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창조의 역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617. 개인적인 결함에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것 -루소 같은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 결합, 악덕을 곧 자신들의 재능의 비료로 이용하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다. 루소가 사회의 부패와 타락을 문화의 보기 흉한 결과로 한탄할 경우, 그 뿌리에는 개인적인 경험이 있다. 경험의 쓰라림은 그에게 일반적인 유죄 판결의 신랄함을 가져다주고 그가 쏘는 화살들에 독을 칠했다. 그는 먼저 한 개인으로서 책임을 면하게 되고 직접적으로는 사회에, 그러나 간접적으로는 사회를 매개로 해서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는 치료 수단을 찾으려고 생각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32)


니체는 루소(Jean-Jacques Rousseau,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와 같은 사상가들이 자신의 약점, 결함, 악덕까지도 재능을 키우는 비료로 삼아 이용하는 방식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루소는 자신의 사생아 다섯 명을 모두 고아원에 버리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저질렀다. 그의 개인적 삶의 이 어두운 면이, 역설적이게도 그의 교육 철학서인 『에밀』에서 주장하는 이상적인 교육론(아이를 자연의 순수성 속에서 키워야 한다는 교육론)과 자신의 현실 행동 사이의 모순을 인식하게 만들었고, 이는 사회의 위선과 부패를 격렬하게 비판하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인간의 위대한 업적이 고통스러운 개인적 경험과 자기 합리화라는 복잡한 심리적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다.


개인이 사회의 부패와 타락을 한탄하며 비판할 때, 그 비판의 근본적인 뿌리에는 개인적인 쓰라린 경험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사상가가 겪은 내면의 결함이나 사회에 대한 불만은 외부로 투사되어, 사회 전체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일반화된다. 이러한 일반화는 비판에 강력한 힘을 부여한다. 개인적인 경험의 고통이 스며들었기 때문에, 그가 쏘는 비판의 화살들에는 마치 독이 칠해진 것처럼 강렬한 정서적 호소력이 생긴다.


이 과정을 통해 개인이 책임에서 벗어나는 심리적 효과를 얻는다. 자신의 내적 고통이나 결함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타락한 사회의 결과'로 해석될 때, 사상가는 개인으로서의 책임을 면하게 되고 일종의 심리적 해방감을 얻는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단순한 책임 회피를 넘어 창조적인 동력으로 작용한다. 루소는 사회를 비판하고 해결책을 제시함으로써 직접적으로는 사회에 이득이 되는 치료 수단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니체의 관점에서 볼 때, 이 행위는 간접적으로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는 치료 수단이었다. 루소의 위대한 저작들은 결국 그의 불안, 좌절, 개인적 결함이 발현되고 해소되는 통로였으며, 이 과정은 그에게 명성, 존재의 정당성, 그리고 내면의 평화를 제공하는 보상이 되었다.


즉, 사상가의 악덕이나 약점은 그들을 평생 괴롭히는 짐이 아니라, 끈질긴 문제의식을 심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강렬한 고통이 없었다면 그토록 치열하고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창조는 자기 자신을 치료하고 정당화하려는 강렬한 개인적 욕망에서 비롯되는 역설을 안고 있다.


우리는 어떤 작품이나 사상을 접할 때, 그것이 얼마나 숭고하고 순수한 목적에서 나왔는지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니체는 가장 훌륭한 창조물조차도 개인의 고통과 결함이라는 '보기 흉한 거름' 위에서 자라났을 가능성을 직시하라고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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