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의 투쟁이 낳은 유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by 이시영

634. 그런데 방법적인 진리 탐구 그 자체는 신념들이 서로 적대시하고 있었던 시대의 결과이다. 자신의 ‘진리'. 즉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것이 개인에게 중요하지 않다면, 대체로 연구 방법도 촌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개인들이 절대적 진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투쟁하는 가운데 그 요청들의 타당성을 시험하고 논쟁을 조정할 수 있는 반박의 여지도 없는 원리들을 찾아내기 위하여 사람들은 단계적으로 계속 나아갔다. 먼저 그들은 권위에 따라 판정했고 나중에는 소위 진리가 발견되었던 방법과 수단을 서로 비판했다. 그 사이에 한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그들은 상대편 명제의 결론들을 끌어내어, 아마 그것들은 유해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임을 생각해 냈을 것이다 : 그것으로부터 모든 사람의 판단으로는 상대편의 신념이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 도출되었을 것이다. 사상가들의 개인적인 투쟁은 마침내 방법을 엄격하게 만들어 실제로 진리가 발견될 수 있었고 과거의 방법의 미로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폭로될 수 있었다.(『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책세상, 2020. p.445)


만약 사람들에게 "내 말이 맞아!", "나는 정당해!"라고 주장하고 싶은 강력한 욕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복잡한 연구 방법 같은 것은 아예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싸웠다. 이 투쟁의 본질은 진리 그 자체보다 '나의 정당함'을 확보하려는 치열한 욕망에 있었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심판이 필요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논쟁을 해결할 수 있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확실한 원리'를 단계적으로 찾아내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권위 있는 사람의 말이나 전통에 의지해 판정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기에, 이후에는 상대방이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수단'과 '방법'을 서로 비판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더 나아가 후기에는 상대방의 주장이 가져올 결과가 얼마나 해롭고 불행한지를 지적하며, "너의 신념은 나쁜 결과를 낳으므로 오류다"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비난을 넘어 논리의 정교함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상가들이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벌인 이 지독한 개인적인 투쟁들이 쌓이고 쌓여, 엄격하고 객관적인 '탐구 방법'을 만들어냈다. 서로를 공격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엉성했던 논리들이 다듬어지고, 과거의 잘못된 방식들이 폭로되면서, 비로소 진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진리 탐구의 방법은 과거의 뜨겁고 치열했던 '신념의 전쟁'이 남긴 유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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