 뜨게 되는 일은 우리를 노동에 익숙하게 만든다. 그러나 욕망이 가라앉고 동시에 잠자는 휴식시간에는 권태가 우리를 엄습한다. 권태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 일반에 익숙해지는 것이며 이제 새롭게 추가되는 욕망으로서 영항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노동에 더 강하게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나아가서 아마 욕망 때문에 괴로움을 더 강하게 느끼면 느낄수록 그만큼 권태도 강해질 것이다. 인간은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나머지 다른 욕망들의 정도를 초월해서 노동하거나 아니면 유회를 생각해내야 한다. 그것은 노동 일반에 의한 욕망 외에는 다른 아무런 욕망도 가라앉힐 수 없는 노동을 의미한다. 유희에도 싫증나고 새로운 욕망을 통해서도 노동을 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때때로 제3의 상태에 대한 요구가 엄습한다. 이것은 행복하고 안정된 감동을 향한 요구로, 떠다니는 것이 춤에 관계하고, 춤이 걷는 것에 관계하는 것처럼 유희에 관계하고 있는 것이다 : 이것은 행복에 관한 예술가와 철학자의 환상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28)


삶은 욕망과 노동이라는 두 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과 같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욕망), 그것을 얻기 위해 땀 흘려 일한다(노동). 그리고 마침내 목표를 이루면 욕망은 잠시 잠잠해지고 만족감이 찾아온다. 하지만 이 평화는 길지 않다. 금세 새로운 욕망이 고개를 들고, 우리는 다시 노동의 현장으로 나선다. 이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인간은 '일하는 존재'로 길들여진다.

그런데 모든 욕망이 채워지고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휴식의 순간, 불쑥 '권태'라는 이름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니체는 이 권태의 정체가 무엇인지 날카롭게 파고든다. 권태는 단순히 '지루함'이나 '따분함'이 아니다. 그것은 쉼 없이 돌아가던 노동의 톱니바퀴가 멈추었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이자, '노동 자체에 익숙해진 상태' 그 자체다. 역설적이게도, 더 열심히 일하고 더 강한 욕망에 시달렸던 사람일수록, 모든 것이 멈춘 순간 더 깊은 권태의 늪에 빠진다.

이 견딜 수 없는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은 두 가지 길을 찾는다. 하나는 자신의 욕망을 넘어서는 과도한 노동에 몰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희(놀이)'를 발명하는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유희는 단순히 노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런 목적도 없는 노동'이다. 생계를 위해, 혹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오직 '일하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활동이다. 등산, 낚시, 게임, 악기 연주 같은 취미 활동이 그렇다. 이 활동들은 당장 무언가를 해결해주지 않지만, 권태라는 공허함을 채우고 노동에 중독된 정신을 달래준다.

하지만 유희마저도 언젠가는 싫증이 난다. 놀이에 지치고, 더 이상 무언가를 해야 할 새로운 욕망조차 떠오르지 않을 때, 인간은 더 깊은 허무와 마주한다. 바로 이때, 사람들은 '제3의 상태'를 갈망하기 시작한다. 니체는 이 상태를 '행복하고 안정된 감동'이라 표현한다. 그것은 노동의 고통과 유희의 소란스러움을 모두 넘어선, 고요하고 충만한 상태다. 마치 걷기(노동)가 춤(유희)이 되고, 그 춤이 물 위에 몸을 맡긴 듯한 평화로운 떠다님(제3의 상태)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다.

이것이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평생에 걸쳐 꿈꾸는 '행복'의 본질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성취해서 얻는 쾌감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충만함으로 가득 찬 상태, 즉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완전한 평화를 느끼는 경지다. 물론 니체는 이것이 하나의 '환상'일 수 있다고 말한다. 욕망과 노동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난 완벽한 행복이 현실에 존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그저 일하고 욕망하는 존재에 그치지 않고, 권태와 유희를 거쳐 궁극적인 평온함을 끊임없이 갈망한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권태라는 깊은 그림자를 마주할 때 우리는 행복이라는 가장 빛나는 환상을 꿈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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