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631. 인식의 어떤 문제들에 대한 회의적이고 상대적인 모든 태도에 대한 깊은 불만은 사람들이 절대적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일에 익숙해 있었던 시대에서 유래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권위 있는 사람들(아버지. 친구. 교사. 군주)의 신념에 무조건 항복하는 쪽을 택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일종의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이러한 경향은 완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그 결과들이 인간 이성의 발전에 대해서 심하게 비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학문적 정신은 점차적으로 그 신중한 절제의 덕을 성숙시켜야만 한다. 그것은 이론적인 삶의 영역에서보다 실천적인 삶의 영역에서 더 잘 알려져 있고 예를 들어 괴테가 안토니오 Antonio라는 인물에서 타소 Tasso의 모든 것에 대하여. 즉 비학문적이며 동시에 게으른 본성을 가진 것에 대하여 분노의 대상으로 묘사했던 그러한 절제의 덕이다. 신념을 가진 사람은 그 신중하게 사고하는 사람인 이론적인 안토니오를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자신 속에 가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 때문에 학문적인 사람은 비학문적인 사람을 비난할 권리가 없다. 그는 상대를 못 본 체해준다. 게다가 특정한 경우에는 그 사람이, 타소가 결국 안토니오에게 그렇게 하듯이, 자신에게 매달릴 것을 알고 있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43)
우리는 오랫동안 권위 있는 사람들(아버지, 친구, 교사, 군주)의 신념에 무조건 항복하는 것을 미덕으로 배워왔다. 그들의 말이 곧 법이고 진리였던 시대가 길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믿음에서 벗어나 의문을 제기하면 "일종의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권위자의 말을 의심하는 것이 마치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학창 시절, 선생님의 말씀이나 교과서의 내용에 의문을 품는 것을 두려워했다. 정해진 답을 외우고 따르는 것이 편했고, 그것이 '착한 학생'의 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마주한 세상은 교과서처럼 명쾌하지 않았다. 절대적인 정답은 없었고, 수많은 상대적인 진실들이 부딪히고 있었다. 그 혼란 속에서 나는 여전히 누군가 나에게 '이것이 진리다'라고 딱 잘라 말해주기를 바라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괴테의 희곡 『타소(Torquato Tasso)』*에는 두 인물, '타소(Tasso)'와 '안토니오(Antonio)'이 등장한다.
'타소'는 열정적이고 비학문적인, 때로는 게으른 본성이다. 그는 '신념'으로 세상을 본다. 어떤 매력적인 사상이나 인물에 꽂혔을 때, '타소'는 그것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어버린다. '안토니오'는 '학문적인 정신'이다. 그는 "신중한 절제의 덕"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섣불리 결론 내리지 않고, 한발 물러서서 현상을 관찰하고 의심한다.
'타소'(신념을 가진 사람)는 '안토니오'(학문적인 사람)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비난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안토니오'는 '타소'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상대를 "못 본 체해준다."
왜일까? 니체는 그 이유를 "특정한 경우에는 그 사람이... 자신에게 매달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열정적이고 비학문적인 '타소'는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고 현실의 벽에 부딪혔을 때, 결국 자신이 무시했던 그 냉정하고 신중한 '안토니오'의 지혜와 절제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니체는 우리에게 절대적 진리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에서 벗어나 "학문적 정신", 즉 "신중한 절제의 덕"을 성숙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삶에 대한 열정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열정이 맹목적인 광신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의심하고 성찰하는 이성의 힘을 기르라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적 진리'라는 달콤한 유혹에 쉽게 빠진다. 그것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강력한 힘의 원천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괴테의 희곡 『타소(Torquato Tasso)』: 16세기 이탈리아의 실존 인물인 시인 타소를 주인공으로 한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희곡이다. 감성적이고 열정적인 예술가 타소와 냉철하고 현실적인 정치가 안토니오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이상과 현실, 예술과 삶의 조화 문제를 다루고 있다. 타소는 자신의 내면세계에 몰입하여 열정적으로 행동하지만 현실 감각이 부족하여 안토니오와 갈등을 빚고,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지만 안토니오에게 의지하며 구원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