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633. 우리는 본질적으로는 아직 종교개혁 시대의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들이다 : 어떻게 다를 수가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의견이 승리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몇 가지 수단들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그 시대를 능가하게 하며 우리가 더 높은 문화에 속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지금도 여전히 종교개혁 시대의 인간의 방식으로 의혹과 분노를 폭발하면서 의견들을 공격하고 진압하는 사람은 만약 그가 다른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자신의 적을 화형에 처했을 것이라는 점과 그가 종교개혁의 반대자로 살고 있었다면 이이단심문의 모든 수단을 가지고 자신의 안전을 도모했으리라는 점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이 이단심문은 그 당시에는 합리적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회의 전 영역에 선포되어야만 했던 보편적인 개업 상태일 뿐이며, 즉 사람들이 교회에서 진리를 가지며, 어떤 대가를 치르고 회생을 하더라도 인류의 구원을 지켜야 한다는 전제(우리는 지금이 전제를 더 이상 그 사람들과 공유하고 있지 않다) 하에서 모든 계엄 상태와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늘날 자신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누구에게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 엄격한 연구 방법이 불신감과 신중함을 충분히 보급시키고 있어서 말과 행위 속에서 폭력적으로 의견을 주장하는 모든 사람은 우리의 현재 문화의 적으로, 적어도 뒤떨어진 사람으로 느껴진다. 사실상 진리를 가지고 있는 열정은, 배우는 방식을 바꾸고 새롭게 연구하는 좀 더 온건하고 내밀한 진리 탐구의 열정에 비하면 오늘날에는 물론 아주 조금만 인정받을 뿐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44)
요즘 인터넷 토론이나 격렬한 사회적 논쟁을 지켜볼 때, 섬뜩한 기분이 들곤 한다.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벌레'나 '악마'로 규정하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 '박멸'하려는 듯한 폭력적인 언어들을 마주할 때다.
니체는 "우리는 본질적으로는 아직 종교개혁 시대의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들이다 : 어떻게 다를 수가 있을까?"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겉모습은 달라졌지만, 그 분노와 의혹을 폭발시키는 방식은 놀랍도록 닮았다.
나는 이 모습이 오늘날 온라인 광장에서 벌어지는 '좌표 찍기'나 '인격 살인'과 겹쳐 보였다.
니체는 과거의 이단심문이 그 당시에는 '합리적'이었다고 말한다. "인류의 구원을 지켜야 한다"는 절대적인 전제(신념) 하에서는, 그 신념을 위협하는 모든 존재를 제거하는 '극단적인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과 본질적으로 똑같다면, 무엇이 우리를 '더 높은 문화'에 속하게 한다고 니체는 말하는 걸까? 그것은 우리가 더 착해졌거나 더 똑똑해져서가 아니다. 니체는 "우리는 우리의 의견이 승리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몇 가지 수단들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를 그 시대를 능가하게 한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물리적인 폭력이나 공개적인 핍박 같은 '극단적인 수단'을 더 이상 사회적으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더 이상 그런 수단을 허용하지 않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사람들은 오늘날 자신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누구에게도 쉽게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과학의 발전과 수많은 사상들의 충돌을 겪으며, 우리는 '절대적인 진리'라는 개념 자체를 의심하게 되었다. "엄격한 연구 방법"은 우리에게 불신감과 신중함을 가르쳐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폭력적인 의견의 투쟁을 목격한다. 니체는 "말과 행위 속에서 폭력적으로 의견을 주장하는 모든 사람은 우리의 현재 문화의 적으로, 적어도 뒤떨어진 사람으로 느껴진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온라인에서, 혹은 정치의 영역에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하려는 사람들은 니체가 말한 '뒤떨어진 사람'이다. 그들은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그들의 정신은 여전히 '절대적 진리'를 가졌다고 믿었던 종교개혁 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만이 옳다는 확신에 차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을 '이단자'로 규정하고 서슴없이 돌을 던진다.
니체는 진리를 향한 열정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진리를 가지고 있는 열정"보다, "배우는 방식을 바꾸고 새롭게 연구하는 좀 더 온건하고 내밀한 진리 탐구의 열정"이 오늘날 더 인정받는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