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615. 우울증 환자를 위한 위로 – 위대한 사상가가 때때로 우울증적인 자기학대 행위들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는 위로하기 위하여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너 자신의 큰 힘에서 이 기생충은 영양을 섭취하고 성장한다. 그 힘이 더 적었더라면, 너는 조금 고통을 덜 받아도 되었을 것이다." 정치가 역시, 국민의 대표자로서 반드시 그것에 강한 재능을 지녀야 하는 경쟁심과 복수심, 그리고 만약 자신의 개인적인 관계들에도 파고들어 삶을 어렵게 만들 때에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31)
우리는 우울하거나 불안하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빨리 고통을 없애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철학자 니체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그는 그 고통이 우리가 '약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강해서' 생기는 것일 수 있다는,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 말을 하고 있다
니체는 우울함이나 자기 학대 같은 힘든 감정을 '기생충'에 비유한다. 이 비유가 중요하다. 생각해보면, 기생충은 숙주(주인)가 약하고 영양분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오히려 숙주가 건강하고 '먹을 것'이 많을 때 더 잘 자란다. 즉, 내 안의 고통이라는 '기생충'이 크고 힘들다는 건, 반대로 생각하면 내 안에 그만큼 '풍부한 영양분(즉, 큰 힘)'이 있다는 증거라는 뜻이다. 니체도 말한다. "그 힘이 더 적었더라면, 너는 조금 고통을 덜 받아도 되었을 것이다."
왜 똑똑한 사상가가 우울증이나 자기 학대에 빠질까? 니체는 그것이 그가 '깊이 생각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진실을 끝까지 파고들고,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 남들처럼 적당히 만족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깊이 생각하는 힘(강함) 때문에, 그는 결국 삶이 얼마나 부당하고 덧없는지를 남들보다 더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고통). 얕은 물에서는 큰 파도가 칠 수 없다. 생각이 얕은 사람은 이런 극심한 고통을 겪을 필요도, 겪을 능력조차 없는 셈이다. 그의 고통은 그만큼 그의 정신력이 강하다는 증거이다.
'정치가'도 비슷하다. 훌륭한 정치가가 되려면 '경쟁심'이나 '복수심' 같은 강한 승부욕(힘)이 필요하다. 그래야 정치적 라이벌을 이기고 자기 뜻을 밀어붙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강력한 힘이 개인적인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면, 그의 일상은 매우 힘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기생충이다. 하지만 니체는 이 역시 위로한다. 만약 그에게 그런 강한 승부욕이 없었다면, 개인적인 삶은 편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결코 훌륭한 정치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의 단점은, 그가 가진 가장 큰 장점에서 나온 그림자인 셈이다.
니체의 이 생각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힘내라'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고통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준다. 그렇다고 고통이 무조건 좋다거나, 우울증을 그냥 내버려 두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다만, 나를 힘들게 하는 그 고통이 큰 만큼, 내 안에는 그것을 만들어낼 만큼의 '엄청난 힘'이 숨어있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조언이다.
우리는 자주 단점이나 힘든 감정에 사로잡혀 '나는 왜 이럴까', '나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탓한다. 하지만 니체의 말대로, 그 고통(기생충)은 우리가 가진 큰 힘을 먹고 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 고통을 어떻게 없애지?'가 아니라, '이런 고통을 만들어낼 만큼, 내 안의 거대한 힘은 도대체 뭘까?'라고 말이다. 고통은 에너지가 바닥났다는 신호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엄청난 에너지가 잘못된 방향으로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그 힘을 제대로 알아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그 고통은 더 이상 나를 파괴하는 '기생충'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