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632. 여러 가지 신념들을 두루 거쳐온 것이 아니라 처음에 걸린 믿음의 그물에 매달려 있는 사람은, 사정 여하를 불문하고 바로 이 불변성 때문에 뒤떨어진 문화들의 대표자이다. 그는 교양(이것은 항상 교화할 수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의 이러한 결여 때문에 거칠고 무분별하며 납득시키기 어렵고 온화함이 없으며 영원한 불신자이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할 무모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마도 그는 어떤 힘의 원천이며, 지나치게 자유롭고 활기 없는 문화 속에서는 유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강하게 자극하므로 그에게 대항하게 되는 경우에만 유익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와 싸우도록 강요된 새로운 문화의 더 나약한 구조는 그럼으로써 스스로 강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43)
다른 의견은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처음에 걸린 믿음의 그물'에 단단히 매달려, 그 생각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의 확신은 때로는 '강인함'이나 '뚝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모습에서 답답함과 불안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마치 흐르지 못하고 고여 버린 물을 보는 것 같아서다.
니체는 이러한 사람들이 사정 여하를 불문하고 "뒤떨어진 문화들의 대표자"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니체는 진정한 '교양'이란 "항상 교화할 수 있음", 즉 끊임없이 배우고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첫 믿음의 그물'에 갇힌 사람들은 이러한 유연함이 결여되어 있다. 그들은 "거칠고 무분별하며 납득시키기 어렵고 온화함이 없으며 영원한 불신자"가 된다.
그들은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자신의 신념과 다른 의견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의지해온 안전한 세계를 찢으려는 위협적인 공격으로만 느껴진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무모한 사람이 된다. 타인의 말에 귀를 닫고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는 그들의 모습은,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선언에 가깝다.
니체는 이렇게 꽉 막힌 사람들이 "지나치게 자유롭고 활기 없는 문화 속에서는 유익할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단, "그가 강하게 자극하므로 그에게 대항하게 되는 경우에만" 그렇다.
하나의 신념에 갇히는 것은 자신을 뒤떨어지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 갇힌 신념과의 투쟁은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