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610. 훌륭하지 못한 시인으로서의 인간 - 훌륭하지 못한 시인은 시구의 두 번째 부분에서 각운에 맞추어 생각을 찾는 것처럼, 인간들은 삶의 후반부에 한층 더 불안해져 과거의 삶에 적합한, 따라서 모든 것이 표면적으로는 잘 조화되는 행위, 입장, 상황들을 구하는 경향이 있다 : 그러나 그들의 삶은 더 이상 강한 사상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항상 다시 새롭게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강한 사상의 자리에 단지 각운을 발견하려는 의도가 들어선 것 뿐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28)
서툰 시인은 먼저 그럴듯한 첫 구절을 써 내려간다. 그리고 두 번째 구절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영감이나 깊은 생각을 담아내기보다, 첫 구절의 끝과 운율을 맞출 단어를 찾는 데 급급하다. 내용은 빈약해지더라도 각운만 맞으면 그럴싸한 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나이가 들어가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마치 서툰 시인처럼 대한다고 말한다. 삶의 전반부가 첫 구절이라면, 후반부는 그저 과거와 각운을 맞추려는 시도들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삶은 강렬한 생각과 열정의 지배를 받는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갈 수 있다. 이때의 선택들은 제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며 삶이라는 시의 첫 구절들을 힘차게 써 내려간다. 하지만 어느덧 삶의 중반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종종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앞으로 무엇을 이룰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과거의 자신과 어울리는 다음 행보가 무엇일지를 더 신경 쓴다. 젊은 시절 '도전적인 사람'이었다면, 이제는 그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억지로 새로운 도전을 찾는다. '안정적인 사람'으로 살아왔다면, 마음속에 새로운 꿈이 피어나도 과거와의 조화를 위해 애써 외면한다. 마치 시인이 각운을 맞추기 위해 억지 단어를 끼워 넣듯, 삶의 일관성이라는 운율을 위해 현재의 진실한 감정과 욕망을 희생하는 것이다.
삶의 후반부에 이르러 더 이상 가슴을 뛰게 하는 새로운 목표나 열정이 없다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과거로 눈을 돌린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고통과 불확실성을 감당하기보다는, 이미 검증된 과거의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 훨씬 쉽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거와의 각운 맞추기'는 삶의 표면적인 조화와 안정감을 준다. 다른 사람들 눈에도 "한결같은 사람", "일관성 있는 삶"으로 비쳐 존경과 신뢰를 얻기 쉽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창조적인 에너지의 고갈과 현재를 외면하는 자기기만이 숨어 있다. 강렬한 사상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것은 그저 그럴듯한 각운을 찾으려는 공허한 의도뿐이다.
훌륭한 시인은 각운에 생각을 가두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그에 맞는 최적의 형식과 운율을 창조해낸다. 삶을 살아가는 것도 이와 같아야 한다. 과거가 어떠했든, 현재의 내가 느끼고 원하는 것에 충실할 때 삶은 비로소 다음 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과거의 행적과 어긋나 보이는 선택일지라도,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진실하다면 그 또한 삶이라는 거대한 시의 일부가 된다. 인생의 진정한 조화는 표면적인 일관성이 아니라, 매 순간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진실성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삶이 그저 과거의 메아리로 남을지, 아니면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위대한 서사시가 될지는, 각운의 유혹을 뿌리치고 새로운 생각을 써 내려갈 용기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